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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현 Feb 19. 2024

불안한 청춘에 보내는 전언

<족구왕> <찬실이는 복도 많지> <말아>

배우 최강희는 오랜 공백 이후 출연한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연기를 쉬는 동안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해왔다고 설명했다. 연기를 하는 것이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만의 뭔가를 찾아보고 싶었다고 한다.


나는 늘 궁금했다. 우리의 삶은 연속적인데 단 하나의 직업명으로 고정하려는 게 어째서 문화라고 할 정도로 일반적인 행위 양식이 된 걸까. 고정하는 것? 나쁘지 않다. 그런 단어들은 현재 내 상태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간단히 대변할 수 있는 효율적인 언어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왜 고정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가. 직업, 타이틀, 스펙, 성적, 순위 등의 단어들은 너무 효율적인 나머지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효율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을 괜찮지 않은 것으로 여기게 한다.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효율적인 단어들을 삶에 붙여서 딱히 해가 되는 것은 없지만 그것들을 ‘찾는 일’에 집착하여 조급해하지는 않아도 괜찮다고. 괜찮음을 전하기 위한 세 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족구왕


© <족구왕> 2014 우문기


주인공 만섭은 제대 후 복학한 복학생이다. 토익 점수는커녕 학점 관리마저 처참한 상황. 그럼에도 그는 ‘족구’가 하고 싶다. 같은 기숙사를 쓰는 고학번 공시생 선배는 “넌 뭘 믿고 그렇게 낭만이 흥건하냐?”라며 족구 같은 헛소리는 집어치우고 공무원 준비나 하라고 말한다. 


아무래도 대한민국 보편의 시선으로 바람직한 조언일지도 모른다. 다니는 대학교에 족구를 하고 싶으니 족구장을 고쳐 달라는 건의를 해서 얻는 게 무얼까. 이력서에 족구를 좋아하고 잘한다고 써봤자 중소기업에 취직할 운명이 대기업에 취직할 운명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런데, 대부분의 일에 어딘가 어설퍼 보이지만 족구에서만큼은 빛나 보이는 만섭의 모습을 보면, ‘족구 까짓거 하면 좋잖아?’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 같다고 생각해요.” 그는 학점 평점 평균은 2.1의 사나이지만 바보 같음과 바보 같지 않음은 누구보다 잘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다.


결국 만섭의 주도로 족구팀이 결성되고 학과 대항 족구 대회가 열린다. 만섭에게 공무원이나 하라던 공무원 장수생 선배도, 만섭의 연적도 족구 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이들의 족구에는 땀이 있고 우정이 있고 열정이 있으며 사랑이 있다. 협동과 배려와 치열함이 있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남는 기억은 ‘몇 년도 몇 회의 토익 점수 몇 점’보다는 피, 땀, 눈물을 나누던 대학교 몇 학년 때의 족구 대회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하루에 몇 시간 족구 연습하고 며칠을 써서 족구 대회를 하면 또 어떤가. 이유는 만섭이 말한 이것으로 충분하다. “족구, 좋아하니까 하는 거죠!”




찬실이는 복도 많지


© <찬실이는 복도 많지> 2020 김초희


오랫동안 함께 일하던 감독이 갑자기 죽자 영화 PD인 찬실은 하루아침에 실직한다. 그리고, 아무도 자기를 써주지 않는다. 영화계는 물론 프리랜서 계약과 프로젝트 형태로 일을 하는 대부분의 업계를 비롯해 수많은 노동 현장이 아마 이와 비슷할 것이다. 개인의 능력이나 역량이 얼마나 ‘있든지’와는 별개로 누군가의/회사의 귀속된 부품처럼 굴러가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 자체가 아니라 우리를 ‘포함하고 있는 범주’에 의해 판단된다.


영화는 이렇게 써놓으면 암담해 보이는 현실을 암담하지 않게 풀어낸다. 영화가 펼쳐내는 사건들 하나하나가 유쾌하다. 찬실은 일을 찾으러 갔다가 완곡하게 거절당하고 친한 배우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를 하며 돈을 번다. 자신을 “영화 하나로 판단”하고 영화 취향도 맞지 않는 영이에게 불편한 티를 내다가도 그에게 섣부른 고백을 한다. 그리고 차인다.


일이 전부였고 힘껏 노력했던 40대의 찬실에게 지금의 상황은 내심 외롭고 조급하고 초조하고 불안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마음들이 찬실이 가진 많은 ‘복’들로 녹아내리기를 소망한다. 


배우 소피, 친구가 된 영이, 집주인 할머니, 내 마음을 다잡게 하는 ‘장국영’, 놀러 온 후배들. 찬실에게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 주저했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집주인 할머니는 말한다.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 대신 애써서 해.” 찬실은 고민한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과 망설였던 것, 늦었다는 생각과 지금이라도 하면 된다는 생각. 찬실의 사람들은 찬실을 응원한다.


“망했다”라고 말하는 극의 초반부 대사와는 달리, 찬실의 실직 후 하루하루는 ‘당장 일 없어도 세상 안 무너지고 나 안 죽고 안 망한다!’를 알아가는 시간이다. 찬실이 자신의 복을 알아는 동안 보는 우리도 나의 복을 점검하게 된다. 


일에 몰두하여 살아왔던 시간들이 어떠한 계기로 부질없게 느껴진다면, 그 허탈함에 “망했다”가 절로 나온다면, 당신이 갖고 있는 많은 복들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분명 찬실이 만큼 복이 많을 것이다.



말아


© <말아> 2022 곽민승


주인공 주리는 청년 백수다. 집은 엉망, 밥은 배달. 기상은 저녁에 취침은 아침에. 게임으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만성 무기력과 의욕 없음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주리에게 엄마가 할머니 집에 가 있는 동안 엄마의 김밥집을 대신 운영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싫다고 소리치던 주리는 자취방 빼버린다는 엄마의 말에 굴복하고 만다.


말아. 그렇게 주리는 김밥을 만다. 엄마의 손맛을 흉내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가게를 운영하고 손님들을 만난다. 김밥 말기에 앓는 소리를 내던 주리는 이제 자기 김밥에 만족스러워 하곤 한다. 단무지를 안 먹는 취준생과 긴밀해지기도 한다. 혼자 김밥을 먹으러 오는 어린아이와 나름 어른스러운 대화를 나누곤 한다.


전염병의 유행이라는 배경을 바탕으로 하는 이 영화는 그때 겪은 무력함과 허탈함 속에서도 다정함과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인생도 김밥도 말아먹게 생긴”* 주리는 김밥을 말면서 자신의 삶의 용기를 얻어 간다. 이제 주리는 단체 주문까지 해내는 사람이니까.


“워드랑 운전면허 말고 주리 씨는 뭘 잘해요?”

“…저는 김밥을 잘 말아요.”


사소해 보여도 정성스러운 행위는 꽤나 힘이 되는 법이다.



*(인용) 장혜령, 2022.08.18. [키노 현장] 첫 장편, 첫 주연, 첫 출연작 영화 '말아', 키노라이츠 블로그  https://naver.me/II1GZYl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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