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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위와 아래

by 미하 Dec 30. 2024
아래로

권력의 정점.

너와 나의 위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너와 나를 저울에 놓고 달아보면 내가 아래, 네가 위일 것이다. 내 무거운 마음이 나를 아래로 향하게 만든다. 너는 나에게 있어 권력의 정점이다.


청와대 관람 만남의 장소는 경복궁의 동편 주차장에 마련되어 있다. 관람객을 태우고 청와대로 들어갈 버스가 두 대나 서 있다. 어렵게 예약한 청와대 관람이라 늦지 않으려는 마음에 집에서 무척 일찍 출발해 버렸다. 삼사십여 분은 일찍 도착한 관계로 만남의 장소에는 관람객이 아직 한 명도 오지 않았다.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온다. 커피를 마시고 와도 되냐고 묻자 11시 10분 전까지만 오면 된다고 한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간다.


주차장 입구에 무척 오래된 나무가 있는데 담당 관리자들이 나무 몸통에 물을 주고 있다. 커다란 급수차에서 흘러나오는 거센 물줄기가 나무 몸통에 닿아 아주 멀리까지 고운 물보라가 만들어진다. 비를 맞는 것 같아 조금은 설렌다. 나무 냄새가 몸에 배는 듯하다. 이상한 기분, 좋은 아침이다.


커피를 사 들고 돌아와 벤치에 앉아 홀짝인다. 여유롭다. 조금씩 사람들이 보이고 버스 앞에 줄을 서기 시작한다. 마지막 방울까지 털어 넣어 카페인을 충당한다. 나도 이제 일어서 볼까.


신분증과 예약 상황을 확인받고 버스에 오른다.


춘추관 홍보관에서 출입 조치가 이루어진다. 철저한 검색과 검사, 그리고 무사한 통과.

너라는 검색대도 무사히 통과하면 좋으련만. 하지만 통과하려면 절차가 필요하다. 과연 나는 너를 통과하기 위한 절차를 거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별로 한 것이 없다. 조금의 시도와 조금의 제지로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너라서 나는 꼼짝할 수 없다. 나는 안전한 관람객이 될 수 있으니 망설임 없이 나를 통과시켜 주면 안 될까.


초입에 대통령이 해외 순방 등에서 각 나라의 대통령이나 총리에게서 받은, 그리고 청와대의 대사 신임장 제정식 등의 귀빈에게서 받은 각종 기념품이 전시되어 있다. 기념품을 보며 너에게서 받은 선물을 떠올린다. 나에게도 하나의 기념품쯤은 있다. 그런 게 흔해지면 어떤 기분일까. 나도 플렉스-하고 싶다.


춘추관을 나와 청와대 해설사와 인사하고 다 같이 다음 코스로 이동한다. 제복 경찰이 맨 앞에 서서 해설가와 함께 가며 천천히 관람객을 인솔한다. 버스를 타고 올 때 이미 주의점을 안내받았다. 정해진 곳에서만 사진을 찍을 수 있고 동영상 촬영은 금지된다. 그리고 경찰의 안내에 따라 정해진 곳만 따라 걷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용히 관람해야 한다.

정해진 곳에서 조용히 너를 만난다.


녹지원으로 향하는 길에 천방지축의 청설모와 마주친다. 경내를 매우 자유분방하게 활보하고 있다. 잠시 멈춰 서서 자기 집을 자랑이라도 하듯 우리를 스쳐본다. 그리고 까치도. 까치가 꽤 시끄럽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까치의 꼬리가 향하는 쪽이 반가운 손님이 있는 곳이라던데 그 꼬리가 나를 향하고 있다.

그래, 나는 너에게 반가운 사람이고 싶다.


녹지원의 반송과 적송, 상춘재와 수궁터까지 빠르게 보고 설명을 듣고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청와대 경내 관람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본관 앞에 다다른다. 푸른 기와가 무척 아름답다.


해설사는 조금 더 아래로 이동하면 멋진 본관의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거라고 한다. 무슨 느낌일지 잘 알 수 없어 큰 기대 없이 아래로 이동한다. 비탈길을 내려와서 무심히 뒤를 돌아보는데 아, 하고 조그만 환호성이 터진다. 가까이에서는 본관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인왕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푸른 기와의 청와대 경관이 인왕산을 배경으로 한껏 더 수려해진다. 그리고 멀어진 만큼 좌우 별채까지 카메라 한 화면에 담을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너를 더 잘 볼 수 있을까. 그런 spot은 어디일까. 어느 정도의 거리여야 너는 나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줄까. 어디에 서야 너를 더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지금 내가 떨어져 있는 거리는 너와는 너무 많이 먼 곳이라는 것을 안다.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조금은 더 가까이 이동해야 한다. 너에게 더 다가서야만 한다. 하지만 나는 함부로 너에게 다가갈 수 없다. 다가설 수 없는 너의 반경은 나에겐 아직 너무 크다.


22개의 화강암 기둥이 대칭으로 배열된 아름다운 영빈관을 끝으로 청와대 경내 관람은 마무리된다.

다음으로는 경내 밖의 사랑채와 칠궁 중의 한 곳을 선택할 수 있는데 나는 사랑채를 보기로 한다.


앞마당에 참으로 멋진 봉황 조형물이 전시된 사랑채는 한국관광전시관과 청와대관, 사랑채 특별전 <봄. 꽃. 들> 전시관, 그리고 기념품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복도를 이동하면서 보니,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 유리벽에 유명한 문구들이 쓰여있다.


<여행은 정신을 다시 젊어지게 하는 샘이다. -안데르센>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 유홍준>


<여행은 다른 문화, 다른 사람을 만나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 한비야>


너를 여행하고 있는 나에게 다 해당하는 말이다. 다시 한번 문구를 곱씹으며 마음을 다듬는다.

누구나 자기의 상황에 맞춰 많은 것을 받아들인다. 나에겐 모든 것이 너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무엇 하나 그냥 흘려보낼 수 없다.


사랑채에는 볼 것도 체험할 것도 무척 많다. 내 모습을 찍어 대통령으로 당선된 신문도 만들어보고 대통령과 함께 G7 기념사진도 찍는다. 그리고 기념품관에서는, 지름신이 강림했다.


모든 관람을 마무리하고 1층에 마련된 카페 쉼터에서 한숨 돌리며 다시 한번 너와 나의 권력과 위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너를 더 알고 싶고, 네가 나를 더 알았으면 좋겠다. 역시, 소통이 필요하다.

나랑 더 이야기할래?



**

<오가며 머물며, 오늘의 BGM>

Higher Power (by Cold P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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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일반관람객 공개 전 2022.03.16에 작성된 글이라 지금의 관람 형태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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