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몸이 단단하고 마음이 견고해도, 삶의 중심이 메마른다면

그 모든 걸 가져도, 마음이 비어 있다면

by 안유선

이 글은 『치유의 감각』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몸을 타고 흐르는 감정을 따라,

감정과 함께 춤추는 감각을 따라,

당신이 가진 고유의 회복력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시험만 붙으면, 다 괜찮아질 거예요."
"결혼만 하면, 행복해질 것 같아요."


삶이 버거울수록,
우리는 간절함을 담은 가시적인 목표를 붙잡는다.
마치, 그것만 이루어지면
이 답답함도, 불안도 모두 사라질 거라고 믿는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원하던 것을 손에 쥐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통장 잔고가 넉넉해진다 한다면 다 괜찮아질까?
그 순간에도 자기 안에 공허함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 난감함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우리 안에 공허함을 발견한다면,
그건 또 다른 욕망을 채울 때가 아니다.
삶의 중심이 어긋나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삶의 가장 깊은 곳의 감각이 메말라가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이 찾아온다.
그래서 우리는 몸의 건강과 마음의 회복만큼이나
내면의 숨결이 메마르지 않도록 살펴야 한다.

내면을 돌본다는 건 겉으로 보이는 것을 챙기는 방식과는 다르다.

좋은 것을 찾아서 가득 채운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감각의 언어로 말하고,

조용한 알아차림과 기다림 속에서

숨결은 그 리듬과 온도를 드러낸다.

그 숨결을 듣기 시작할 때,

비소로 온전한 치유의 감각이 시작된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감각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정보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사고력과는 다른 힘.
바라보되 비판하지 않고, 듣되 흘려보내는 주의.
그 무심하고도 깊은 주의 속에서
비로소 내면의 생명감은 되살아난다.


아름다운 것에만 사로잡히고,
자극적인 것만 따르는 삶은
내면에서 ‘느끼는 힘’을 퇴화시킨다.

겉으로는 풍요로워 보이지만, 속은 메말라가는 사람들이 있다.

몸은 편안해졌는데, 우리는 왜 이토록 병들어가는 걸까?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풍요의 시대는
몸은 쉬게 하지만, 삶의 중심을 흐리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니까 괜찮다”는 이유로 넘는 선,

타인을 속이고도 마음이 무뎌진 순간들.
겉모습은 더 그럴듯해지지만,
내면은 조용히 삐걱이기 시작한다.


그런 삶은 아무리 성공했다 해도
도구로서만 기능한다.

"무엇을 위해서만" 살아가며, 남들이 정해준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한,
그 삶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지 않으면 버텨낼 수 없는 존재다.
진짜 치유가 일어나려면,
자신의 삶에 걸맞은 의미를 찾아야 한다.

고통을 부정하거나,
타인의 언어를 빌려 꾸며낸 의미로는 충분하지 않다.

고통을 과장하지도 부인하지도 않으며,

자신의 언어로 소화할 수 있을 때
삶은 다시 단단해진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건 내면 깊숙이 조용히 자라나는 자아의 힘이다.

내면의 힘이 자랄 때,
우리는 버텨내는 삶을 넘어, 살아낸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몸을 돌보듯, 마음을 살피듯
지금 이 순간 내 안에 살아 숨 쉬는 감각을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 감각이 어떤 의미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조용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당신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나요?"
"당신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지혜의 샘은 메마르지 않았나요?"





keyword
이전 22화“빨리 벗어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