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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노래 Oct 17. 2021

부디 아껴 드시게나

그 무렵 나는 한창 술과 안주의 조합에 심취해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 인생에 있어 최고의 술과 안주의 조합은 무엇인가요?’라는 시시껄렁한 질문을 해댔다. (돌아오는 대답들은 절대 시시껄렁하지 않았다) 친구 몇 명과 부산 여행을 간 때였다. 광안리에서 연화리로 가는 택시를 탔고 택시 안에서 곧 영접하게 될 연화리의 해산물 모둠과 대선 소주의 궁합을 상상하며 한창 들떠있었다. 순간 나이 지긋하신 택시 기사님의 ‘최고의 조합’은 무엇일까 궁금해졌고, 너무나 섣부르게도 질문을 던져버렸다.


"기사님, 기사님은 술과 함께 할 때 최고의 안주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이제 술 못 먹어요.”
기사님의 짧은 답변에 택시 안에 일순간 정적이 흘렀고 나의 경솔함을 원망하게 되었다.


기사님은 몇 년 전 간암 수술을 해서 이제 술을 못 먹는다며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젊어서 시장에서 큰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셨고, 새벽마다 경매가 끝나고 나면 그렇게 술을 드셨다고 한다. 매일같이 깡소주를 몇 병씩 드셨다고 한다. 그때는 그게 나름의 영업이었다고 하셨다. 그렇게 함께 술을 먹던 친구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났고 그때 안주라도 잘 챙겨 먹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도 생각해 보셨다며, 안주와의 궁합을 묻는 아가씨의 접근이 훌륭하다며 경솔한 질문으로 인해 민망해하는 나를 위로하셨다.


“그렇지 술을 마실 땐 든든한 안주랑 같이 먹어야 해” 

껄껄 웃으시던 게 기억에 선명하다. 그러면서 한 세대를 더 산 사람으로서 한마디를 보태신다며, 본인은 평생 먹을 술의 양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신다고. 본인은 젊어서 깡소주를 마시면서 그 주량을 다 해버려서 이제는 술을 먹을 수 없는 신세가 되었으니 부디 아가씨들은 좋은 안주와 함께 술을 아껴 마시라는 조언을 남겨주셨다. 일리 있다.


술에 있어 꽤나 깊은 대화가 가능할 것 같은 기사님과 조금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퍽 가까운 거리였기에 이내 목적지에 도착하여 급하게 대화를 마무리 짓고 택시에서 내렸다. 하지만 나는 기사님의 조언이 선대 현자들의 말이라도 되는 양 그 말을 깊이 새긴 채로 마시는 삶을 지속했다.


술이 술을 마시는 상황은 만들지 말자.

술은 즐길 수 있을 만큼만 마시자.

술은 낭만을 더하는 도구이지 그보다 상위 개념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70대가 되어서도 영화를 보러 영화관을 찾을 땐 한 캔의 맥주를 챙기고, 추운 겨울이 되면 얼은 손을 호호 불며 따끈한 사케에 어묵 국물을 들이켜는 낭만을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남편의 건강검진 결과를 받아봤다. 매년 마주하는 문제이지만 올해도 금주가 절실한 결과였다. 나는 그에게 가장으로써 우리 가정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술을 줄여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60대에도 70대에도 마시는 삶을 지속하고 싶다면 술을 줄여보라고 말한다.별 의미 없이 허비한 한잔이 노년에 가서 뼈저리게 아쉬울 수 있으니. 부디 당신의 술독에 있는 술을 아껴드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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