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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일기 #15] 딸이 좋아, 아들이 좋아?

임신 15주 차, 성별검사

by Sylvan whisper

'아기 심장박동 소리가 기차소리 같으면 아들! 말발굽 소리에 가까우면 딸 이래!'


아니 세상에 그런 미신이 다 있다고? 어느 날 아내가 친구들에게서 전해 들은 태아의 성별 미리 보기(?) 비법이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되어 행복에 빠져있는 수많은 부부들에게 '태아의 성별'은 아마도 임밍아웃 다음으로 기대감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일 것이다. 과연 딸일지 아들일지에 대한 행복한 궁금증은 그 기대감의 크기를 대변하기라도 하듯 우스꽝스러운 미신들까지 만들어냈다. 아주 대표적인 태몽을 통한 예언 외에도, 아기의 심장소리로 구분할 수 있다던가 산모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이 육류인지 혹은 과일인지 따위의 민간요법이 있다. 이게 미신임을 알면서도 기대를 걸어보게 되는 것은 부부가 아기를 알아감에 대해 아주 큰 기대와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현상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발생했다. 여러 방법들을 통해서 아기가 아들인지, 혹은 딸인지 점쳐보곤 한 것이다. 이런 점지의 과정에서 아내가 특히 귀여웠던 부분이 있는데,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부터 어느 성별을 더 원하는지 직접적인 언급을 삼갔다는 것이다. 아내는 분명 예전부터 아들보다는 딸을 갖기를 원했다. 임신을 하기 전부터의 일관된 취향이었다. 그런데 임신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는 '딸이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은 입에 담지 않았다.

아내의 이러한 말조심에는 아마도 두 가지 이유가 있었을 거라 추측된다. 첫 번째는 아마도 아기가 아들일 경우엔 죄책감까지 들 수 있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혹시라도 부정(?)이 탄다면 자신의 염원이 오히려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머피의 법칙이라도 발동한 것이었을까? 사랑이의 성별은 아들로 밝혀졌다.




드디어 아기의 성별을 알 수 있는 15주 차 진료의 날이 다가왔고 우린 떨리는 마음을 지닌 채, 산부인과로 향했다. 정확히는 성별검사가 아니고 2차 기형아 검사가 진행되면서, 초음파를 통해 아기의 외형을 하나씩 살펴보는 과정에서 성별 또한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사랑이는 이번에도 또 한 단계 훌쩍 자라나 있었다. 지난 진료 때는 '팔다리의 형체가 갖추어졌구나'라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진료에서는 '이제는 제법 팔다리가 길어졌구나'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초음파가 시작되는 동시에 팔과 다리를 바로 인식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얼굴도 조금 더 동그랗고 크게 자랐다. 물론 몸무게와 키도 자라났다. '10cm에 100g' 이렇게 조그마한 녀석이 점점 눈에 띄게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아가의 성별은,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사실 이미 다리 사이로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선생님께서 '공식적인 선언'을 하기 전에, 아내와 나도 그 조그마한 점이 보여서 '이게 혹시...?'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런 생각이 들던 시점부터 아내의 표정은 조금씩 굳었던 건지, 원장님은 아내의 눈치를 조금씩 보시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곧이어 선생님의 입에서 아이의 성별이 밝혀지던 순간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이고.. 엄마는 딸을 더 원하셨구나, 그래도 아버님은 아들이 더 좋으셨죠?'


성별에 대한 원장님의 '선언'이후, 아내는 말문이 막혔다. 그런 아내의 반응으로 인하여 조금은 무안한 듯 말씀하셨다. 아내의 투정 어린 속마음이 예상되기도 하여 스멀스멀 미소가 조금씩 올라오다가, 원장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나는 웃음이 터져 나온 것이었다.




요즘 주변을 보면 '딸바보'가 많이 보인다. 아마 예쁜 말, 살가운 손길 때문일 것이다. 남자아이, 아들에 대한 육체적 육아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데 반해 딸은 감정적인 예쁜 말과 애정표현을 듬뿍 느낄 수 있다. 아내는 예전부터 남자아이의 에너지를 감당하기 버거울 거라는 생각에 이를 걱정해 왔다. 그래서 임신 기간 동안, 아내가 아들! 혹은 딸! 을 외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던 것은 어찌 보면 아내의 최선의 노력이라고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에 반해 나는 딸이던 아들이던 상관없다는 의견이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아들을 더 선호하지도, 딸을 더 선호하지도 않았다. 나의 상상, 예상은 어느 성별이 나오건 간에 꿈만 같은 미래를 그리는 것에 가까웠다.

아들이 태어난다면, 어려서부터 이 녀석을 데리고 공원에 나가서 같이 러닝을 해볼까? 헬스장에도 데리고 가 볼 수 있지 않을까? 훌쩍 커버린 성인이 되면 같이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남자대 남자로 허심탄회한 얘기들도 나눌 수 있겠지? 반대로 딸이 태어난다면, 출근하는 아빠에게 가지 말라며 글썽한 눈빛을 보내고 퇴근하고 돌아오면 총총 달려 나와 아빠에게 안아달라고 하지 않을까? 주말에 침대에 누워 함께 뒹굴거리면 아빠랑 결혼할 거라며 엄마한테 저리 가라고 할지도 모르지! 이런 상상들을 하며 혼자서 속으로 히죽거려 왔었다.


그런데 막상 성별검사의 결과를 듣고 나서는 조금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라면... 뭐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하지?'



사랑이가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난 후,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꼬마 남자아이와 어떻게 즐겁게 지낼지 보다는, 이 세상에서 '남자'로서 겪어야 할 어려움들과 '그걸 이겨내는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무얼 가르쳐야 하지?'였다. 그리고 이에 더해서 또 한편으로는 아 '딸이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분명 어느 성별이던 상관없었는데, 왜 이러지?'

아내 또한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이야기를 했다.


'둘째를 가져야 하나?'


아내는 이전부터 딸이 좋다고 말해왔던 것처럼 예전부터 생각해 왔던 것이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바로 '만약 첫째가 아들이라면 둘째는 싫다'였다. 복잡한 계산과정이 있지만 요컨대 이는 육아 난이도를 예상해 본 아내의 결론이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생각에 대해서, 아내도 막상 첫째가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니 딸에 대한 미련으로 인해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이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우리 아가의 성별공개는 아내와 나의 사고방식을 순식간에 바꾸어 버릴 만큼 큰 의미를 지닌 사건이었다.




이날 내가 깨달은 것은 '사실은 어느 성별이 좋고, 나쁨이 없다.'는 당연한 말이다. 이를 조금은 다르게 번역을 해보자면, '아기가 어떤 성별이던, 아쉬움은 있다'라는 것이다. 내가 아들에 대한 행복한 상상을 해왔던 것에 반해 아들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고민거리들이 생기고, 딸에 대한 욕심이 생기는 것은 요약하자면 '아들을 갖게 된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어떤 성별이건 상관없다는 생각을 쭉 고수해 왔던 나였음에도 말이다. 이런 생각이 지나가고 난 뒤에 나는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이건 내가 딸 아빠가 되었어도 똑같이 아쉬웠겠구나'


만약 아들이 아니라 딸이었다면? 이 험한 세상... 귀여운 내 딸을 어떻게 세상 밖에 내놓지? 어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결혼하겠다고 남자를 데려오면 도무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거지? 막상 겪어보니, 딸이었을 경우에도 나의 반응은 뻔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도 병원을 나와서는 작게 얘기했다. '그래도 귀엽겠지? 우리 아가는 우리 닮아서 얌전할걸?' '아들이면 하나하나 안 챙기고 막(?) 키워도 되니 오히려 좋지 뭐!'라고 말하고는, 아직은 한참 먼 이야기인 '둘째'라는 단어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런 나와 아내의 생각의 종착지는 아마 같았을 것이다. '아들 하나, 딸 하나면 얼마나 이쁠까!'


그리고 이제 '아기가 어떤 성별이던, 아쉬움은 있다'라는 말은 또 한 번 번역할 수 있다.


'사실은 우린, 아들도 갖고 싶고 딸도 갖고 싶다.'






한 줄 정보

1. 임신 15주 차에는 2차 기형아 검사와 함께 성별을 초음파로 확인할 수 있다.

2. 임신 이르면 2~3주 이른 시기에 알 수도 있지만 평균적으로 15~16주 차에 아기의 성별을 알 수 있다.

3. 15~16주 태아가 10cm, 100g을 넘기 시작한다. 신체의 형성이 이루어진 만큼 자궁의 크기도 충분히 커져 아이가 활발히 움직일 수 있다.

4. 아이가 표정을 짓기 시작하고 손가락 빠는 등 세상에 나올 연습을 시작한다.

5. 태아의 성별을 미리 짐작하는 다양한 민간설(심장박동, 식성 등)은 굉장히 많지만 당연히 근거는 없다.

6. 성별에 대한 선호와 실망은 ‘부정적 감정’이 아니라, 부모로서의 기대와 책임감의 반영이다.

7. 첫 아이의 성별이 부부의 미래 계획(둘째 계획, 육아 방식 등)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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