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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키 Oct 10. 2023

삼촌, 집주인한테 허락 받았어?

열 살 조카 시율이는 이 집을 좋아한다. 삼촌이 이사 가지 말고 여기 계속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자기가 사는 송도에서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고양이 누룽지랑 자주 만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면 나는 말없이 미소 짓는다.  


이사를 갈 뻔 했다. 작년 초, 김포에 행복주택이 당첨되었다. 술자리에서 당첨 문자를 받고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지인들은 축하를 건넸다. 올 봄, 행복주택을 해약하고 계약금을 돌려받았다. 위약금을 조금 물었다.


동네에는 내가 사는 빌라와 비슷한 높이의 빌라들이 많다. 시율이는 농구공을 들고 놀러온다. 바닥에 공을 튀기며 동네를 신기하게 둘러본다.


"여기는 빌라가 왜 이렇게 많아?"


요즘 아이들은, 하는 말들이 순간 떠오른다. 하지만 뜻밖의 말이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이 동네가 너무 좋아. 삼촌 이사 안 가는 거지?"


아이는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걸까.


9월 3일은 시율이의 생일이고, 2일은 누룽지가 이 집에 온 날이다. 시율이는 이 날을 누룽지의 생일이라 여기고, 자기 생일과 함께 기념하길 바란다.


부모님까지 함께 집에 놀러온 날, 모처럼 우리는 화목하다. 어릴 때보다, 잠시 결혼했을 때보다, 화목했어도 좋았을 때보다 지금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가족들은 나를 염려해서인지 어느 때보다 살뜰히 챙겨준다.


시율이는 생일 선물로 받은 다트판도 챙겨왔다. 다트판을 벽 아래 대충 기대놓고 다트를 던지려 한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이리 줘. 삼촌이 못 박아서 걸어줄게."


서재 겸 창고 방에서 못과 망치를 꺼내온다. 화장실 옆쪽 벽에 거침없이 망치질을 시작한다. 시율이가 소리를 지른다.


"삼촌! 집주인한테 허락받았어?"


 나는 웃으며 답한다.


삼촌이 이제 이 집 주인이야.


우리는 신나게 세 번의 다트 게임을 했다. 때때로 다트판이 아닌 벽에 다트가 꽂혔다. 벽에 구멍이 뽕뽕 뚫렸다. 해방감이 찾아왔다. 더욱 더 열심히 다트를 던졌다.



* 사기 인지 후 1년. 지급 명령, 임차권 등기, 전세 사기 피해자 결정. 잠시 머무는 곳에서 오래 살아야 하는 장소가 된 이후, 비로소 집과 동네에 대한 관찰과 사랑을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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