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많은 돈을 '지키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뒤흔들 만큼의 충격적인 고통과 아픔은 절대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는다. 숨기고 외면하고 쌓아둔 아픔들은 스스로 정리할 때까지 절대 사라지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내 인생에서 반복 재생된다.
나는 이 사실을 쓰레기로 뒤덮인 방을 치우며 확실히 깨달았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돈을 모아본 역사가 없다. 조금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모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해보지 않았다.
가난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 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매달 천만 원을 버는 것만을 목표로 삼고, 돈을 버는 것에만 집착했을 뿐, 돈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불려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진지하게 해보지 않았다. 불려 나가기는커녕, 그 돈을 모아야 한다는 기초적인 생각조차 없었다니. 참 개탄스러운 일이다.
나는 부자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탈 수 있는 티켓을 손에 쥐고도 그 열차에 올라타지 않았다. 그저 순간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매일 술을 마시고,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들였다. 열차에 올라탄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말이다.
아니 어쩌면 부자가 될 수 있는 귀한 티켓을, 값싼 욕구와 맞바꾸며 가난으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탔을지 모른다.
나는 왜 몰랐을까?
부자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돈을 '지키는 능력'이 겸비되어야 한다는 것을.
사전에서 '지키다'라는 단어를 찾아보았다.
재산이나 이익 따위를 잃거나 침해당하지 않도록 안전하게 보호하거나 감시하여 막는 행위
나에겐 '안전'이나, '보호'와 같은 단어는 매우 낯설고 생소하다. 거의 들어본 적 없고, 생각해 본 적 없는 개념이라 글을 쓰는 지금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깜빡이는 커서만 덩그러니 바라보는 중이다.
그와 반대되는 단어인 '불안전', 즉 불안에 대한 생각은 나에겐 너무나 친숙해서 언제 어디서든 쉽게 꺼내쓸 수 있다. 생각해 보니 내가 매달 천만 원을 벌 수 있었던 것도 나의 결핍과 불안을 원동력으로 삼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불안과 반대되는 개념은 거의 전무한 상태라, 그 말이 가진 참 뜻을 헤아려보고 사전을 뒤적거려야 하는 수준이니,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가난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돈을 모으거나 지키는 것은 '불안'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은 그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조차도 돌보고 간수하고 보호하고 지켜본 적 없는 사람이 자신의 돈을 그렇게 대할 수 있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불안했기 때문에 돈을 벌고, 불안했기 때문에 돈을 다 써버렸다. 심리학적으로 불안이 강할수록 '즉각적인 보상'을 추구하는 경향이 커지고, 이는 중독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고 한다. 또한 해소되지 않는 불안과 우울, 그로부터 발생되는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중독을 더욱 부추기기도 한다.
인간의 뇌는 패턴을 찾고 예측하는 것을 좋아한다.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장기간 노출되어 있던 뇌는 '학습된 불안과 무기력'을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사용해 버린다. 그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익숙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불안은 편도체를 과활성화시켜 부정적인 경험을 오래 기억하게 한다. 이것은 뇌의 기억 형성과 관련된 해마와 연걸되어 있어, 트라우마를 계속 떠올리면서 스스로를 비난하는 경향을 강하게 나타낸다. 내가 지금까지 지난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것은 편도체의 과활성화 때문이다.
그러나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 문제의 원인을 발견했으니, 얽힌 실타래를 차분히 풀어 나가면 된다. 불안과 우울을 건강한 방법으로 해소시키면서 과활성화된 편도체를 안정화시키는 작업을 하다 보면, 불안이 줄어들고 충동적으로 써버렸던 소비 습관을 개선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학습된 불안감으로 나를 가난하게 만들 수 있다면, 학습된 안정감으로 나를 부자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나 자신을 보호하고, 간수하고, 감싸고, 지켜나가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된다면 그러한 경험과 감정들이 가득 쌓여 나의 뇌 속에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줄 것을 믿는다.
지금의 나는 평안을 원한다. 불안과 안정의 균형이 잘 맞추어진 평안한 상태. 불안과 안정의 힘을 고르게 유지하고, 필요한 순간 적시에 꺼내어 활용할 수 있는 강하고 유연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