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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일기 #11] 이거.. 괜찮은 걸까?

임신 13주 차, 즐거움 속 걱정

by Sylvan whisper


임신 13주에 접어든 8월 말의 여름, 이때는 친누나와 아버지의 생일이 몰려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올해 아버지의 생일을 기념으로 ‘강릉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도 고즈넉하고 조용한 여행지를 좋아하다 보니, 국내 여행을 한다면 거의 제주도와 강원도부터 떠올린다. 식도락 또한 즐기는 우리에게 두부, 대게, 닭강정 등 맛있는 음식이 다양한 강릉이라는 여행지는 친숙하기도 하고 기대되는 여행지였다. 하지만 임신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나는 이번 강릉여행이 마냥 기대로만 가득 찬 일정일 수는 없게 느껴졌다.


‘이번 강릉여행… 괜찮으려나?’




주말에 강릉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은 편도 5시간도 각오해야 할 만큼의 긴 교통체증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니면 적어도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꼭두새벽부터 움직이거나 밤늦게 움직여야 했는데, 이 또한 다른 차원의 피로를 동반하는 계획이었다. 처가댁인 대구를 다녀오는 것도 4시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이동 후에 심신의 긴장이 풀리는 ‘집’에 도착하는 것과, 새로운 여행지 새로운 잠자리에 도착한다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내향형이고 잠자리를 가리는 성향을 지닌 아내에게는 모든 긴장을 풀고 완전한 휴식을 취하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우린 그래도 도로 한가운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잠을 조금 적게 자더라도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을 택했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의도를 무시하기라도 하듯, 경기도를 지나면서 엄청난 교통체증을 겪어야 했다. 막히는 구간을 한 시간여 거북이처럼 달리며 겨우 통과하면서 보니, 큰 교통사고가 났던 것이었다. 아내는 새벽같이 출발한 졸음과 교통체증으로 인한 답답함, 그리고 무엇보다 평소에는 하지 않던 멀미를 느껴 시작부터 피로도를 쌓게 되었다. 임신으로 인해 몸이 변하는 것과 교통정체로 인하여 정차를 반복한 것이 결합되어 최악의 시너지를 내버린 것이다. 이를 버티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며 자다 깨다를 반복 했고, 최대한 휴게소를 자주 들리면서 환기를 시켜주었다.




우리의 첫 번째 일정은 두부요리 맛집에서의 점심식사였다. 아내와 나는 우리 가족들보다 약 30분 먼저 도착하였고, 모두가 모이면 바로 식사를 할 수 있게 웨이팅이 있다면 내가 줄을 서기로 했다. 아내를 잠시 차에서 기다리게 하고 식당으로 가보니 웨이팅은 한 명도 없었고, 20분 뒤면 가족이 올 것이기에 나도 아내와 함께 주차장에서 가족들을 기다렸다. 그렇게 가족들이 도착하고 다시 식당으로 가보니 여기서도 악운이 작용한 것인지, 한 명도 없던 대기가 갑자기 10팀은 넘게 생겨버린 것이다. 아직 무더위가 한창이었던 8월, 우리는 땡볕에서 대기를 해야 했다. 아내는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가기도 애매했고, 시부모님도 서있는 와중에 홀로 차에 있기가 민망했는지 같이 식당 앞에서 대기를 했다. 아내에겐 얼마 없는 그늘을 내어주고 미니선풍기를 주었으나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날씨였던지라 분명히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무더위를 참아야 했던 것은 다음 일정에도 계속되었는데, 최대한 차량으로 이동하려고 해도 관광지에서 가장 가까운 주차장에 차를 대는 것은 지극히 적은 확률싸움이었다. 하필이면 최근 몇 주 사이에 다시 기온이 확 올라온 상태였던지라 바닷가임에도 불구하고 우린 계속해서 더위와 싸워야 했다. 다른 가족들에게도 이 무더위는 쉽지 않았기에 우린 야외일정은 일부분 취소하고 바로 숙소로 향했다. 저녁식사 전, 잠시동안의 쉬는 시간에 수면의 질이 좋지 않았던 아내는 조금이라도 더 잠을 청했다.

저녁식사 후 10시가 조금 넘은 밤 우린 모두 일찍이 침대로 향했다. 부모님의 배려로 우리 부부가 가장 큰 방에서 잘 수 있었는데, 사실문제는 더 있었다. 저녁식사 때 있었던 음주로 인해서 아내는 나의 코골이를 참아야 했던 것이다.




다음날, 아내의 체력이 눈에 띄게 줄어있는 것이 느껴졌다. 강릉에서의 잠자리마저 편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정을 다 끝낸 뒤에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또 한 번의 5시간에 이르는 이동이라는 관문이 남아있었다. 아내가 피로감을 숨기기 위해 노력한 것도 읽을 수 있었는데, 아마 이러한 '괜찮은 척'이 아내에게는 더 큰 에너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아기를 낳아본 ‘엄마’들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인지, 어머니는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돌아가려고 했던 기존 계획이 있었지만 우리가 편할 때 먼저 출발하라고 해주셨다. 우린 저녁식사 일정 전까지만 가족들과 함께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강릉여행, 출발할 때부터 내 머릿속 한편에는 ‘아내가 괜찮을까?’라는 문장이 들어와서는 여행이 끝나는 내내 가시질 않았다. 분명 여행 내내 즐거웠는데도 말이다.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관람차를 탈 때도 웃음이 그치질 않지만 걱정은 항상 나를 따라왔다.




아내는 끝내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여행 내내 웃음을 잃지 않고, 부모님 앞에서도 밝은 기운을 유지했다. 나는 그 모습이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내가 보는 아내의 표정 뒤에는 분명히 피로와 불편함이 숨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바다를 바라볼 때도, 웃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보며 나는 늘 같은 생각을 했다. ‘괜찮을까? 지금은 편안할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내가 내게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고마웠지만, 동시에 그 고마움이 나를 더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나는 이제 여행지의 풍경이나 맛집보다 먼저, 매 순간 아내의 상태를 살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 변화가 낯설면서도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결국 이번 여행은 즐거움과 염려가 겹쳐진 기억으로 남았다.

나는 환한 미소 속에서 묵묵히 버티던 아내의 마음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괜찮을까’라는 질문 대신, ‘어떻게 더 편하게 해 줄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 대답을 준비하는 남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줄 정보


1. 임신 중 장거리 여행은 신체적 피로와 이동 중 멀미, 수면의 질 저하 등으로 산모에게 부담이 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교통체증 대비 충분한 휴식 계획이 필수이다.

2. 임신 중에는 ‘낯선 잠자리’나 ‘환경 변화’가 피로도를 높이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3. 배우자가 함께 여행할 때는 일정의 즐거움도 중요하지만, 산모의 컨디션 관리를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4. 산모가 불편함을 표현하지 않는 경우, 스스로 괜찮다고 말하더라도 몸은 이미 한계에 닿아 있을 수 있다.

5. 남편이 먼저 아내의 상태를 살피고 배려의 방식을 배우는 것, 그것이 임신 기간 가장 중요한 ‘부부 태교’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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