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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일기 #14] 태교로 락페스티벌 어때?

임신 15주차, 사실은 데이트가 더 중요했다

by Sylvan whisper

'락(Rock)음악도 태교지 뭐!'


나는 음악듣는걸 참 좋아한다. 무언가 집중할때면 항상 이어폰을 귀에 꽂고 어떤 음악이라도 틀어놓는다. 운전할때는 라디오를 듣는다거나 침묵 속에서 운전해본 적이 없을 정도이다. 내가 무언가를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 활동이 아닌 이상, 모든 활동에 음악을 곁들인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장르도 가리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록음악을 참 좋아하는데, 서울로 이사를 온 김에 맘에드는 콘서트나 공연을 최대한 가보는 것도 올해의 목표 중 하나였다.

그에 반해 아내는 록음악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같이 공연을 즐기기엔 한계가 있었다. 가깝지만 먼 인천에서 열리는 록페스티벌은 아내와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난지 한강공원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은 아내와 함께 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를 위해서 아내가 구미가 당길만한 모든 요인들을 설명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 가을의 초입에 열리는 시기, 헤드라이너(페스티벌의 마지막 하이라이트 무대)를 장식하는 밴드, 그리고 우리와 친한 커플과 같이 간다는 점까지! 아내는 다행히도 나의 제안을 수락해 주었다. 헤드라이너 밴드의 대중성이 한 몫했다. 자우림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재미있게 봤던 일본 애니메이션 재난 3부작의(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날씨의 아이, 너의 이름은, 스즈메의 문단속) OST를 맡았던 Radwimps가 아내의 흥미를 끄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문제는 우리의 티켓팅 시점은 우리가 임신사실을 알기 훨씬 전이었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임신을 하기도 전에 결정해서 티켓팅 했었다. '이러면.... 안되는데!?' 심지어 이벤 페스티벌은 토, 일요일 주말 양일을 전부 가는것으로 계획 했었는데 말이다. 나는 아내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갈 수 있을까? 아내는 가고 싶을까?


'이걸 어떻게 해야하지?'


철없는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가고싶은 마음을 너무 드러내지 않으면서 아내의 의견을 물어보려면 어떻게 해야될지 고민했다. 어찌되었건 '임신'이라는 것은 수 많은 삶의 양식을 바꿔 놓기 때문에, 기존에 하려고 했던 것들을 바꿔야 하는 순간들이 많이 찾아온다. 그리고 이는 철저히 임산부 아내의 심신을 고려해야 하므로 남편들에겐 고민의 순간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록페스티벌 계획에 대한 상의는 의외로 간단히 끝났다. 내가 아내를 설득하거나, 아내가 나를 설득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내도 페스티벌에 가고싶은 마음이 있었는지, 결과는 다행(?)히도 기존 계획대로 페스티벌에 가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일요일만 참여하게 된 아내와는 달리, 나는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 참여하게 되었다. 내가 먼저 갔던 토요일은 낮엔 땡볕, 그리고 오후부턴 '폭우'가 내렸다. 음악을 즐기기야 했지만,토요일의 축제가 끝나고 나서는 이제 내겐 숙제가 남게 되었다.


'이 악천후에.... 어떻게 하지!?'




그나마 일요일은 토요일처럼 폭우가 내린다는 예보는 없었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리쬐는 햇볕이 문제였다. 또한 이뿐만이 아니라 공연장이 생각보다 협소해서 페스티벌 인구 포화도가 심했다. 어제의 폭우 여파로 인해 공연장 바닥은 많은 부분이 진흙탕이 되어있기도 했다. 나는 아내의 체력을 고려해서 페스티벌 초반부의 공연들은 포기하고 페스티벌의 중간, 오후부터 공연장에 가서 기대하던 헤드라이너의 무대만 보는 방안도 고려했다. 그렇지만 문제는 '오픈런'을 해야 진흙도 없으며, 나무그늘 밑에 위치하여 햇빛을 피할 수 있는 명당자리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린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오픈런을 하자니 아내의 체력이 걸렸고, 오후 늦게 가자니 햇빛과 진흙탕을 피할 방도가 없었다. 임산부에게 이 ‘명당자리’가 없다면 페스티벌은 어불성설이었다.


결론적으로 우린 아침일찍 차를 끌고 가서 명당자리를 잡는 전략을 택했고 또 성공했다. 그렇지만 나는 계속해서 아내가 불편한 곳은 없을지 전전긍긍 하며 '괜찮아?'를 남발했는데, '말만 하지말고 행동으로 해'라며 지금은 피식 하게되는 꿀밤 맞는 듯한 꾸중을 듣기도 했다. 아내는 거의 모든 공연을 앉아서 즐겼고, 다행히 날씨도 도와주워 쾌적한 상태에서 볼 수 있었다. 나는 거의 대부분의 밴드 공연을 무대앞에서 몸을 흔들며 즐기는 편이었지만, 우린 마지막 헤드라이너 무대는 오붓하게 나란히 앉아 즐기기로 약속했다. 사실은 아쉬운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스탠딩으로 공연을 즐기는 것이 그 열기와 분위기를 100%, 혹은 그 이상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말도안돼 앉아서 보신다고요?'


우리가 헤드라이너 공연을 앉아서 볼 계획이라는 말을 들으니 페스티벌을 함께 갔던 커플은 탄식하듯 말했다. 같이 나가자는 커플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기대하고 있던 헤드라이너 밴드의 노래들은 잔잔한 곡들이 많았기에 이 또한 나름대로의 낭만이 있을거라 생각했다.

무대앞 스탠딩존은 재미있기는 할테지만 사실은 많은 인파가 촘촘히 몰리고 격한 움직임이 벌어지는 장소이니 위험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루종일 야외활동을 하고 난 뒤라 임산부 아내의 체력도 떨어진 상태였으므로 사실상 이미 결정된 사항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해가 지고, 공연장이었던 난지한강공원에도 어둠이 깔렸다. 나도 하루종일 흥에겨워 놀다 온 뒤였으므로 한바탕 땀과 에너지를 쏟은 뒤, 서늘해진 바람에 열을 식힐 수 있는 시간이었다. 헤드라이너는 오늘의 마지막 공연이고 메인 밴드였기 때문에 우리와는 달리 다른 대부분의 인파는 무대앞으로 향했다. 아침 일찍 나와서 자리잡은, 하루종일 그늘을 제공해주었던 우리의 '명당'자리는 단지 그늘이 전부가 아니라 무대 또한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시야도 확보된 자리였다. 살짝 둔덕 위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앞의 관중들에 의해 무대가 가려지지도 않았다.

대부분 스탠딩 존으로 몰려간 사람들로 인해서, 우린 오히려 조용하고 인적이 없는 곳에서 탁 트인 시야와 빵빵한 사운드를 즐길 수 있었다. ‘진짜 명당’자리에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헤드라이너 Radwimps가 등장하고, 환호소리와 오프닝곡의 둔탁하고 멜로디컬한 밴드사운드가 시작되었다.




아내와 나는 나란히 무대쪽을 향해 앉았다. 일행들이 다 나갔기 때문에 돗자리도 전체를 활용하여 편하게 다리도 쭉 펼 수 있었따. 내 팔은 아내의 어깨와 허리춤을 감쌌다. 거의 모든 공연을 스탠딩으로만 즐겼던 나였던지라 색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아주 인구밀도가 높고 축축히 젖은 공연장이었는데, 이때만큼은 아내와 나만 있는듯 했고 저녁의 공기가 또한 시원해져서 쾌적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하게 되었다. 요 근래는 너무 아기, 그리고 아기, 모든 생각의 중심이 '아기'와 '임산부' 였던건 아닐까? 때문에 '나와 아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계획했던 날들은 너무 적었던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짧다면 짧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순간을 최대한 즐기기로 했다.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할 핸드폰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대신 아내를 감쌌던 팔에, 우리가 함께 듣고싶었던 곡의 선율에, 그리고 그 곡을 들을때 반짝거리던 아내의 얼굴에 집중했다. 아침일찍부터 지속된 야외 일정이라 조금씩 체력이 떨어져오던 아내였지만 그때만큼은 피로감을 잊고 확연히 즐거워하던게 느껴졌다.


페스티벌 날짜가 다가오기 전부터 작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많은 걱정들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이번 페스티벌은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한 아기를 낳기 전에, 아내의 거동이 더 불편해지기 전에 최대한 둘만의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태교'란 사실, 어떤걸 들려주어야 하는게 아니라 '산모'가 즐거운 것이 태교가 아닐까?





한줄정보

1. 태교란 반드시 조용하거나 안정적인 환경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부부가 함께 행복을 느끼는 모든 경험이 아기에게 긍정적인 감정으로 전해질 수 있다.

2. 임산부와 동행하는 야외공연에서는 무리하지 않고, 체력에 맞춰 관람 시간대를 조절하는 것이 핵심이다.

3. 아이 중심의 일상 속에서도 ‘둘만의 시간’을 의식적으로 계획하는 것은 정서적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

4. 태교의 본질은 감각적 자극의 종류가 아니라, 그 자극을 통해 느끼는 감정의 질에 있다.

5. 강한 사운드의 공연장이라도 너무 큰 소음 구역은 피하고, 임산부 전용 귀마개를 사용하는 것이 권장된다.

6. 태교일기를 쓰는 행위 자체가 경험을 되새기며 감정을 정리하는 심리적 안정 과정이 된다.

7. 임신 중 부부의 유머와 공감은 서로의 긴장을 완화하는 가장 좋은 태교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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