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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Jun 27. 2024

한밤 중의 커피가 필요할 때


창가의 커튼이 달빛에 춤을 춘다. 


한밤이지만 가로등처럼 달빛이 온 동네를 비추고 있다. 여름밤의 바람은 사람 사이의 어떤 감정을 누그러뜨리기도 한다. 초머는 커피포트에서 커피를 따르고 있다. 낡은 자가드 소파에 앉은 수지와 마자르는 하얀 찻잔 위로 커피가 소용돌이치며 차오르는 것을 바라본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 위로 벌어지는 이 모든 일들이 꿈처럼 아득하다. 한밤 중에 낯선 화가의 집에서 작전회의를 하는 것처럼.


"... 나는 그게 궁금하네. 이렇게까지 하면서 알고 싶은 게 뭔가? "

초머는 테이블에 파이프담배를 내려놓고 커피를 마신다. 얼굴을 뒤덮은 수염으로 얼핏 푸근한 인상으로 보였지만 날카로운 눈매와 미간의 주름 사이 녹록지 않았던 세월이 녹아있다. 옅은 산호색의 눈동자가 수지와 마자르를 향한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악사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마자르가 답했다. 수지는 마자르와 초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게 왜 중요한가?"

수지와 마자르는 답을 얻으려 왔는데, 초머는 계속 질문을 주고 있다. 수지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떠올렸다. 세상에 쉽게 얻어지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이 관문은 또 어떻게 통과해야 하는가.

"왜냐하면, 그 그림이 주인을 잃었으니까요!"

초머는 지긋이 수지를 바라본다. 


"그렇군" 

초머의 표정에는 알 수 없는 그림자가 스며있다.

"근데... 이제 와서 왜? 그는 한숨처럼 파이프의 연기를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갑자기 고가의 그림이 되고, 유명해져서? 그림의 주인이라면 그전에는 왜 가만히 있었지?"

"그 악사는 모나코의 공주, 캐롤이었어요. 남장을 하고 있었지만, 분명히 그랬죠.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수지와 마자르에게는 지금 그림의 주인이라는 증거가 필요했다. 초머의 한쪽 눈썹이 살짝 올라가 있다.

"알아보았군. 내가 만난 사람 중에는 없었는데 말이야."

"그 얘기를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마자르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초머는 잠시 책상으로 가더니 파이프에 남은 재를 털어낸 다음 연초를 넣었다. 성냥을 대니 작은 불씨가 살아난다.

"같은 그림을 시한부 환자와 공주가 동시에 원한다면 어디에 줘야 하지?"

"환자요?" 마자르가 되물었다.

"언제부턴가 연주가 슬프게 들리기에 알고 봤더니 그 악단 중에 암환자가 있더군. 병원에서 죽기 싫다면서 거길 나와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연주를 하는데, 그날은 한 명의 낯선 사람이 더 있더군. 신분이 알려지는 걸 원치 않는다면 남장까지 했지. 첼로 연주자와 잘 아는 사람인 거 같았어. 모나코의 공주인 걸 안 건 더 나중의 일이고."

"그래서 그림은 누구에게 주셨어요?" 수지가 물었다.

"원래 그건 그 환자 주려고 그린 거였지. 광장에서 연주한 모든 순간이 그의 삶이었으니까. 하지만..." 초머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쉽게 거리에 나올 수 없는 또 어떤 사정을 가진 누군가의 잊지못할 특별한 순간이기도 하지."


초머는 빈 잔에 커피를 다시 채워주었다.

"자, 누구에게 그림을 줘야하는지 말해보게. 맞춘다면 그 다음 얘기를 해줄 수 있네."


달의 시간은 지나갔다. 창가에는 별빛이 찾아왔다. 커피를 사이에 둔 세 사람의 시간이 그곳에 머물고 있다. 커피가 밤하늘처럼 가득 잔을 채운다.



Bob Dylan -One more coffee

https://www.youtube.com/watch?v=95cufW4h-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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