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초 한들한들쉼터 준공식 (마지막회)
겨울 방학 동안 한들한들쉼터와 벤치 공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준공식이 빠지면 섭섭하겠지요? 한들반 어린이 건축가들과 그동안 직, 간접적으로 도와주신 분들을 한 자리에 모셨습니다.
겨울 방학이 한 주 지난 2월 9일 금요일, 준공식이 있었습니다. 11시에 시작하기 앞서 마지막 마무리 작업을 했습니다. 준비한 시트지와 이용 규칙을 붙이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합니다.
한들한들쉼터는 가림막으로 막아놨었지만 벤치는 개학 후 별도 장치 없이 놔둔 상태였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니 아이들이 막 몰려왔어요. 6학년만 쓰는 공간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저학년 친구들도 계단을 열심히 올라와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느새 학교 안에는 입소문이 다 돌았다네요. 은빛초등학교의 가장 핫플레이스가 되었답니다. 그런데 생각 외로 너무나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며 놀라기도 했습니다. 앉아서 쉬고 가끔 누울 수 있는 공간으로만 생각했는데 어린이들은 벤치를 하나의 구조물로 인식하더군요. 물론 처음 계획한 용도대로 쓰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신발을 벗고 이리저리 넘어 다니며 노는 모습이었습니다.
11시, 한들반 친구들과 학교 내외분이 한들한들쉼터에 모였습니다. 서로 인사하고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공사가 생각보다 잘 마무리되어 모두 행복한 표정이었습니다. 대개 학교 안에 무언가가 생기면 어른들의 근심이 생기기 마련인데 은빛초 선생님들은 그보다도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뿌듯해하시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짧은 준공식이 끝나고 드디어 쉼터가 공식 개장했습니다. 다들 낙서판에 첫 메시지를 적느라 정신이 없네요. 담임 선생님에 대한 감사부터 아이돌 그룹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야구팀 이야기 등등...... 정말 짧은 시간에 커다란 블랙보드가 꽉 채워졌습니다.
모든 과정이 끝났지만 어린이 건축가의 관찰은 이제 시작입니다. 과연 우리가 생각한 대로 다른 친구들이 쉼터에서 잘 놀아줄지, 벤치를 어떻게 이용할지 관찰하고 기록하며 되새겨보는 건 이제 6학년으로 올라갈 한들반 어린이 건축가의 몫입니다.
매거진을 마무리하며 '움직이는 창의 클래스' 사업을 담당한 하자센터에 보낸 글을 덧붙입니다.
2017년 하반기 움직이는 창의 클래스 수업은 은빛초등학교 5학년 한들반 친구들과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은빛초등학교는 서울에서는 처음으로 혁신학교로 지정되어 이미 명성이 높은 학교입니다. 기존의 딱딱한 학교 이미지를 벗어나 창의성과 인성이 조화롭게 발달하고, 결과보다는 과정과 체험을 중시하려는 교풍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미리 둘러본 학교는 다른 어느 학교보다도 자유로웠습니다. 은평구 뉴타운 개발로 새롭게 이 지역으로 이사를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학교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점이었습니다. 급하게 교실을 늘리느라 기존의 학교와는 다른 복잡한 구조를 가졌다는 것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었네요.
수업은 매주 화요일 2블록(10시 40분~12시, 80분)에 진행되었습니다. 은빛초등학교는 전 학년 블록 타임 제도로 두 시간을 한 번에 엮어 수업합니다. 효율적인 수업을 위해 수업시간은 늘리면서 중간에는 30분가량 충분한 놀이시간을 줍니다. 이 시간 동안 학생들은 담당교사의 지도를 받으며 학교의 여러 장소에서 마음껏 뛰어놉니다. 역시 혁신학교다운 참신한 수업 편성 시간이랄까요?
이번에 만난 친구들은 5학년 한들반 아이들이었습니다. 남자 열다섯, 여자 열다섯 명으로 다른 학교에 비해서 학급 학생 수는 조금 많은 편입니다. 블랭크에서는 세 명의 선생님이 함께 수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수업은 크게 세 단계(이해-대화-디자인)로 구성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이해하는 수업입니다. 타인에 대한 이해 없이는 우리가 뛰어노는 공간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없겠지요. 이와 동시에 학교라는 물리적 공간을 함께 관찰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해 보는 과정입니다. 두 번째는 대화입니다. 학교에는 학생들 말고도 많은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작은 사회입니다. 아무리 학생이 주인이라지만 우리와 공간을 함께 쓰고 있는 보안관 아저씨, 급식소 어머니의 말도 들어보아야 하겠지요? 마지막 단계는 디자인입니다. 이해와 대화의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아이들은 학교의 어떤 공간을 직접 설계하게 됩니다. 어느 공간이 떠오르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교실이 될 수도, 운동장일 수도, 문래초등학교처럼 미디어 마당과 비슷한 공간이 될 수도 있겠죠?
2017년 9월 12일부터 진행된 수업은 총 열두 차례 진행되었습니다. 상반기 문래초등학교와 비교하면 수업 시수도 조금 달라졌지만, 무엇보다 디자인 설명회와 이를 바탕으로 최종 디자인을 확정하는 시간이 추가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참여디자인 수업과 이를 바탕으로 학교 공간을 꾸미는 과정이 ‘어린이 건축가’라는 큰 틀 아래 한데 엮였습니다.
‘건축가 양성 수업과 참여디자인 수업은 다른 게 아닌가?’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건축가가 설계할 때 대상자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이를 반영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사용자의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공간은 죽은 공간이나 다름없지요. 다른 대학과정과는 다르게 건축과가 5년이라는 커리큘럼을 가진 이유도 기술적인 바탕 아래 인문의 소양이 쌓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건축 수업은 사실상 현실과 괴리되어있습니다. 종이 위에 그저 디자인해 보는 연습을 할 뿐이지요. 실제 건축 행위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속에서 디자인하고자 하는 의뢰자를 만나 협의하는 과정에 사회가 지키고자 하는 법규와 자본을 덧발라 완성됩니다. 공간 구성에 뛰어난 능력을 갖춘 건축가에게 모든 디자인을 일임하는 것도 좋은 건물을 짓는 한 방법이지만 의뢰자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시 창의 클래스 수업으로 돌아와 살펴보면 이 경우 의뢰자는 한 개인이 아닌 은빛초등학교 전체를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대다수 의견이 담긴 공간을 만들려면 나 개인보다도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겠지요? 그래서 하반기 창의 클래스의 목표는 실제 만들어질 공간을 ‘우리’ 손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첫 번째 ‘이해’ 과정에서는 학교 안에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서로 살펴보았습니다. 한들반 친구들은 총 열 가지의 요소(숨을 수 있다, 높다, 쉴 수 있다, 꾸미다, 밖을 보다, 넓다, 재미있다, 놀 수 있다, 그리다, 이야기하다)를 발견해 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버려진 공간 찾아 해당 장소에 우리가 좋아하거나 적용 가능한 요소들을 넣어보는 연습을 했습니다. 아이들의 의견은 총 세 장소(중간 마당, 테라스, 6학년 앞 복도)로 좁혀졌습니다. 두 번째 ‘대화’ 과정에서는 학교 구성원들과 심층 인터뷰를 했습니다. 학교는 단지 한들반 친구들만의 공간이 아니니까요. 각 장소의 장단점과 디자인 실현 가능성을 여러모로 따져 최종적으로 바꿀 장소를 선택했습니다. 6학년 복도였습니다.
세 번째 ‘디자인’ 과정은 한들반 아이들이 발견한 열 가지 요소를 복도에 적용하는 연습부터 시작하였습니다. 해당 장소에 실현 가능한 행위들을 탐구하고 나서 레고와 매직블록을 가지고 모형을 만들었습니다. 세 번의 수업을 거쳐 확정된 디자인은 ‘디자인 설명회’를 통해 학교의 다른 사람들에게 발신되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마지막 수업 시간에 최종 보완했지요. 수업을 이수한 학생들은 모두 ‘어린이 건축가’가 되었습니다.
내가 아닌 우리의 생각을 반영하려고 유난히도 많은 사람과 만나며 대화했기에 자칫 집중력과 목표가 흐트러지지는 않을까 수업 내내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한들반 어린이 건축가들은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무형의 생각들이 모여 유형의 공간이 탄생하는 과정을 겪으며 아이들은 또 한 단계 성장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재혁이의 한 마디로 마무리하고 싶네요. “저는 이 수업으로 인해 알게 된 것이 있어요. 건축은 설계도에 그리고 만들면 될 줄 알았는데 여러 사람과 이야기해서 건물을 지어야 하고 발표도 잘 해야 해서 세상에 쉬운 직업은 없다고 알았어요. 그동안 재밌게 수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