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4년, 4계절 3인 가족의 세 번째 여름 이야기
엄마
큰맘먹고 아들 은성이를 위해 꽤 비싼 여름방학 후지산 등반 캠프를 신청했습니다. 일본인들도 후지산에 오르는 것이 로망이라고 들었는데, 외국인으로서 더구나 10대에 이런 기회를 갖게 되니 부럽기도 하고, 선뜻 참가하겠다고 하는 아들이 대견스럽기도 했습니다.
사실 우리 아들은 어릴 때부터 어떤 도전이라도 주저 없이 "해볼게요, 해보고 싶어요"라고 대답하는 용감하고 멋진 아이랍니다. TV 여행 프로그램에서 아프리카의 거대한 폭포를 보고는 저기 가보자고 하고, 번지점프나 스카이다이빙을 보면서는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합니다. 그런 호기심와 도전 정신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겁이 많아진다고들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대학시절에는 삭발도 해보고 싶고, 호주에 가서 번지 점프도 뛰어 보고 싶었는데, 지금은 돈을 준다 해도 할 자신이 없습니다. 우리 은성이는 호기심이 용기가 되고, 용기가 도전과 실천이 되는 그런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경험들로 인해 아들의 인생이 더욱 풍요롭고 다채로워 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아빠
우리 집안에서 후지산 정상에 오른 사람은 은성이가 최초입니다. 일본인 모두가 신성시하는 후지산, 어른들도 힘든 정상 등반은 그 높이로 인해 산소가 부족해서 휴대용 산소 호흡기를 판매할 정도입니다. 조그마한 돌맹이로 덮인 화산재 길이라 걷기도 힘든 곳인데, 은성이가 정상까지 올랐습니다. 정말 자랑스럽고 대견합니다.
후지산 여정에서 배운 인내와 도전, 친구들과의 협동, 그리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버텨낸 강인함, 은성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항상 기억해주면 좋겠습니다.
아들
때는 2022년 여름. 인생에서 가장 큰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바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후지산 등반 캠프.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덜컥 지원한다고 말했죠. 3일간의 지옥을 예상하지 못한 채…
처음 오리엔테이션을 들을 때, 하루에 6~8시간 등산한다고 하여 멘붕이 왔습니다. 1일차에는 완만한 길을 2시간 동안 걷고, 지그재그로 된 길을 4시간 걸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게 3일 중 가장 적게 걸은 거라고 말씀하셨고, 저는 속으로 화를 내면서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규동을 먹고 화장실에 가려던 순간, 화장실 앞에 있는 300엔 간판을 보았습니다. 그때 제 똥도 쏙 들어간 게 기억에 남네요. 물론, 공기도 돈을 내고 사는 것도요.
2일차에는 본격적인 암벽 등반이 시작되었습니다. 장갑을 끼고 비 오는 날 암벽을 오르는 것은 그야말로 낭만이 넘치는 경험이었습니다(살아남았다면요). 중도 포기한다고 난리를 친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결국 선생님들에게 설득당해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떼를 써볼까 고민하던 찰나, 숙소에 도착해 어쩔 수 없이 잠을 청했으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화장실에서 토하고 있었습니다. 급히 선생님이 준 약을 먹고 다시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계속되는 지그재그 길, 선생님은 쉬면 더 힘들다고 하며 정상까지 재촉했고, 결국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도 보람차고 설레는 마음에 사진을 몇 장 찍다, 곧바로 기념품샵으로 향했니다. 구경하다 보니 무려 15,000엔어치 기념품이 손에 들려 있었고… 아, 이미 사버렸군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내려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의외로 내려오는 것은 반나절이면 되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살짝 현타가 온 기억이 또 남습니다. 산을 다 내려와 마을에 도착하니, 이게 꿈인가 싶었습니다. 집에 도착한 후, 기념품 비용으로 부모님께 호되게 혼난 기억이 남네요. 왜 기억나는 것은 항상 현타나 혼나는 걸까요?
어쨌든 그때의 저는 그 다음 주 학교 프로그램인 보드게임 D&D 동아리가 더 기대되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