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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대만졸업 09화

9. 갈등

by 이진다

이진다의 첫 소설『대만졸업』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창작 소설입니다.

현실의 인물, 사건과 유사하더라도 이는 우연의 일치입니다.

일부 인물 및 장소는 서사의 흐름상 가명 또는 허구적 설정을 사용하였습니다.




대만에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의 국적이 일본이라 졸업하면 자연스럽게 일본으로 건너가 산다. 도대체 논리적으로 어디가 문제가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심지어 일본에는 이미 그의 가족도 사업도 수십 년째 이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움직이기만 해 준다면 지안은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만약 그녀의 일본어가 문제라면 그것 또한 문제없이 준비를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미 그녀는 틈틈이 공부를 하여 JLPT 1급을 취득한 상태였다.


이는 오로지 그와 함께 할 미래를 꿈꾸며 그녀 나름대로 성실하게 대만에서 준비한 결실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러한 그녀의 성적에도 크게 기뻐하거나 동요하는 것이 없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한 번도 일본에서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그리 일본이 살기 좋을 것 같냐고 말하였다.


그녀도 이 부분에 대해선 말문이 막혔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그의 생각에 따라가 줄 생각도 없었다.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대만은 졸업 때까지만 살 것이라며 못을 박았다.


" 내가 어떤 기회를 놓치고 너와 지금 사귀고 있는 것인 줄 알아? "


" 그게 어떤 건데? "


" 나는 대만 여자와 사귀어서 결혼하면 이곳에 정착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


" 그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


" 내가 너를 너무 좋아해서 그러질 못 하고 있다고 "


지안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런 그녀를 달래기 위해 무작정 안으려 했지만 그녀는 그를 밀어냈다.


입 밖으로 비속어가 새어 나올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것은 지금까지 대만유학 생활 중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정면으로 부딪힌 것이었다.


학교에서도 연애에서도 어디에서건 지안의 "한국" 국적은 걸림돌이 되었다.


물론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가진 대만 사람들하고는 무탈하게 잘 지냈다. 하지만 그것은 대만에서 그녀가 가진 다양한 인간관계 중 일부였다.


어쩌다 한 번 혐한 감정을 가진 불특정 대만 사람과 부딪히거나 대만 뉴스에서 혐한 관련 내용이 나올 때마다 그녀는 상당히 위축되고 외국인의 신분이 점점 고달팠다.


그래서 일본을 갈망했다. 내가 좋아하는 연인의 국적을 발판 삼아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었다.




유학시절 초반에는 서로 말이 안 통했지만 그만큼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었고, 한 마디라도 오해가 생길까 봐 조심히 단어 하나하나를 건네는 모습이 참 순수했다.


처음에는 타국에서 서로 적응을 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서로에 대해서 책임을 질 일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외국인으로서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보이는 것 그대로 대만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다.


대학생이 되고, 졸업이 점점 다가오면 올수록 두 사람은 미래에 대해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대만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졸업 후 그와 함께 새로운 곳에 가서 정착하길 바랐다.


반대로 그는 안정적으로 대만에 정착하고 싶었지만 동시에 그녀를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녀가 남은 졸업 기간까지 대만을 사랑하며, 중국어를 대만 사람 이상으로 구사하며, 자신처럼 조국에 대해 별다른 감정을 가지지 않기를 바랐고 방학 때도 돌아가지 않기를 바랐다.


그가 그녀를 포기할 수 없다면 그녀가 바뀌면 될 것이었다.


지안은 이미 여러 차례 그의 말들로 인해 질려버렸다. 애초에 이 일본인과 사귀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이미 감정이 커져 있었다.


대만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믿고 의지했던 사람은 사실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것 자체만으로 고통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쉽사리 놓치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이제는 그녀는 스스로가 놓칠 못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문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녀에게 얼마나 헌신적이었는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그는 그녀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면도 있었다.


그녀가 이 대만 유학 생활을 점점 지쳤고, 외국어로 말하는 것을 극도록 싫어하고, 한국어가 가능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그녀가 반기면서 목소리가 달라지는 것 등을 전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보이는 곳에 항상 그녀가 있어야 했으며, 그녀 역시 자신과 같이 대만에 정착하길 바랐다. 애초에 그녀 역시 도피처로 대만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는가. 그는 그녀가 한국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차단하고 오로지 중국어로만 채워지길 원했다.


그렇기 때문에 여름 방학 때마다 그녀가 한국에 가는 것을 극도록 싫어했다. 그녀는 매번 이 일본인 남자친구의 기분을 살피느라 방학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일찍 대만에 들어오곤 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지독히도 이기적이었다. 애초에 한국인에게 대만인처럼 살기를 원하고, 대만에서 영원히 자신과 거주하길 바라는 이 이상한 일본 남자를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가뜩이나 대만 유학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찰나에 이제는 그와 함께 하려면 대만 여자가 되어야 했다. 아니 비슷하게라도 되어야 했다.


이제는 하다 하다 대만여자에게 열등감을 가져야 하는 이 상황이 어떻게 사랑일까?


차라리 먼저 헤어져주자고 하면 좋을 텐데 그는 그럴 생각도 없어 보였다.


화가 났다가 울음이 나왔다가 다시 욕이 나왔다가 감정 이 격해지자 이제는 사람이 점점 이렇게 미쳐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녀가 놓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속몰적이게도 일본에 가서 그래도 사람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미치자 그녀는 스스로가 싫어졌다.


그녀는 이미 그가 일본에서 어느 정도 먹고사는데 지장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도 그가 일본에 가주기만 한다면 그녀도 정착하는 데 있어 조금 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 얄팍한 기대심이 그와의 관계를 놓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다시금 우울해졌다.


그녀의 감정도 역시 상대를 위한 사랑이 아니었다.


갈등의 표면적인 이유는 졸업 후 향후 거주지를 어디로 해야 하느냐의 문제였지만 진짜 문제는 서로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대응했고, 진솔한 대화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외국어의 능통함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두 사람의 문제는 상호 간의 소통이 부족했고 솔직하지 않았다.


사실 어디에서 살든 장소와 상관없이 또다시 비슷한 문제로 서로 부딪 힐 것이다. 연인에서 배우자로 가는 단계에서 그녀는 점점 그와의 관계가 자신이 없었다.

도저히 그와 가정을 이루고 사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늘 그는 그녀가 한국인인 것이 상관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바꿔 말하면 한국이라는 국적을 지우고 새로운 정체성이 심어지길 바랐다.


자신과 함께 대만에 거주하길 바라며, 자신이 일본이라는 뿌리와 정체성을 지우겠다고 한 것처럼 그녀 역시 자신과 같아지길 바랐다.


이것이 과연 사랑일까..?


그를 선택하면 정말 어쩌면 안락한 미래가 보장 될 수도 있다. 순진하게 그가 말한대로 믿는다면 꽤나 여유로운 집에 시집을 가는 거니까.


어쩌면 그에게 순종하기만 하면 모든게 순조로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에는 그저 공짜로 거저 얻는 것은 없을 것이다. 점점 그의 옆자리는 내 것이 아닌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가 가진 여유로움은 그의 부모의 것이지 그가 이루어 낸 것이 아니었다. 이게 중요했다.


이제 지안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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