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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굽는 계란빵 Mar 27. 2024

미소의 남자 (3)

미소는 오전에 받은 과제를 붙잡고 한참을 시름하고 있었다. 조장을 맡는 바람에 신경 써야 할 것이 여간 많은 것이 아니었다. 함께 방을 쓰고 있는 수민은 그 사이 잠이 들었는지 조용했다. 방 한 구석에 스탠드를 켜고 졸음껌을 씹어가며 참고 있었다. 


'이렇게 어려운 과제라니.'


한준혁 과장의 과제는 특히 난이도가 높았다. 


'얼굴은 잘생겨가지고.' 


베일듯한 콧날과 훤칠한 키, 대서양만 한 어깨에 베이비파우더 향을 내뿜는 


'아니지. 내가 무슨 생각을.'


대학시절 시커먼 예비역들만 잔뜩 봐왔으니 그런 외모에 시원한 청량감이 드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건 그거고 아무래도 지금 잠들지 않으면 꼬박 밤을 새울 것 같았다. 미소는 과제를 정리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입고 자기 딱이라니까.'


회사에서 나눠준 단체티는 잠옷으로 딱이었다.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물은 하얀 티셔츠를 투명하게 만들었다. 드라이기를 사용했다간 수민이 깰지도 모르니 살금살금 나오려는데 침대 위에서 수민이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시간. 


'어떻게 하지? 큰일 났네.'


일단 누군가에게 알려야 했다. 함께 했던 동기들은 이미 잠에 빠진 지 오래 일 테고 그 친구들한테 말한다고 일이 해결되진 않을 테니 상사에게 전하는 수밖에. 미소에 머릿속에 떠오른 건 인사팀장이었다. 아무래도 총괄로 나선 사람이기도 했기에 


'방이 몇 호였더라.' 기억을 더듬어 가기 시작했다. 


다급하게 벨을 눌렀다. 인기척이 없자 이제 쾅쾅 문을 두드렸다. 그때 등장한 사람은 인사팀장이 아닌 한 과장이었다. 


'아직 깨어있었나?'


잘생긴 사람은 잠도 없는 건지 당황하긴 했지만 수민의 일이 먼저였다. 


"무슨 일입니까?"

"안녕하십니까? 저는 신입 사원 공미소라고 합니다. 혹시 인사팀장님 방 아닌가요?"

"지금 자리에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죠? 같이 방을 쓰는 친구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해서요."

"언제부터닙까?"

"모르겠어요. 제가 씻고 나오니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공미소. 드디어 만났네. 


"신입 사원 공미소씨."

"네?"

"몇 호죠? 앞장서세요. 내가 가죠."


준혁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따라 방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선 그녀의 얼굴에 초조함이 묻어있었다. 그래도 준혁이 옆에 있으니 든든했다. 밤인데도 그의 얼굴은 열심히 일을 하는 중이었다. 


"늦은 시간에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단답형으로 나눈 대화를 끝날 때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미소의 방. 수민은 배를 부여잡고 복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수민아 괜찮아?"


수민에게 외쳐보지만 답이 없었다.


"아무래도 응급실에 가는 게 좋겠네요."


119를 부르자니 소란스러워질 것 같고. 근처에 병원이 멀지 않으니 차를 타고 가면 얼마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공미소씨.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요."


미소는 수민의 옷과 신발을 챙기고 방을 나섰다. 준혁은 수민을 등에 업고 자신의 뒷좌석에 태웠다. 따가운 눈총을 이겨내고 차를 가져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합니다."


준혁의 차는 속력을 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잘도 달렸다. 내비게이션은 1분 뒤 병원도착 알림을 보냈다. 


"혹시 보호자 되십니까?"

"보호자는 아니고 회사 상삽니다."

"환자분 요 근래 술을 많이 드셨나요?"

"술이요?"


알고 보니 과음을 한 탓에 탈이 난 것이었다. 요 며칠 밤이면 다른 방에 가서 술에 취해 오더니 사달이 난 모양이다. 


"링거 놨으니 괜찮아질 거예요. 다 맞으면 퇴원하셔도 됩니다."


'술병이라고?'


밤마다 어길 가나 했더니. 술 먹으러 간 거였어? 미소는 궁금했던 수민의 행방에 의문이 풀렸다. 때마침 택시에서 내리는 인사팀장 얼굴이 보였다. 


"우리는 이만 가죠."

"우리요?"


준혁은 인사팀장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미소를 데리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미소는 밤이라 정신이 없던탓에 무슨 차를 타고 온 줄도 몰랐지만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멋진 차였다.


"타요."


공미소 출세했네. 이런 좋은 차를 타보고. 차 안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반듯한 성격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리고 알아챘다. 지금 자신의 몰골을. 화장도 안 한 생얼에 머리카락은 마구 헝클어져 있었다. 


'헉. 이 꼴로.'


후줄근한 단체 티가 그녀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운동복에 티셔츠만 입어도 광이 나는 누구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창피해 죽겠네.'


따뜻한 음료 두 개를 뽑아온 준혁이 차에 올랐다.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미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다 본 것 같은데. 그렇게 숨긴다고 숨겨지나?"


'하. 진짜 창피해.'


"그러지 말고 이것 좀 받죠."


미소는 한 손은 얼굴을 가리고 한 손은 준혁이 준 음료를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해야 할 것 같은데."


궁금했던 차에 자신의 발로 찾아와 준 미소가 더없이 고마웠다. 


'생각보다 더 귀엽네.'


준혁은 스윽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밑에서 구르게 해야겠다고. 미소 밑에서 구르게 될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꿈에도 알지 못한 준혁은 시원하게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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