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언아. 이럴 때일수록 좋게 생각하자. 이 정도인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생각해. 암 환자는 '특히'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해야 된대. 다 지나갈 거야,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그놈의 긍정, 긍정, 긍정!
나는 정말이지 진부한 위로와 시답잖은 긍정을 강요하는 문화에 넌덜머리가 나서 몇 번이나 먹은 것을 게워내도 답답함이 풀리지 않아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자 나의 불안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세찬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나의 불안이 전에 없던 거센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던 날, 나는 그 소용돌이에 휩쓸려 어떤 미지의 땅에 불시착하게 되었다. 이곳엔 나의 아픔과 슬픔, 두려움, 불안과 분노가 살고 있다. 내가 이 낯선 공간에 직접 발을 들여놓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요란스럽게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던 불안도 이곳에선 제법 차분하고 의젓한 면모를 보인다. 축 늘어져 있기만 하던 슬픔은 포근한 소파가 되어 내가 마음껏 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기도 하고, 늘 곁에 머물며 위로해 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면,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릴 듯했던 분노는 따뜻한 모닥불을 피워 추위를 녹여주었고, 두려움은 나의 손을 잡고 마음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니며 산책을 시켜 준다.
과장되게 긍정적이었던 곳에서 벗어나니, 나의 불안은 더 이상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이곳에선 모든 마음이 온전하고 평화롭다.
그렇게 불시착한 마음 깊숙한 이곳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음껏 울고, 마음껏 아파하며 더 바랄 것 없이 편안하고 아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의 눈물이 보석이 되어 반짝이는 곳, 나의 아픔이 꽃처럼 피어나는 고요한 이곳에서 나는 전에 없던 개방감과 자유를 만끽한다. 내가 이런 안정감과 평온을 느껴본 적이 있던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동안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려고 애썼다. 모든 일에는 다 뜻이 있다고 믿으며 불행 속에 숨겨진 메시지를 찾아 미친 사람처럼 헤매고 다녔다. 내가 암에 걸린 것도 '하늘이 주신 기회다'라고 말하고 다녔을 정도니, 평소엔 오죽했을까.
나는 이제 그동안 나를 억눌러왔던 '긍정의 코르셋'을 벗어던지려고 한다.
대신 튼튼한 마음 근육을 만들어볼 작정이다. 긍정의 코르셋이 없어도 무너지지 않는 근육 말이다.
근육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손상과 회복에 있다. 운동을 통해 근육 섬유를 손상시키고, 휴식으로 손상된 근육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더욱 강한 근육이 만들어진다.
고통을 피하면 근육은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진주를 얻을 수 없는 것처럼, 고통의 바다에 들어오지 않으면 지혜의 보배를 얻을 수 없다.
나는 이제 내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이야기를 속속들이 안다. 불안을 마주할 수 있고, 아픔과 맞잡을 수 있다.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