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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Apr 18. 2024

폐허의 블랙 오닉스

Beatles - A day in the life

https://www.youtube.com/watch?v=usNsCeOV4GM


나는 구름의 방향으로 움직여.


보들레르처럼 구름을 사랑한다던 그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림을 따라 걸었다. 도시의 담벼락에 남겨진 그라피티를 쫓았다. 재개발 안내 현수막이 붙은 오래된 동네였다. 거주자들이 모두 떠나간 빈 집들이 이어졌다. 노오란 테이프로 봉쇄해 버린 출입구와 떨어져 나간 창문 너머로 실내 공간이 훤히 드러났다. 좁다란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잡초가 무성한 빈터가 있었다.

폐허의 응접실은 꽤 아늑했다. 그곳엔 버려진 가재도구들이 가득했다. 얼룩진 소파, 문이 반쯤 열린 옷장, 부엌에서 쏟아져 나온 냄비와 파란빛 날개가 부서진 선풍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팀버튼 영화에 나올 법한 제멋대로 뻗은 가지가 뚝 잘린 나무가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디에도 없을 낙원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도시가 버린 이 폐허에는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경의가 서려있었다.


어디선가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 나간다.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니 버려진 의자에 그녀가 앉아있었다. 치렁치렁 겹쳐 입은 블랙드레스에 종이장처럼 창백한 피부, 길고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그녀는 이 폐허의 일부 같았다. 고장 난 인형처럼 비스듬히 의자에 기대어서 눈을 감고 있었다. 다가서기도 그대로 지나치지도 못하는 사이,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다가서 보기로 했다.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왜 그 말이 튀어나왔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공손한 말투였지만 제법 자연스럽게 들린 것 같았다. 그녀는 못 들은 듯 고개를 돌렸다. 나는 신호처럼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모드로 바꾸었다. 그러자 그녀는 급히 일어나더니 자리를 피했다. 나를 지나치는 사이 살짝 부딪혔고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행동이 아주 빨랐고 나는 당황해서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주웠다. 고개를 보니 그녀는 이미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바닥에 뭔가가 반짝였다. 그녀가 떨어뜨린 귀걸이. 검은빛이 도는 오닉스였다. 그녀의 드레스가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점처럼 시야에서 작아지더니 총총히 노을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귀걸이를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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