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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노래 Oct 13. 2021

아구찜과 청하

빨간맛의 유혹

남편을 알기 전까지 <나와 가장 자주 술을 마시는 사람>은 대학동기들이었다. 대학시절에는 이렇게모여 술을 먹은 기억이 많지 않다. 확실히 대학을 졸업한 후에 더 자주 만났는데, 대부분이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보니 자연스레 만남의 횟수가 늘어난 것 같다. 직장인의 특성상 술 마실 총알은 충분했고, 일 얘기, 상사 얘기 등 술 마실 안주도 충분했기 때문일 터. 무엇보다 큰 이유는 다들 술을 좋아한다는 것이겠지.


- 야 오늘 너무 빡치는데? 김치찌개에 소주 콜?


라는 메시지가 오기라도 하면 기다렸다는 듯, 김치찌개는 을지로에 그 집이 맛있는데? 오늘은 날이 선선하니 여의도에 포장마차도 좋겠는데? 하며 득달같이 달려드는 것이다. 이 친구들은 기본적으로 먹성도 누구에게 뒤지지 않고 그렇다보니 머릿속에 맛집지도 하나씩은 가지고 있으며, 거기에 술을 곁들이는 것에는 뒤지지 않는 것을 넘어 뒤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느 날은 을지로의 허름한 노포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기도 하고, 어느 날은 시끌벅적한 바에 앉아 수제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대부분은 그날 느낌에 따라 메뉴를 정하고, 만나는 위치에 있는 맛집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런 이들이 메뉴 선정에 어려움을 겪을 때 꺼내드는 비장의 카드가 있는데,


- 아 그럼 그냥 아구찜 먹어.


바로 아구찜이다. 의견이 분분하다가도 아구찜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마법같이 거절하는 사람이 없다. 아구찜이 뭐길래. 시작은 홍대에 있는 원조마산해물찜이었다. 하지만 만나는 동네가 달라져도 메뉴는 변함없었다. 종로에 있는 통나무집은 물론이고 경복궁에 있는 마산해물아구찜, 여의도에 있는 속초해물탕 등. 또 전문가들이 하나씩 있어서 이집은 ‘살짝 맵게 해달라고 해야해.’ 하면서 주문하는 친구들을 보면 어찌나 든든하고 자랑스러운지.


이 아구찜이라는 음식이 정말 거절하기 힘들긴 하다. 매콤하고 달큰한 소스는 술마시기에는 최고다. 여기에는 소주도 어울리고 맥주도 어울린다. 양념이 조금 센 아구찜과는 향긋한 청하도 잘어울린다. 살을 발라먹는 재미도 있고 다 먹은 후에 볶아주는 볶음밥도 빼놓을 수없다. 또 보통은 조리가 되어서 나오다보니 고기집보다 훨씬 손이 덜가서 술 마시기에 더없이 좋다. 가끔 오늘은 술을 조절해서 먹으려고 한다며 청하를 마시자는 친구가 있다. 그런데 마시다보니 술술 들어가서 둘이 열병을 마셨다느니 그런 말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한때는 보통의 여성들이 갖는 파티룸의 로망을 우리도 가지고 있었다. 매년 연말이되면 레지던스든 호텔이든 방을 예약하고 모여서 파티를 한다. 치킨윙, 피자 등 파티에 어울리는 음식을 잔뜩 준비하지만 먹다보면 뭔가 아쉬워서 결국 아구찜을 하나 시키곤 한다. 결국은 손에 묻은 양념을 쪽쪽 빨아먹으며 크리스마스를 보내곤했다. 우리는 올해 연말 파티로 한남동에 있는 예쁘장한 뇨끼집을 예약했다. 몇주나 남았지만 벌써부터 뭘 입고가야 파티 느낌을 잔뜩 낼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하지만. "야 풀떼기만 먹고 나왔더니 배가 허하다. 아구찜 잘하는 집 없냐?" 라는 멘트가 벌써부터 머릿속에 맴도는 건 왜다?


뿌리칠수 없는 빨간맛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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