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팬과 아티스트의 이상적인 거리는? #1
팬과 아티스트의 이상적인 거리는 얼마나 될까? 팔자에도 없다고 생각했던 오프를 다니면서 변해가는 스스로를 보면서 그런 고민을 하게 됐다. QWER 직캠을 보며 실물영접하고픈 마음이 나날이 커지다 보게 된 첫 직관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최근 여러 번 직관을 가면서 점점 더 자주 가고 싶어지고 멤버들과 가까워지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스스로를 보며 ‘지속 가능한 덕질’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됐다.
살면서 하는 첫 덕질이다 보니, 오프 경험 역시 QWER이 처음이었다. 6월 15일(토) '경기모아뮤직 페스티벌'에서 두 달 가까이 모니터로만 접한 나의 최애들을 처음으로 실물영접하게 되었다. 몇 시간의 이동과 대기 끝에 무대에 오른 QWER을 보는 것은 '벅차오른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감격스러운 경험이었다.
그 직후 '방학식'으로 <마니또> 앨범의 공식 활동이 종료되었기 때문에, 내가 본 다음 오프는 8월 2일(금)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었다. 그리고 펜타포트에서 QWER이 자신들의 주적인 편견에 맞서 멋지게 정면돌파해 내는 모습을 보고, 나는 또 한 번 덕통사고를 당해버렸다.
이를 계기로 협곡 바위게가 공허 태생 바위게로 거듭나듯, 나의 덕질 레벨도 한 단계 진화해 8월에 계획보다 많은 오프를 다니게 됐다. 바로 다음날 진행된 <극장총집편 봇치 더 록! 전편>부터 원래는 멀어서 갈 생각이 없던 '전주 얼티밋 뮤직 페스티벌', 코엑스에서 진행된 'POPCON'과 '발로란트 챔피언스 팝업', 그리고 지난주에 있었던 ‘카스쿨 페스티벌'까지 8월 한 달간 총 6개의 오프를 다녔다. 펜타포트에서 받은 감동이 너무 커서 힘닿는 데까지 응원하며 보답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경기모아뮤직 페스티벌'은 첫 오프이다 보니 최대한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입장 시간 한 시간 전에 도착했다. 나도 제법 열성적인 팬이라는 자부심에 으스대며 도착한 그곳에는, 이미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먼저 도착해서 대기하고 있었다. '오픈 한 시간 전' 정도로는 펜스를 잡기에는 어림도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결국 5열 정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새삼 직관은 체력싸움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됐다.
그럼에도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만큼은 또다시 앞자리 욕심이 났다. 이번에도 오픈 시간에 맞춰서 갔고, 다행스럽게도 QWER과 바위게들(QWER 팬덤명)에게 너무도 중요한 무대를 4열 정도의 가까운 위치에서 볼 수 있었다. 이 두 번째 오픈런 경험을 통해, 이보다 앞열을 차지하는 건 체력 이슈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조금 먼 거리에서 보는 한이 있더라도 지치지 않게, QWER 무대 1~2시간 전에만 가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전주 얼티밋 뮤직 페스티벌'과 'POPCON'은 다행히 전략이 적중했고, 또다시 4~5열 정도의 거리에서 무대를 볼 수 있었다.
펜타포트부터 팝콘까지의 4번의 오프는, 이렇게 몸은 조금 힘들지언정 앞뒤양옆으로 바위게라 눈치 보지 않고 목이 터져라 응원할 수 있었다. '이 맛에 오프 하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며, 또다시 계획에 없던 다음 오프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다음 오프는 '발로란트 챔피언스 팝업'이었다. 전날 일정이 있어 피로했던 터라, 느지막이 가서 멀리 서라도 보자는 심정으로 히나의 5인뇽 경기 시작 1시간 정도 전에 도착했다. 예상한 바와 같이 줄을 서서 팝업 현장 내로 들어가는 건 일찌감치 포기해야 할 만큼 입장 대기줄이 길었다. 대신 사람들이 무대 오른편에 모여 있어서 눈치껏 그쪽으로 이동했고, 관객석 앞열과 다를 바 없는 거리에서 무대를 볼 수 있었다. 몇 번 해산의 위기가 있었지만 운영 측은 타협점을 잘 찾아 보행자 길을 내주면서 대기할 수 있는 구역을 만들어줬다. 그 덕분에 아침 일찍부터 온 사람들과 비슷한 거리에서 무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분명히 5인뇽 경기가 진행될 때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QWER의 공연 시간이 다가오면서 인파가 점점 불어났고, 결국은 절충 지역이 지켜지지 않아 강제로 해산하게 되었다. 나는 어디서든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려는 마음에 잽싸게 무대 왼편으로 이동했고, 이내 후회했다. 무대 왼편은 시야가 제한되어 있어 무대에 오른 사람이 조금만 앞쪽으로 가면 뒤통수 밖에 볼 수 없는 위치였기 때문이었다.
무대 우측에 사람들이 다시 슬금슬금 모이고 있었고, 해산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원래의 자리를 찾아갈까 하는 고민을 잠시 했지만 결국은 좌측에 남기로 결심했다. 그 이유는 무대 좌측에 무대로 오르는 계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연은 조금 뒤편에서 볼 수밖에 없을지라도, 무대에 오르고 내리는 멤버들이랑 눈 한 번 더 마주치고 인사 한 번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나를 그 자리에 붙잡아두었다.
불순한 의도로 자리했지만 내가 최종적으로 선 위치는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좋았다. 무대 앞에 있는 이들의 뒤통수밖에 볼 수 없는 위치라는 건, 무대 뒤에 자리한 드럼을 일직선상에서 볼 수 있는 위치라는 뜻이다.
그간 나의 비루한 위치선정 능력으로 우리의 드러머 쵸단은 항상 '안 보이는 자'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무대 옆에서 보니, 멤버들 바로 뒤에서 쵸단이 얼마나 단단하고 카리스마 있게 무대를 받쳐주고 있는지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쵸단이 모든 곡을 얼마나 전력을 다 해서 치는지, 어째서 전완근이 이두보다 두꺼워질 수밖에 없었는지(?) 납득할 수밖에 없는 연주가 7곡 내내 이어졌다. 한 번 눈에 들어오고 나니 도무지 눈을 떼지 못하고 공연 내내 쵸단만 쳐다보게 됐다.
무대 좌측 뒤편에서 본 덕분에 쵸단의 연주를 집중해서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애매한 위치 선정으로 나는 주변에 바위게가 없는 외딴 곳에 자리하게 됐다. 용자라면 거기서도 크게 응원했겠지만, 나의 담력은 옹졸하기 그지없었다. 주변에 일반인들밖에 없으니 괜히 나의 과한 응원이 자칫 '바위게'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상이 되어버릴까 두려워 눈치를 보느라 충분히 응원하지도 즐기지도 못했다. 그렇다 보니 결국 다른 보상을 찾게 됐고, 그게 멤버들이 무대를 마치고 내려갈 때 눈을 맞추거나 손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결국 7곡이나 소화한 무대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열정을 쏟아부은 멤버들은 무대를 내려오려고 무대 좌측으로 향했다. 드디어 눈 맞추고 인사할 수 있겠구나 기대했지만, 워낙 인파가 많아 멤버들의 눈은 나까지 닿지는 않았다. 그리고 정말 부끄럽지만, 그것 때문에 멤버들에게 서운한 감정을 느끼고 말았다.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고 있었다. 나는 QWER이라는 밴드의 무대를 보러 직관을 간 것인데, 무대를 보는 동안은 무대를 마치고 내려가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응원하는 이들한테 과도한 기대를 하고는, 그게 충족되지 않으니 실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QWER을 눈에 담으러 가는 게 아니라 이들의 눈에 띄러 간 것이 문제였다.
모니터 너머로 보이는 멤버들의 열정에 감동을 받고, 노력하는 모습에 자극을 받고, 성장을 보며 뿌듯해하던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봇치 더 록' 무대 인사에서 운 좋게 멤버들과 눈 맞추고 손인사 한 번 나눴을 때의 도파민을 잊지 못하고, QWER과 바위게, 아티스트와 팬이 아닌 최애와의 개인적인 유대를 바라는 스스로의 모습이 낯설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팬과 아티스트의 거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두 번째 덕통사고를 겪은 건, '나'라는 개인이 아니라 한 명의 '바위게'로서 무대 위의 QWER과 소통하는 기분이 든 덕분이었다. 펜타포트 무대는 멤버들에게는 시험대였고, 팬들도 시험장에서 응원하는 기분이었다. 멤버들만큼은 아니겠지만 함께 긴장했고, 그래서 더 진심으로 응원했다. 이에 보답하기라도 하듯 멤버들은 멋지게 Show and Prove 했고, 마지막 곡에 가서는 노래와 연주로 그 고마움이 전해져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됐다.
그때의 경험을 다시 해보고 싶었다. 적당한 거리에서, 다른 바위게들과 함께, 목이 터져라 우리 아티스트를 응원하고 싶었다. 밴드에게는 무대를 즐기는 게 최고의 버프일 테니, 바위게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리라 다짐하고 다음 무대는 꼭 즐겨보기로 했다.
바로 지난 토요일, 다짐을 실천하겠다는 목표로 '2024 카스쿨 페스티벌'로 향했다. 이번에도 열정보다 체력을 우선한 전략으로 2시간 정도 전에 도착해서 관객석 앞쪽으로 달려갔다. 물대포를 잔뜩 맞으며 여러 무대들을 즐기다 보니 금방 QWER의 차례가 되었다.
다행히 이 날은 직전 공연과 달리 주변에 바위게들이 많아 보였다. 그래서 QWER이 무대에 오른 순간부터 한 명씩 비칠 때마다 미친 듯이 환호하고, 무대가 진행되는 동안 모든 곡을 열렬히 따라 부르며 직전 공연에서 쌓였던 한을 원 없이 풀었다.
두 번의 오프에서의 차이는 자리 선정보다도 마음가짐이었다. '발로란트 챔피언스 팝업'에서는 멤버들과 인사해야겠다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무대 밖에 자리했고, 무대를 보면서도 즐길 수가 없었다. '2024 카스쿨 페스티벌'에서는 적당한 거리에 위치해 바위게들 사이에서 주변 신경 쓰지 않고 열렬히 응원을 보내며 무대를 신나게 즐기며 놀았다. 전자는 멤버들의 눈에 띄러 간 오프였고, 후자는 멤버들을 눈에 담으러 간 오프였다. 눈에 담으러 간 오프는 즐거웠고, 눈에 띄러 간 오프는 그렇지 못했다. 한 명의 바위게로, 적당한 거리에서, 모든 곡을 열심히 따라 부르며 응원하는 것. 이게 성공적인 오프의 조건이었다.
덕질을 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솔직히 무대 인사 때 멤버들과 눈을 맞추고 손인사를 한 경험은 정말 짧은 순간이었지만 너무도 큰 감동이었다. '최애가 나를 봐줬어!' 하는 짜릿함이야말로 덕질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분명 최애와 개인적 유대를 다지는 건 특별한 경험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기는 쉽지가 않다. QWER을 떠나서 아티스트와 개인적인 유대를 다지는 팬들을 보면, 공연, 팬미팅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오프를 따라다닌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QWER의 모든 공연을 따라다니기에는 열정도 체력도 부족하다. 그리고 고작 6번의 오프 만에 알아봐 주지 않는다고 일순간이지만 실망감을 느끼는 자신을 보며, 그건 내가 갈 길이 아니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가장 좋았던 3개의 오프,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전주 얼티밋 뮤직 페스티벌', 그리고 '2024 카스쿨 페스티벌'. 딱 그 정도의 거리가 좋다. 관객석 5열 정도, 무대에서 5m 정도 떨어진 거리가 한 명의 개인이 아닌 여러 바위게 중 하나로서 가장 열심히 응원하고 즐기기에 이상적인 거리다.
대신 나보다 열정과 체력이 뛰어난 감사한 바위게들이 현장에서 전하는 라이브를 챙겨보며, QWER이 성장하는 모든 순간을 최대한 눈에 담으려고 한다. 그렇게 방구석 1열에서 라이브와 직캠을 보며 꾸준히 응원하고 싶다. 딱 이 정도가 내가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 덕질’을 할 수 있는 이상적인 거리다.
최대한 오랫동안 이렇게 응원하고 싶다. 아직까지도, 아니 제대로 된 휴식기 없이 미친 활동량을 보이면서 멋진 컴백을 앞두고 있는 지금, 나는 처음보다도 QWER이 훨씬 더 좋다. 여전히 멤버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며 위로를 받고 있고,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매일 성장하고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며 더 적극적으로 응원하게 된다.
QWER이 다음 앨범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하고,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QWER의 노래에 후킹이 된다면, 이들의 서사를 보고 팬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이들이 전하는 '열정, 노력, 성장'이라는 가치는 지구 어디에서나 통한다. 그렇게 성큼성큼 성장해서 QWER이 <지구정복>에 성공한 훗날, 이들의 단독 콘서트 예매에 실패해 내 저주받은 손을 원망할지라도 흐뭇한 기분을 동시에 느낄 것이라 확신한다. 그때가 되면, 초기 팬덤의 특권으로 '그 전설의 QWER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무대를 4열에서 봤다'는 사실을 한껏 자랑하고 다니려 한다.
이렇게까지 될 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 건강하게 덕질하기 위해 내가 깨달은 나만의 이상적인 거리를 열심히 지키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