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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혜 Oct 15. 2024

어떻게 살면 행복할 것 같아?

 내가 아는 건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 쪽이야. 일단 난 매일매일 웃으면서 살고 싶어. 남편이랑 나랑 둘이 합쳐서 한국 돈으로 1년에 3000만 원만 벌어도 돼. 집도 안 커도 되고, 명품 백이니 뭐니 그런 건 하나도 필요 없어. 차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돼. 대신에 술이랑 맛있는 거 먹고 싶을 때에는 돈 걱정 안 하고 먹고 싶어. 어차피 비싼 건 먹을 줄도 몰라. 치킨이나 떡볶이나 족발이나 그런 것들 얘기야.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남편이랑 데이트는 해야 돼. 연극을 본다거나, 자전거를 탄다거나, 바다를 본다거나 하는 거. 그러면서 병원비랑 노후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민음사, p152



이걸 읽으면서 나는 어떻게 살면 행복할까, 생각해보면 재밌을 것 같았어.


나는 나중에 아이들 다 스무살 되면, 그러면 내 나이가 54살이고 남편은 53살이네. 그러면 그때 남편이랑 배낭 하나씩 메고, 1년에 1번씩은 나라 하나를 정해서 거기 가서 2주 정도 여행하고 오고 싶어. 2주 여행하는데 돈이 얼마나 들까? 일단 멀리 갈지도 모르니까 항공료는 둘이 합쳐 200만 원으로 하자. 숙박비, 식비, 관광비도 둘이 합쳐 200만 원으로 할까? 2주 동안 400 쓰고 오는 거야. 대박이네.


나도 계나처럼 큰 집은 필요없어. 집은 더 키우지 말고 지금 사는 집 정도로 아이들 독립할 때까지 유지하자. 그러다 아이들이 각자 나가서 살게 되면, 남편이랑 나랑 둘이 살 수 있는 투룸이나 분리형 원룸에서 사는 거야. 애들이 집에 오면 거실에서 자라고 하지 뭐. 아이들이 자기들 가족까지 생겨서 데려오면 어떡하냐고? 에어비앤비 구해주지 뭐. 1년에 몇 번 에어비앤비 숙소 쓰는 게, 큰 집 유지하는 것보단 경제적일걸?


나도 남편도 먹는 거엔 큰 욕심 없으니까 평소엔 적당히 집밥 먹다가 가끔씩 너무 요리하기 싫고 귀찮을 땐 배달음식 시켜 먹을 수 있으면 좋겠어. 치킨, 피자, 족발. 갑자기 너무 땡긴다, 족발. 안 먹은지 오래 됐네.


무엇보다 건강해야해. 수영은 주2회, 홈트는 주3회 꾸준히 할 수 있으면 좋겠어. 채소와 단백질을 잘 챙겨야 하는데, 이런 식재료들은 비싸지. 그리고 비타민 같은 것도 좀 먹어줘야 하고. 운동과 식단, 영양제를 챙길 수 있는 돈이 필요하겠다.


나는 그냥 소파나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화나 예능을 보고, 아이패드 드로잉을 연습하고, 외국어 회화 연습 정도 하면 만족해.


아이들은 그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걸 빨리 찾을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 나처럼 마흔이 되어서야 스스로를 알게 하기는 싫고, 공부와 경쟁에만 집착하며 살게 하고 싶진 않아. 다양하게 경험해 보면서, 스스로를 성찰해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데, 그러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


계나는 남편이랑 둘이 합쳐서 1년에 3천만 원만 벌어도 된다고 했는데, 나는 그거보단 더 필요할 것 같아. 벌써 우리는 4식구니까 1년에 6천은 필요하다고. 쉰 살 넘어서 매년 2주씩 여행 다니려면, 그리고 아이들 키우면서 지원해주려면, 아이들 독립하고 집을 줄인다고 해도, 1년에 적어도 천만 원씩은 저축해야하지 않을까. 천만 원씩 20년이면 2억. 생각보다 큰 돈은 아니네.


암 같은 죽을 병 걸리면, 나는 일단 보험금 타고, 치료는 안 할 거야. 고통이 심해지면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서 생을 마감할 거니까. 몇 십 년 뒤에는 안락사도 지금이랑은 좀 달라져있지 않을까. 그러니 죽기 전에 병원비 같은 데엔 돈을 쓰고 싶지 않아. 물론 이건 아이들이 다 성인이 된 후에라는 전제가 깔려 있지. 아직 아이들이 어린데 큰 병에 걸리면 나아야지. 아이들에겐 무엇보다 엄마가 살아있는 게 중요해. 이건 아빠도 마찬가지.


아이들이 좀 크고, 나도 각종 집안일에 수월해져서 하루에 시간이 많이 남게 되면, 그때는 월 백만 원이라도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겠어. 글을 쓰거나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라면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물론 글과 강의로 백만 원을 벌지 못한다면, 다른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백만 원은 벌어서 노후 대비를 해 보자.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아이들이 빚을 지는 건 원하지 않아. 나가서 산다면 원룸 월세나 전세 보증금은 지원해주고 싶고,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학비도 지원해주고 싶어. 그러려면 월 백만 원은 부족하겠다. 적어도 2백은 벌어야겠는걸. 앞으로 7년 뒤면 첫째가 중학생이 돼. 그러면 내가 46살. 그로부터 10년은 2백만 원씩 벌면서 일하고 싶은데, 그럴 수 있게 앞으로 7년을 잘 준비해보면 좋겠다.


내가 어떻게 살면 행복할지 이렇게 써 보고, 대략적으로나마 돈도 계산해보니 뭔가 미래와 내 삶에 대한 불안감이 많이 줄어든 것 같은 기분이야. 좋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이미 행복할 수 있고, 앞으로도 불행해지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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