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다의 첫 소설『대만졸업』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창작 소설입니다.
현실의 인물, 사건과 유사하더라도 이는 우연의 일치입니다.
일부 인물 및 장소는 서사의 흐름상 가명 또는 허구적 설정을 사용하였습니다.
끝이 보이는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고 계속해서 미련과 집착으로 잡는다 해도 더욱더 진흙더미 안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사랑에 빠졌을 때의 그 처음의 짜릿함이 무색할 정도로 이미 지안은 그를 만날 때마다 표정관리가 잘 되지를 않았다.
답을 이미 정해 놓은 사람처럼 일본에 가자고 아무리 말해 보아도 그는 장난스럽게 대답을 할 뿐 도무지 일본에 같이 갈 사람처럼 보이질 않았다.
그 와중에 그는 그 나름대로 대만에서 나름의 정착 준비를 착실히 해나가고 있었다.
대만에서 타는 오토바이를 종류별로 3대 구매를 했으며, 향후 개인 사업을 하기 위해서 사업자 서류를 준비하고 있었고, 이미 중국과 일본에서 물건을 가져와 대만 인터넷 사이트에 판매를 하고 있었다.
솔직히 그런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으니 응원을 해줄 수가 없었다. 응원을 못 하겠으니 점점 그와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함께 할 목표를 상실하여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잃어버렸다.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며 그는 어차피 하고 싶은 일도 사실은 없었던 것이 아니며, 어정쩡한 중국어와 일본어로 어디를 가서 일하기도 힘들 것이며, 자신만큼 그녀를 사랑을 해주는 남자도 없을 텐데 그만 자신의 마음을 힘들게 하고 대만에서 같이 정착을 하자며 애원하고 있었다.
그가 애원을 하면 할수록 숨이 막혔다. 그녀의 국적인 한국에는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오로지 대만을 사랑하는 듯 한 이 남자의 모습이 이제는 지안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점점 그의 말도 안 되는 요구에도 묵묵히 따라왔다. 그렇지만 같이 있어도 외로웠고, 어느 순간 연애 초기의 알콩달콩한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막상 만났다고 해서 특별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향후 대만에서 살기 위해 사업 준비를 위해서라도 철저하게 돈을 아꼈고, 그의 옆에 지안만 있으면 되었다.
이미 그의 일상에 따라 모든 것을 맞추며 음식도 데이트도 놀거리도 모든 것이 그의 의견과 취향이 들어갔고 그 안에는 반드시 그녀가 함께 있어야 했다.
그녀는 이제 졸업이 점점 다가올수록 자신이 바라던 모습은 이게 아니라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같이", "함께" 하는 그 모든 것들이었다. 서로 보폭을 맞추고, 눈을 맞추며 함께 미래를 향해 나아가길 바랐다.
이런 식으로 그가 독단적으로 자신의 세계에 가두고 통제를 하려는 모습은 처음에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이미 만들어놓은 틀에 자신을 구겨 넣어 억지로 끼어 맞추는 모양새 밖에 되지를 않았다.
내 팔 하나가 잘리든 다리가 잘리든 그가 원하는 모습에 맞추어야 비로소 관계에 평화가 오는 것이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는 그녀가 대만 유학 생활에서 나름대로 성취해 온 것들에 대해 가볍게 판단했다.
그런 모습에서 그녀는 처음에는 심란했고 마음이 아팠으나 이 또한 자신이 부족해서 상대방이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 여겨 더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고, 어쩌면 그의 말대로 나는 능력도 없으면서 감히 그를 떠나려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사귀면서 그의 일본 가족들을 좋아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들이 가진 온화한 분위기와 여유로움이었다.
이것은 그녀가 화목하지 못 한 가정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고, 가족끼리 함께 무엇을 한다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결핍이 크게 작용이 된 것으로 보인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무런 능력이 없는 여자아이에게 그들은 아들의 여자친구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극진하게 대우를 해주었다.
그러한 특별한 대우를 받은 것도 처음이거니와 이들과 함께라면 나도 이런 여유로움과 부유함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점점 들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에 가면 이 생활을 나도 일상처럼 누릴 수 있다는 대단한 착각을 하게 된 것이 미련하게 이 관계를 놓질 못 하는 이유 중에 하나였다.
그녀는 그가 없는 졸업식을 맞이한 다음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한국으로 돌아갈지 그가 없이 일본으로 가야 할지 아니면 정말 그와 함께 대만에 남아야 하는 것인지가 그녀에게 있어서는 정말 고통스러운 선택이었다.
어디를 가든 후회를 할 것 같았고, 그나마 나를 필요로 하는 그의 곁에 남겨져 그가 하는 일을 돕고 나는 나대로 일을 하면서 옆에서 응원을 해주는 것이 과연 최선의 길인가 하는 물음에는 여전히 자신 있게 답을 하지 못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조금이라도 그녀가 벗어나려 하면 극도록 불안해했다. 그래서 여름방학 때 한국으로 귀국하는 것은 그가 제일 싫어했던 일이었다.
대만의 여름인 너무 덥기 때문에 3개월 이상 긴 여름방학에 한국으로 가서 조금만 쉬고 오고 싶다고 말해도 그는 그것이 자신의 통제권을 벗어났다고 생각한 나머지 화를 내거나 연락을 일부러 늦게 받는 등 불만을 표출했다.
그녀는 이제 그의 일본 가족이 가진 재산 따위가 더 이상 관심을 두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그 재산은 그녀와 그가 만든 것도 아닌 오로지 그 가족의 소유물이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노력하면 시간이 다소 걸릴지언정 내 힘으로도 나중에 그 일본 부모님 나이가 되면 비슷하게나마 지금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이미 한계를 정해놓은 것이지...
그와의 관계를 놓질 못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이 이유를 제외하고 나니 지난 그와의 연애사를 돌이켜 보는데 수월했다.
그리고 그녀는 아무리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상상력을 발휘해도 그와 함께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이 그려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이미 이렇게 부정적이고 우울한 상상을 한 지도 수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이 관계는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음을 순순히 인정해야 했다.
결혼은.. 평생의 배우자를 구하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어린 나이에 젊음이라는 비싼 수업료를 내고 지안은 알게 되었다.
" 이사 한 우리 집으로 와서 밥 먹자.
데리러 갈게. "
졸업식이 끝나고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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