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하 Feb 06. 2024

어른들의 힐링도서

서하의 On-Air

 한 달 동안 서점에서 팔린 비소설/소설 책들 중에 마음에 드는 몇 권을 골라 읽고 있습니다.

 그 중에 어른들의 힐링도서인 자기계발서가 두 권 있습니다.

 하나는 자존감수업의 저자이자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윤동균 작가가 출간한 마음집중력입니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인 줄리아 켈러 작가가 출간한 퀴팅입니다.

 자기 계발서를 어른들의 힐링도서라 한 이유는 그 책들이 성공으로 가기위한 다양한 방법과 유명인, 일반인의 사례들을 제시하며 희망적인 미래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지금 잘 나가는 자기 계발서는 성인이 가장 힘들어하는 문제를 보여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24년 1월에 출간한 마음집중력과 퀴팅은 비슷한 문제에 대해 비슷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바로 실패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인생 궤도를 수정하는 것에 대해 말이죠.

 두 책은 실패의 원인이 지나친 성과주의 사회의 부작용으로 인한 번아웃, 마음지침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어떤 일에 대한 성과를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끝까지 버티는 게 미덕이 아니라 실패를 받아들이고,  또 다른 시작으로 나아가는 게 성공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설득하고 있습니다.

 저는 두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 대부분 동의합니다.

 단, 실패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게 성공을 쟁취하는 방법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말에 저는 이런 단서를 달고 싶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공이 사회적인 성공이 아니라 자기 인생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성공을 뜻한다면 동의한다고요.

 

 저에게도 실패의 순간, 번아웃이 있었습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한계치를 넘어서면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습니다.

 이렇게 환경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납득당한 실패에 대해서 당연히 스스로는 받아들이기 힘들더라고요.

 그런 때 갑갑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으려고 올라간 뒷산 산책로에서 뜻밖의 광경을 보았습니다.

 뒷산 산책로는 휠체어가 오르내릴 수 있도록 정산까지 산을 빙 둘러서 이어지는 나무바닥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덩치 큰 이십 대 청년이 럭비할 때나 쓸 것 같은 헬멧을 머리에 쓰고 손에는 시각 장애인용 지팡이를 든 채 길을 조금씩 더듬어 내리막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발짝 뒤에는 그의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청년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지켜보며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시선을 끄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그 분들과 조금 거리를 둔 채 쫓아가게 되었습니다.

 잠시 지켜보니 청년이 왜 헬멧을 쓰고 있는 지 알게 되었습니다.

 청년이 네, 다섯 발자국 걸으면 한 번 정도는 꼭 난간이나 나무, 벤치에 몸을 부딪혔거든요.

 그리고 그럴때마다 그의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ㅇㅇ야, 신중하게 지팡이로 손의 감각을 느끼면서 내려가야지.

 얼마 남아있지 않은 네 시각에 의존하려고 하면 안 돼."

 청년은 초보 시각 장애인이었습니다.

 청년과 그의 어머니가 장애를 받아들이는 담담한 모습을 지켜보며 말 못할 감동이 마음 속에서 피어났습니다.

  실명을 받아들이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모자는 저처럼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버티지 않았습니다.

 버틴다고 실명을 막을 수는 없으니까요.

 오히려 먼저 적극적으로 실명을 맞이하며 실명과 함께 하기 위한 삶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이니 당연히 지팡이로 느끼는 세상이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보호헬멧과 가족과 함께 청년은 난간에 몸이 부딪히고, 나무에 머리를 박고, 벤치에 걸려 넘어지길 반복하면서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묵묵히 산책로를 내려갔습니다.

 저는 실패가 끝없이 저를 추락시키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허우적거리고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추락이 아니라 내리막길일 뿐이라고.

 처음 가 보는 내리막길에 겁을 먹었을 뿐이니 조심해서 내려가면 되는 일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며칠 뒤 저는 다시 그 청년을 만났습니다.

 청년의 뒤에 그림자같이  함께하던 어머니는 그 날은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본인 없이도 청년이 등산로를 오르내릴 수 있도록 혼자 청년을 내보낸 듯 싶었습니다.

 청년은 아직 지팡이로 주변을 살피는 게 서툴고 몇 번 넘어질 뻔도 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 보다 발걸음은 당당하고 얼굴에는 자신감이 보였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저도 청년처럼 하면 된다는 것을.

 그 청년을 5~6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산책길에서 마주칩니다.

 지금은 보호 헬멧 없이도 익숙하게 흰 지팡이를 마술사처럼 휘두르며 여유롭게 산책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 몇 년 동안 저도 다시 인생의 방향 전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은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흥미로운 모험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누구나 인생에 실패의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는 이 시각장애인 청년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저처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이전 08화 책 유적지로 출근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