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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일기 #17] 비결이 뭐야?

임신 17주 차, 임신을 준비하는 친구들

by Sylvan whisper


'인마 비결이 뭐냐?'


오랜만에 만난 막역한 나의 고등학교 동창 둘, 우리 셋은 겨우 몇 년 내외로 비슷한 시기에 모두 결혼식을 올렸다. 여느 유부남 혹은 30대의 어른이 그러하듯 우리도 1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하고 있었다. 그래도 간간이 연락은 유지해 왔기 때문에 나의 임신 소식은 모두들 알고 있었다. 한 녀석은 아직 아이가 없는 상태였고 다른 한 녀석은 첫째 아이의 육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기에, 사실 나는 우리 부부의 임신 소식이 이 녀석들에게 얼마나 큰 임팩트가 있었는지 예상하지 못했다.

때문에 나는 사실 그저 평소에 하던 얘기들이나 하면서 가볍게 한 잔 나누자는 마음으로 약속장소로 향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날 우리의 이야기 주제는 계속해서 하나로 수렴했다. 임신의 직접적인 주체가 아닌 '남편'들의 이날 최대의 관심사는 바로 '임신'이었다.




'계획임신 한 거야? 산전 검사는 했어?'

'몇 개월 만에 성공한 거야?'

'와이프는 입덧 없어?'


약속장소에서 만나, 펍으로 향하는 길에서부터 이 두 녀석의 질문세례는 시작되었다. 그야말로 폭탄과 같은 질문공격이었다. 내가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끝내기도 전에 다음 질문이 계속해서 이어졌으니 말이다. 막역한 고향친구들이 만나면 으레 그렇듯 원래는 각자 하고 싶은 말들만 떠들어대기 마련인데, 오늘은 시작부터 내게 집중적으로 질문들이 쏟아졌다. 이렇게까지 한 가지 주제로 우리가 빠르게 빠져든 것은 처음인 듯했다.


'사실은 계획 임신은 아니었고...'


나는 내가 겪었던 모든 것을 얘기해 주었다. 사랑이가 찾아온 것은 정말로 우리가 생각했던 시기 혹은 예상했던 시기가 아니었고, 오히려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당황을 해버렸던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또한 우리 부부도 난임을 대비하여 산전검사를 고려하기도 했으며, 임신이 되기까지 몇 개월에 걸쳐 노력을 해야 할지 가늠해 보았던 일 등 하나씩 우리 부부와 사랑이의 이야기를 풀어갔다.


친구들은 특히 나의 '비계획 임신'에 대해서 굉장히 놀라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이 두 녀석의 '질문세례'의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들의 '자녀계획'이 현재진행형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친구는 첫째 아이를 준비 중이었고 3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처음 계획을 시작할 때부터 정자검사를 비롯한 산전검사는 그 친구에게 '기본'이었다. 나는 사실 산전검사 등에 대해서 그저 '해봐야겠다' 생각하기만 했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았기에, 병원에서 임신 확률이 가장 높은 날을 받아올 수 있다는 것도 이 친구의 경험담을 통해 알게 되었다.

다른 녀석은 첫째 아이가 이미 있어 육아를 하고 있었지만, 이 친구도 현재 둘째를 준비 중이었다. 이 친구도 앞의 친구와 동일하게 산전검사와 임신에 좋다는 병원 및 한의원 등.. 더 풍부한(?) 정보들을 가지고 있었다. 잊고 지냈지만 이 친구는 첫째를 가질 때도 임신이 어려울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었다. 이 친구의 배경지식이 풍부한 사유였던 것이다.


우리는 이 친구 녀석 때문에 웃기기도 하고 웃기지 않기도 한 에피소드로 한참 농담을 주고받았다. 산전검사에서 받은 정자검사 결과, 활동성 좋은 정자의 비율이 2%였다고 하는데(평균적인 수치는 4%라고 한다), 첫째 아이를 가질 당시에는 1% 였었다는 것이다. 이 친구는 그 2%라는 결과를 듣고는 '두 배나 올랐네요!?' 하고 환희가 담긴 말을 내뱉었는데, 의사 선생님은 '오르긴 했죠'라고 했더라는 것이다. 첫째 아이도 무탈하게 찾아와 줬던 덕택인지, 원래의 긍정적인 성격 때문인지 이 친구는 이번에도 그 결과에 대해서 웃음으로 승화할 수 있었다. 그 태도 덕분에 우리 또한 함께 웃으면서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사실은 나도 주변에 결혼을 빨리한 직장동료 및 지인들이 많다 보니 현재 우리 나이대 부부의 임신과정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30대 초중반 부부의 임신이란 3개월 정도는 우스울 정도로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게 가슴에 와닿는 일은 또 다른 일이었다. 나는 당연히 어떠한 어려움 없이 사랑이가 찾아와 주었기 때문에, 내가 '임신의 어려움'을 체감하기란 어찌 보면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체감이 내 막역한 친구 놈들 덕분에 오늘 불현듯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천만 다행히도, 내게 이 체감은 '임신의 어려움'을 비스듬히 벗어나 '어려움을 뚫고 내려와 준 아기'로 찾아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혼자서 반대 방향이었기에 버스정류장으로 타박타박 걸어가면서 오늘 우리의 대화가 평소와는 사뭇 달랐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보통은 여느 30대 남자들이 그렇듯 투자 얘기를 하다가, 옛 추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을 웃고 마지막은 서로의 고민이나 커리어 따위에 대해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의 대화는 온통 '아기'와 임신이었다.

늦은 시각, 밤거리를 달리는 버스에 올라타 멍하니 음악을 들으며 집으로 향할 때는 문득 깨달았다. 계획이건 비계획이건 생명이 우리에게 와준 것은 그 사실만으로 축복 그 자체라는 것이었다. 아내에게 너무 고마웠고 아가에게 너무 고마웠다. 어찌나 그런 감사의 마음이 샘솟았는지 집에 가면 당장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마저도 나는 마음이 빠르게 동하여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바로 아내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자기, 사랑이가 온건 진짜 축복이야'






한 줄 정보

1. 30대 초중반 부부의 임신은 평균적으로 여러 달의 시도와 인내를 필요로 한다.

2. 산전검사는 정자검사·호르몬 수치·배란 주기 확인 등을 포함하며 임신 계획 단계에서 일반적으로 시행된다.

3. 병원에서는 배란일 기반으로 ‘임신 확률이 높은 날짜’를 안내해 주는 경우가 흔하다.

4. 남성 정자의 정상 활동성 비율은 보통 4% 내외이다.

5. 임신 준비 과정에서 부부가 겪는 심리적 압박감은 매우 일반적이다.

6. 임신의 어려움을 알게 되면 ‘생명이 와준 것 자체’에 대한 감사함이 깊어지는 심리적 변화를 경험한다.

7. 태아는 이제 손톱, 발톱, 손가락에 지문도 생기는 시기이다. 대략 13cm, 140~150g

8. '안정기'에 접어든 시기이며 슬슬 엄마의 배가 눈에띄게 나온다. 태동은 아직 이르지만 태담을 적극적으로 시작해줘야 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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