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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키 Oct 16. 2023

단톡방

사는 동안에는 잘 챙겨야죠

오늘 저녁은 유독 불안하다. 조금 전에 올린 사진과 메시지에 아무도 답이 없기 때문이다. 


소파에 스티커 안 붙어 있는 거 같던데 붙이시는 거죠?^^


퇴근길 주차장에서 못생긴 검은 소파를 발견했다. 본 순간부터 조마조마하다.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배출하는 이웃들이 있다. 분리수거장 주위에 이불, 장난감, 가구 등 무단 폐기한 쓰레기들이 자꾸 쌓인다. 소파에 가까이 가보니 어디에도 스티커가 없다. 마음에 화가 차오른다. 미움을 담아 ^^을 붙인다. 


단톡방에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낸 건 올해부터다. 그전까지 나는 평범한 세입자였기 때문이다. 이제 이 집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건 나다. 안정된 주거 환경을 해치는 이들은 누구도 용서할 수 없다. 


다른 공동 주택에도 단톡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사오자마자 1동 방에 초대되었다. 관리비에 대한 안내와 공동의 규칙 등을 공유 받았다. 가끔 공지 사항도 올라왔다. 반장님이 적극적으로 발언했다. 특히 쓰레기 배출에 관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메시지에 반응이 없었고 나 역시 슬쩍 보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


가끔 마음이 모이는 일도 있었다. 밤에 누군가의 집 문을 열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CCTV도 없을 때였다. 모두의 안전과 직결된 불안이 생기자 속전속결로 CCTV 설치안이 합의되었다. 


가장 거국적이었던 케이스는 바로 옆 공사장 소음과 분진 이슈였다. 공사장에 면한 집들은 특히 피해가 컸다. 떨어진 자재에 주차된 차가 파손되는 일까지 있었다. 처음으로 반상회가 열렸다. 나는 참석하지 않았다. 나중에 들으니 반장님이 앞장서 공사 소장과 보상금 합의를 도출해냈다고 했다. 아래 순위로 금액을 배분했다.


1순위: 공사장과 마주보고 있는 창측
2순위: 거주하고 있으시면서, 자가이신 분
3순위: 전월세이신 분


3순위인 나는 소액의 보상금을 받았다. 체감된 피해도 없는데 돈이 생기니 그저 좋았다. 그리고 또 다시 생각했다. 나야 뭐 잠깐 살 곳이니까. 많은 이들이 그럴 거다. 대부분이 정주하지 못하고 2년 정도 살고 떠나는 환경에서 책임과 공유의 감각을 얻기란 쉽지 않다. 


반장님과 몇 번 대화한 적이 있다. 한 번은 퇴근길에 자전거를 주차하는 중이었다. 주차장 곳곳을 샅샅이 살피다가 나에게 다가왔다. 친절한 인사를 건네며 먼지 쌓이고 녹슨 다른 자전거의 주인을 아는지 물었다. 알지 못했다. 괜히 멋쩍어서 반장님 참 고생 많으시다고 했다. 그러자 답했다. 


사는 동안에는 잘 챙겨야죠.   

  

올초 반장님은 이사를 떠났다. 가는 날까지 장문의 메시지를 남기며 다른 주민들의 행운을 빌어주었다. 나에게도 따로 당부를 남겼다. 빌라 공용 전기세 고지서가 우리 집 우편함으로 들어왔다. 그걸 새로운 반장님께 꼬박꼬박 잘 전해달라는 것이었다.  


새로운 반장님은 구 반장님만큼 적극적이지 않다. 대신 이제 내가 목소리를 높인다. 쓰레기 무단 폐기, 주차장 청결, 정전 사태, 옥상 방수 공사 제안 등으로 단톡방을 시끄럽게 한다. 주민들은 나를 성가신 이웃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상관없다. 내 집의 주거 환경은 내가 챙긴다. 사는 동안에는.



* 사기 인지 후 1년. 지급 명령, 임차권 등기, 전세 사기 피해자 결정. 잠시 머무는 곳에서 오래 살아야 하는 장소가 된 이후, 비로소 집과 동네에 대한 관찰과 사랑을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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