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민케이 May 02. 2017

글로벌 회사에선 혼밥이 일상

개인의 사생활과  커뮤니케이션 사이에서

얼마 전에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본사에 1주일간 교육을 받으러 다녀왔다. 실리콘 밸리라는 명성답게 아무래도 IT나 소프트웨어 업종의 회사들이 많이 있는 캘리포니아. 쾌청한 날씨에 미세먼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 멀리까지 청명히 보이는 하늘. 자유로운 복장으로 출근하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 확실히 캘리포니아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실리콘 밸리의 점심시간

점심시간이 되면 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여러 회사가 모여 있는 건물들 앞으로 각양각색의 푸드트럭들이 도열한다. 다양한 인종들의 집합체인 캘리포니아답게 음식들의 종류도 그 종류가 다양하다. 이탤리안, 멕시칸, 일식 그리고 코리안 바비큐.

푸드 트럭 앞에서 주문하고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삼삼오오 그룹들도 있지만 혼자 주문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혼자 주문하고 차례를 기다리다 받아 든 포장된 음식을 손에 들고 종종걸음으로 다시 사무실로 돌아간다. 자기 책상에서 글을 읽으며 먹는 사람, 몇몇 동료들과 카페테리아로 가서 일 얘기를 하며 먹는 사람 등등 다양한 형태가 있지만 그 누구도 서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같이 먹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 혼자 먹는 사람은 혼자 먹는 대로 자연스럽다.


혼밥 점심 Desk Dining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프로페셔널, 즉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62퍼센트가 점심을 보통 책상 앞에서 혼자 먹는다고 답변했다. 이에 대한 사회학적인 용어까지 생겨나 이를 데스크 다이닝 (Desk Dining)이라 부른다. 미국에서는 너무나 일상적인 상황이 되었기에 거꾸로 이에 대한 비판과 바꿔보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런 혼밥 점심은 미국뿐 아니라 글로벌 회사에서는 일반적인 일상이다. 일본 도쿄 중심가, 사무실 빌딩들이 모여 있는 거리의 골목골목에는 도시락을 파는 작은 가게들이 눈에 띈다. 큰 가게도 있고 다른 업종을 하면서 점심시간에만 앞에 좌판을 내놓고 도시락을 팔기도 한다.

일본 거리의 도시락

종종걸음으로 사무실을 빠져나와 신중하게 도시락을 고른 후 하얀 비닐봉지에 담아서 돌아가는 정장의 회사원들, 도쿄의 점심시간에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점심

혼밥에 대해서 항상 돌아오는 비판 중에 하나는 동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줄어든다는 주장이다. 사실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같이 밥을 먹을 때가 친밀도가 높아진 다는 점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니.

글로벌 회사에서도 같이 점심을 당연히 먹는다. 직종에 따라 다르고 사람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일로 친해져야 할 때, 그리고 사람들과 같이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같이 점심 먹기를 청한다.  다만 이럴 땐 대부분 미팅 요청 (Meeting Request)를 미리 보낸다. 점심 먹는 걸 가지고 미팅 요청을 한다는 게 야박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같이 시간을 보내기 원하는데 괜찮은지 의사를 묻는 과정이다.


직급이 높아지고 매니저가 되어 가면서는 혼자 점심을 먹을 기회가 줄어든다. 자신의 일에 열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많은 부서와 사람들과 소통을 통해 해야 하는 일이 늘어나는 탓이다. 예전 회사의 직속 매니저는 같이 밥을 먹으려면 1-2주 전에는 점심 요청을 보내야만 했었다. 겨우 잡은 점심시간 당일, 급한 일이 생겨서 결국 내가 나가서 사온 도시락을 같이 회의실에서 까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국내에 있는 외국계 회사들에선

당연한 얘기지만 다양한 업종과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니 혼밥의 정도는 다양하다. 전에 근무했던 미국 IT 회사의 작은 한국 지사에서는 혼자 먹는 점심이 익숙했고, 한 유럽 회사에서는 한국 회사에서와 비슷하게 같이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문화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개인에 대한 자유를 보장해 주는 편이기 때문에 한국 회사들에 비해서는 혼밥에 대한 자유도가 높은 편이라 볼 수 있다.

요즘 한국의 젊은 세대들도 직장에서 예전처럼 상사와 동료들과 무조건 같이 점심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그들은 다르다고 언론에서 많이 떠들어 대는 걸 보면 이제는 그 차이가 적어진 듯 하기도 하고.



직장에서의 혼밥.

전체와 공동체를 무엇보다 중요시했던 과거에서 개인과 사생활을 좀 더 존중해주게 된 세상을 반영하기도 하고,

인간적인 정은 사라지고 업무적으로 형식적인 관계만 남는다는 비판을 들을 만도 하다.


당연히 혼밥이 어울리지 않은 자리와 관계가 있다. 더 많은 고객을 만나고 내부적으로 사람들을 조율해야 할 영업직이 매일 혼자 점심을 먹고 있다면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 거고, 팀원들을 항상 주시하면서 독려하고 다독거려야 할 팀장이 항상 혼자 점심을 먹는다면 문제일터. 얼마 전 논란이 됐던 정치인의 혼밥도 같은 지점에서 논의된다.


거꾸로, 집단에 속하지 않으려 하는 개인주의자들에 대한 배척이 일상이었던 우리 사회와 직장에서는 혼자 원하는 점심을 먹을 자유도 없었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윗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참여하는 회식에 대한 불만이 대부분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볼 수 있는 얘기들.


서로 개인의 자유와 취향을 존중하고, 업무로 얘기하는 관계. 그 관계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인 먹는 것에서 혼밥으로 나타난다. 글로벌 회사에선 혼밥이 이미 일상이다.

이전 08화 4차 산업혁명은 없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