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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일기 13#] 너희들 엄청 싸우겠다

임신 14주, 어디까지가 적정 역할일까?

by Sylvan whisper


‘너희들 딱~ 보니 엄청 싸우겠다’


우리 부부는 우리가 처음 만난 도시인 대구에서 지내다가 결혼식을 올리고 난 뒤, 서울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다. 대구에서 살던 시절부터 우리가 친하게 지냈던 선배 부부가 있는데, 이 선배님도 마침 우리보다 먼저 서울에 정착하게 되어 서울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같은 ‘동’, 말 그대로 동네이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런데 목적지와 가까운 곳에 있을수록 더 지각을 하게 되는 기묘한 우리의 심리처럼, 걸어서도 고자 10분 남짓한 거리의 우리 두 부부는 만남을 수개월이나 미루어 왔다.

한 번 날 잡고 만나야지!라는 다짐을 수 차례, 한가롭게 한강 나들이를 하던 어느 주말 우린 드디어 선배에게 만날 약속을 잡기 위해 연락을 드렸다. 그 선배님은 쌍둥이를 육아하느라 아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기에 우린 적어도 몇 주 뒤, 적어도 며칠 뒤에나 약속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답변은 예상외로 ‘오늘 당장’이었고, 쌍둥이 아이들을 재우고 난 뒤인 당일 저녁에 선배의 집에서 만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을 돌보느라 특별한 일정은 따로 없으셨고, 아이들이 잠들고 난 뒤엔 시간이 남으시는 것이었다.




만나지 못한 기간 동안 서로 놓쳤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각자의 근황 이야기 보다도 우린 곧바로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이야기로 곧바로 진입했다. 선배 부부는 그 누구보다도 ‘육아’의 세계로 우리 부부를 인도(?)하고 싶어 했으니, 이런 대화주제의 급한 전환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우리 부부의 임신 소식이 우리 두 커플 사이에서 가장 최근의 빅뉴스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배부부는 아기 하나도 아니고, 형제 혹은 자매도 아닌 아들, 딸 이란성쌍둥이를 양육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성격은 차치하고 그 조건 자체만으로 최고의 육아 난이도를 지닌 케이스였던 것이다. 때문에 우리 부부는 선배부부의 경험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음… 그렇지만 저는 아내가 이런 부분은 좀 신경 써줬으면 좋겠어요’


나는 걱정도 많고 미리 계획하고 준비해놓고 싶은 것들도 많은 성격인지라 ‘임신, 출산’과 ‘육아’에 대한 포괄적인 대비를 해야 된다고 생각해 왔다. 이 때문에 임신 출산기간에 필요한 물품도 전부 리스트업 하고 구매할 품목을 미리 선정하고자 했다. 당연히 출산 전에는 임산부에게 중요한 생활습관, 영양 등과 같은 것들도 체계적으로 정리해두고자 했다. 또한 출산 직후엔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필요한 육아 지식들을 미리미리 습득해 놓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바람에 대해서 나는 어느 정도 실천을 시작한 상태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아내는 생각이 달랐는데, 때문에 이에 대한 내 생각을 나눌 때면 ‘벌써부터 할 필요 없다’라는 답변이 주를 이루곤 했다.




나는 선배 부부와의 대화에서, 나의 이런 가치관에 대해서 설파하고 아내도 이를 어느 정도 따라주어 역할분담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마음속에는 어쩌면 ‘내가 이만큼 열정적인 남편이고 아빠이다’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 사고방식이 옳다는 생각이 깔려있었다. 때문에 선배부부가 나의 이 의견을 들으면 내게 동의하고 아내도 어느 정도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답을 기대했다.


‘딱~ 보니까, 너희 정말 많이 싸우겠네!’


그렇지만 그들의 답변은 내 예상과는 아예 다른 국면이었다. 내 가치관이 옳다 그르다, 혹은 아내와 남편이 어느 정도까지 준비해놔야 한다는 측면의 답변이 아니었던 것이다. 형수님은 ‘너희 정말 많이 싸우겠다’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형수님의 이야기는 요컨대 이러했다. 사실상 대부분의 요인들에 대해 ‘결정’ 하게 되는 것은 아내일 것인데, 남편이 너무 많은 것을 원하면 오히려 갈등이 잦아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또한 단순히 남편이 이것저것 참견하지 말고 아내가 알아서 하게 놔두라는 말과는 다른 의미였다.


조급함이 담겨있는 내 심리를 완화시키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고, 앞으로의 많은 의사결정 과정에 있어 벌써부터 많은 온도차를 보이는 우리의 모습을 캐치한 것이다. 따라서 그 간극을 줄여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나는 임신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무언가 쫓기듯 전전긍긍한 심리를 마음 한편에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던가, 사공이 둘이어도 그 두 사공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다른 속도로 노를 저으면 배는 그 자리에서 빙빙 돌기 마련이다. 우리 부부가 각자 다른 온도로, 다른 방향을 보면서 나아가려 하면 이처럼 이도저도 아니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은, 그리고 아내는 각자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의 문제가 아니다. 일단은 서로가 원하는 바에 대한 공감대부터 형성하는 것이 시작이며, 가장 중요한 것이다. 결국 ‘누가 더 많이 준비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맞추어 가는 일이 가장 먼저였다. 우리 부부의 첫 번째 과제는 태교가 아니라, 공감이었다.






한 줄 정보(14주)

1. 임신 후 조급함과 불안감은 흔한 감정이다. 특히 ‘준비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과도해질 때 배우자와의 온도차가 발생할 수 있다.

2. 태교의 핵심은 ‘준비’보다 ‘공감’이다. 부부가 서로의 감정과 방식을 이해하고 조율하는 것이 첫 번째 태교다.

3. 임신·출산 관련 의사결정의 주도권은 실제로는 아내에게 있는 경우가 많다. 남편이던, 아내던 다른 한쪽은 ‘함께 준비하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4. ‘태반’이 완성되는 시기, 엄마의 몸에 완전한 정착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며 이로 인해 신체발달에 가속도가 붙는다.

5. 임산부용 교통비 지급뿐만 아니라, 공영주차장 할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지자체에 따라서는 아예 차량이 등록 가능한 곳도 있다.

6. 갈비뼈도 형성이 되었으며 위, 간 등 대부분의 장기와 신경, 근육이 완성되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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