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 있는 퀸엘리자베스공원에 갔을 때의 일이다. 한 표지판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코요테 출몰 지역. 코요테를 만나면 두 팔을 높게 들고 “저리 가, 코요테!”라고 외치세요.’
아니, 여기 도심 한복판 아닌가요? 웬 코요테란 말입니까? 그리고 “저리 가!”라고 하면 그들이 “어? 미안. 나 갈게.”라고 하나요? 나와 남편은 저 표지판의 글을 보고 깔깔 웃으면서도 주변의 주시했다. 혹시 코요테가 나오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쳐야 하니까. 엄마 배 속에 강심장과 빠른 발을 두고 나온 우리에겐, 온 힘을 다해 도망치는 것만이 답이니까. 밴쿠버에 온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릴 스탠리공원에서도 종종 코요테가 출몰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다운타운에서 아주 조금만 벗어나 산에 조성된 공원을 방문하면 어디서나 ‘곰 조심’ 표지판이 눈에 띈다. 여기서는 한국의 ‘개 조심’만큼이나 흔한 경고 문구가 ‘곰 조심’이다. 천조국 스케일이라는 말을 온라인에서 자주 보는데, 야생의 규모가 큰 건 미국보다는 캐나다일 거다. 야생 코요테나 야생 곰은 무시무시한 존재지만, 나는 어쩐지 이런 표지판을 볼 때면 마음이 설렌다. 인간과 야생동물이 지구를 공유하며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동네는 주변에 산이 없어서인지, 아쉽게도 토끼와 청설모 외의 포유류는 보기 어렵다. 하지만 근처에 산이 있는 동네의 주민들은 놀라운 일들을 자주 겪는다고 들었다. 마당에 설치해둔 CCTV에 곰 가족의 소풍이 찍히기도 하고, 과실수에서 열매를 따 간식 삼는 사슴이 발견된다. 캐나다에서는 쿠거라고 불리는 퓨마가 거리에 나타나 소동이 일어나기도 하고, 호수나 하천에서 비버를 목격하는 일도 잦다. 그런 동네에 사는 사람에게는 야생동물들과 마주치는 게 일상이다. 마치 이웃을 만나는 것처럼 말이다.
도심에서 야생동물이 발견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특히 곰이나 퓨마를 마주친다면, 무장하지 않은 인간이 무사할 확률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과 함께 공존하며 살고 싶다. 애초에 지구는, 지구의 자연은 그렇게 설계되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곰이나 퓨마에 대한 영상을 잘 보면, 그들이 이유 없이 인간을 공격하는 일은 생각보다 없다. 야생동물의 공간에 인간이 들어가 그들의 새끼를 발견했을 때, 인간은 그들에게 적이 된다. 이건 바꿔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누군가 내 집에 들어와 내 아이를 관찰한다면, 우리가 침입자를 우호적으로 여길 수 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들이 우리를 조심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좀더 주의를 기울이면 될 일이다. 그들에게 우리를 공격할 이유를 주지 않고, 그냥 함께 사는 것. 어려운 일일까?
주변에서 보이는 다양한 조류와 포유류들은 나에게는 이 지구를 더 사랑할 이유가 된다. 더 아껴야 하는 이유가 된다. 나의 이기심이 저들의 삶을 파괴하고 생활 터전을 허물 수 있다는 걸 각성하게 된다.
쓰레기를 적게 배출하려고 하고, 쓸데없는 물건을 사지 않으려 하고, 분리수거를 더 철저하게 하려는 노력은 이 아름다운 지구가 오래오래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동물 친구들이 그들의 삶을 더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공동생활에선 규율과 상대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고, 나는 내 네 발 친구들을 존중하고 싶다.
남편의 재택근무가 코로나 때문이 아닌 일상으로 바뀐다면, 난 반드시 근처에 산이 있는 동네로 이사할 거다. 종종 곰 가족이 내려와 피크닉을 하고 새끼 곰은 그네도 탄다고 하니, 그들을 위해 마당에 그네를 매달아 둘 거다. 사슴을 위해 블루베리 나무와 사과나무를 심을 거다. 그 나무엔 새들을 위해 쉼터도 달아야지. 퓨마는 좀 무서우니 안 마주치길 바라지만, 비버는 꼭 만나고 싶다. 물론, 남편은 바라지 않겠지만…… 오늘도 나의 상상 속에선 여러 동물들과 함께하는 삶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