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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 세상에 사는 시골쥐들을 위하여

by 규란

나는 내가 서울쥐인 줄 알았다. 노잼 도시 대전에서 태어나서 자라면서, 언젠가는 서울로 가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보고 싶은 문화행사들은 다 서울에서 열렸고, 열과 성을 다해 좋아했던 에이치오티 오빠들의 콘서트도 대전에선 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 때는 말이야) 콘서트 티켓을 사기 위해선 제일은행 앞에 줄을 서야 했는데, 대전엔 그 은행이 두 곳밖에 없었으니…… 티켓을 사기 위한 경쟁은 늘 세렝게티 맹수들의 대격돌 같았다.


처음 서울 생활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이 고향을 물어 ‘대전’이라 하면 “시골에서 왔네.”라는 말이 돌아왔다. 아니, 광역시인데요? 몇 번을 발끈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본 투 비 서울러인 사람들에게 대전은 그냥 변방의 작은 마을이었다. (쳇.) 그래도 서울살이는 즐거웠다. 전시회나 뮤지컬, 연극 등을 원 없이 관람했고 저예산 영화도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서점의 규모도 컸고, 작가와의 만남도 많이 열렸다.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내 목소리를 내기에도 좋았다. 서울을 잠깐 떠났을 때는 런던에서 1년여를 지냈다. 내셔널갤러리는 온종일 구경해도 다 보지 못했고, 크고 작은 박물관과 미술관, 갤러리들이 있었다. 각종 뮤지컬과 연극, 그리고 문학과 관련된 여러 이벤트까지.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문화 행사장 같던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진정한 서울쥐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다시 서울로 돌아왔고, 본격적인 직장생활이 시작됐다. 시간이 지나며 나는 점점 더 바빠졌지만, 그 와중에 외로움이 찾아왔다. 밖에서 왁자지껄하게 지낼수록, 혼자 있는 밤은 길고 쓸쓸했다. 그러다 고양이 두 마리가 집의 적막을 헤집고 들어왔다. 책임져야 할 생명이 생긴 후, 더 열심히 일했던 것 같다. 그렇다 해도 월세, 각종 공과금, 식비, 주류비용을 해결하고 나면 통장은 어느새 바닥이었다. 가끔 숨이 막혔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막막한 밤이면, 창문 틈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코를 가져다 댔다. 서울의 어떤 바람은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시는 곳. 그곳의 밤공기는 유독 깊고 달았고 그 안에 있을 때면 불안이 찾아오지 않았다.

회사 일에, 인간관계에 치여 마음에 생채기를 입은 날에는 코끝에 바다향이 넘실거리기도 했다. 해수욕도, 일광욕도 즐기지 않지만, 바다의 정서는 좋아한다. 밀려왔다 도망가는 파도를 바라보는 것, 바다의 윤슬에 넋을 놓는 것, 온갖 생명을 품고 있는 비린내를 폐 깊숙한 곳까지 들여보내는 것. 그 감각들이 그리워 미칠 것 같은 순간이 오면 바다로 가야 했다. 그것이 서울쥐의 휴가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지치고 상처 받던 어느 날, 정말 불쑥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난 나이 먹으면 무조건 바닷마을로 갈 거야. 거기서 조업 일손을 도우며 살겠어!” 발화의 당사자인 나조차도 당혹스러운 말이었지만, 그때야 알았다. 나는 너무 뼛속까지 시골쥐라는 걸.


시골쥐라는 걸 인정하고 나자, 한결 후련했다. 이 빌딩숲이 어느새 지긋지긋해진 것도, 지하철에 몸을 꾸겨 넣는 상상만 해도 현기증이 낫던 것이, 사람이 바글바글한 곳에 가면 멀미가 나서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던 것이 다 이해됐다. 이렇게 생겨 먹은 내가 서울쥐 행세를 하며 오래 살았으니, 피로하고 탈진하는 게 당연했다.

그 후로도 시골쥐의 서울 생활은 계속되었지만, 늘 마음 한편은 바닷마을에 있었다. 지도를 보며 어디로 갈까 고민했고, 작은 통통배 한 척은 얼마일까 검색하기도 했다.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어서, 시골쥐가 서울을 떠나 도착한 건 바닷마을이 아니라 캐나다 몬트리올이었다. 서울보단 덜 붐볐지만, 그때도 숨통이 트인 건 아니었다.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동네에 살았고, 집 앞에 큰 공원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주변은 건물들로 가득했다. 드디어 숨 쉴 틈들이 빼곡히 마음에 들어찬 건, 밴쿠버에 정착한 후였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비가 많이 오는 시즌에 돌입해 있던 터라, 눈이 와도 쨍하던 몬트리올이 어찌나 간절하던지. 대전에 대해서도, 서울에 대해서도 향수병이 없던 내가 몬트리올이 그리워 병이 날 지경이란 게 얼마나 웃긴 일인가. 하지만 늘 그랬듯, 날은 곧 갰다. 햇살이 드리운 밴쿠버는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더군다나 다운타운에서 떨어진 곳에 살다 보니 조용했고, 자연도 주위에 있었다. 시골쥐가 뛰어놀기 딱 좋은 곳이었다.


서울쥐인 척 산 시간이 꽤 길어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사람이 사는 주변에 자연이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내가 시골쥐여서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라, 우리는 자연에 사는 게 맞고 주변엔 하늘이, 풀이, 물이 있어야 한다. 애초에 사람은 자연에 적응하며 진화하지 않았던가.

물론 많은 서울쥐에게는 그곳이 편하고 좋겠지만, 그들에게도 이 숨 쉴 틈을 나눠주고 싶다. 그리고 이 세상에 숨어 있는 수많은 시골쥐들을 생각한다. 그 시골쥐들이, 지금 주변에 자연이 없음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하나둘 목소리를 내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의 시골을, 우리의 자연을 지켜냈으면 좋겠다.

광역 밴쿠버에 사는 이 시골쥐는, 더 외곽으로, 조금 더 산으로, 숲으로, 바다로, 들로 나가는 날을 여전히 꿈꾼다. 그 산이, 숲이, 바다가, 들이 조금 더 파랗고 푸르렀으면 좋겠다. 나의 오늘은 그 바람을 위해 꾸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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