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다의 첫 소설『대만졸업』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창작 소설입니다.
현실의 인물, 사건과 유사하더라도 이는 우연의 일치입니다.
일부 인물 및 장소는 서사의 흐름상 가명 또는 허구적 설정을 사용하였습니다.
그의 메시지를 물끄러미 봤다. 기숙사 안에는 이제 곧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미리 짐을 싼 캐리어 2개가 있었다. 그의 집에 가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간다고 해서 얼마나 이 관계가 이어질 수 있을까. 서로에게 못 할 짓을 계속하고 있었다.
"我很累 ( 나 피곤해 ) "
다른 말도 더 이상 붙이지 않았다. 지안 답지 않게 짤막하게 보냈다. 제발 서로가 자신의 고집을 꺾고 상대방의 뜻에 따라 주었음 했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의 복잡하고 우울한 마음이 그에게도 닿았던 것일까.
서로 헤어지자는 말을 하진 않았지만 저 메시지를 끝으로 더 이상 메시지를 주고받는 일은 없었다.
오로지 둘 중 하나가 참아야 비로소 관계가 이어질 수 있는 거라면 그것은 이미 정상적인 관계가 아님을 지안은 어린 나이에 절실히 깨달았다. 또 그녀 역시 이제는 도피처로 계속 새로운 곳에 눈을 돌리는 것을 멈추어야 할 때라는 걸 깨달았다.
애초에 한국이든 외국이든 장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이 학창 시절에는 힘든 곳이었지만 지금은 지친 해외생활에서 마음 편히 눈치 안 보고 자국민으로써 모국어를 사용하며 쉴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반대로 대만은 처음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낯설었지만 점차 적응을 하면서 여행자 신분에서 반(半) 원주민 상태로 변하니 그 새롭고 낯선 것들이 더 이상 흥미를 일으키지도 않았고, 외국어가 귀에 익을수록 스스로가 안 들렸기 때문에 이곳이 자유롭다고 느낀 것임을 알았다.
결론적으론 "장소"의 문제가 아닌 내 "태도"와 "마음가짐"의 문제라는 것을 진심으로 깨닫게 되었다.
결국 나다운 선택이 어떤 것인지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가지는 것 또한 중요했다. 사랑만 가지고 무모하게 달려들고, 집착하고, 소유하려들며 현실적인 문제를 배제하고 무조건 우리 둘만 함께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이상주의와 이제 외국 생활이 어떤 것이지 어느 정도 잘 알기 때문에 우리가 앞으로도 잘 살기 위해서 현실적으로 두 사람에게 맞는 곳을 다시 고려해 보자라고 한 이성주의 판단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서로를 각자의 방식대로 아껴주었지만 다시 상처를 입히는 관계는 지독했고 아팠다.
어쩌면 그가 말한 대로 그녀는 그와 헤어지기로 결심한 것에 후회를 할지도 모른다. 이미 대만에서 서로 기반이 그래도 어느 정도 만들어졌기 때문에 어쩌면 그의 말대로 내가 보통의 대만인처럼 바뀌거나 대만 사회에 완벽히 적응을 하면 문제가 없어 보였다.
또 그는 일본에서 나름 유복하게 살았다.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보통의 대다수가 살아오는 방식을 고수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는 자유로웠고, 바라는 것이 소박했기 때문에 안분지족의 삶이 만족스럽다면 그의 옆에서 함께 나이 들어도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 자신을 속이는 일이었다.
그런 조건들은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으나 그와 부딪힐 때마다.. 헤어짐을 고민할 때마다.. 마지막에는 기어코 그녀 자신을 시험대에 오르게 했다.
시험대 위에서 발가벗긴 날 것 그대로의 내 욕망과 욕심을 정면으로 마주 했을 때 비로소 나는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사람과 잘 맞는 것인지, 함께 할 배우자를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에 대해 정답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이것이 그녀가 그를 벗어나야 하는 명확한 이유이자 다음 다가 올 운명에 그녀 자신을 온몸으로 내던져야 하는 시점이 지금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떠날까 봐 사랑한다면서도 무수히 그녀에게 말했던 부정적인 말과 원망 그리고 세뇌를 시키며 어떻게든 붙잡아두려는 집착은 이제 사랑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라는 사람 자체를 보다가 어느 순간 내 미래가 불안하니 그의 가족이 가진 유복함에 기대고 싶은 의지와 욕심, 당시 일본에서 살기를 원했기 때문에 무작정 일본에서의 삶은 무조건 여기의 삶보다는 낫고 행복할 것이라늗 무지성 믿음과 부러움 등 다시 새로운 도피처를 알아보는 모습도 사랑이 아니었다.
이 모든 괴로움의 선을 끊을 수 있는 건 오로지 그녀 자신뿐이었다.
그녀는 이제 옛날 대만에 갓 왔을 때처럼 소심하고, 우울하며, 실패했다는 생각에 갇혀 지내고 싶지 않았다.
그때도 지금처럼 막막한 상황이었다. 대만을 졸업하고 떠난다고 하여 내 미래에 그 어떠한 성공과 부귀영화 등이 확정된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선택한 길은 불확실한 앞날에 이제 오로지 혼자 걸어가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녀가 미래에 그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지금의 결정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불확실함에 정면으로 부딪히겠다는 것은 이토록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것이었다.
대만에 처음 왔을 때도 그렇고 이제 졸업하는 그녀는 아직도 어린 나이였다. 그녀는 그 젊음을 무기 삼아 자신이 그토록 바라는 욕망과 신념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어렵게 다잡은 마음은 그간 함께 했던 미운 정과 고운 정이 쌓여 과거가 생각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계속해서 흔들리는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 대만유학에서 본인이 가장 간절히 원했던 단 한 가지의 바람을 드디어 알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바라왔던 그녀의 소망이자 꿈이었다.
어디로든 도피할 생각하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과 안정적으로 정착해서 뿌리를 안전한 가정을 만드는 것.
가족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괴로워 한국을 등지고 도망친 이유도 대만이 힘들어 다시 새로운 나라 일본으로 도망치려 한 이유도 일본인 가족들이 그녀에게 베푼 재력과 여유로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더 나아가 마음속 깊이 진정으로 바랬던 것은 그들과 같이 동등한 위치에서 주체가 되고 싶다는 이 마음을 그녀는 드디어 깨달았다.
함께 그녀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을 내 가족을 만들며 거기서 진정한 안정과 자유를 누리고 싶다는 그 욕망을 알아버린 이상 그녀는 더더욱 그 일본 연인과는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는 그녀의 소망을 이해할 수도 채워줄 수도 없었으며 만일 그의 일본 가족의 후광을 바라고 결혼을 한다면 그것은 기어코 나중에 이 이유로 헤어질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가 조국으로부터 도피하는 처지에 만난 것이었다. 도피하는 이유는 서로가 달랐지만 어찌 되었든 이 목표가 처음에는 비슷했기 때문에 끌림이 있었고, 서로가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다만 그는 정말 완전한 도피였다면 그녀는 일시적 도피였다는 것이고 사실은 가슴속으로 깊이 본국을 사랑하고 있다는 마음을 타국살이를 할수록 깨닫게 되었을 뿐이다.
그녀는 현재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값진 재산이자 무기는 다른 게 아니라 "젊음"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그것이 20대에 충분히 실패하고, 아파하고, 상처를 받을지언정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라는 것도 말이다.
삶을 살면서 커리어, 명예, 숫자로 보이는 모든 스펙들 등 외적인 조건들을 모두 벗어나 오롯이 그녀가 가장 원했던 것은 상호 주고받는 "사랑"이었다.
그녀는 안정감 속에서 사랑하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었다. 자신이 더 이상 그 어떠한 환상을 품고 어딘가에 분명 만족할 수 있는 곳이 있을 것이고, 열심히 일해서 인정받아 그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그러한 생각을 멈추고 싶었다.
더 이상 현실 도피를 하지 않도록 안정감을 바랐고, 그녀의 인생을 걸 수 있는 상대 옆에서 여생을 살아가고 싶었다.
그러한 사랑을 다시 진실된 마음으로 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그녀가 왜 이렇게 힘들었는지, 정서적 신체적 폭력에서 왜 무너질 수밖에 없었는지, 항상 적응을 잘한 것 같더라도 왜 다시금 떠나고 싶었는지에 대한 모든 물음에 정답을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불안전하고 알 수 없는 운명에 온몸을 힘차게 내던지고 싶어졌다.
그녀는 그곳에서 자신이 선택한 운명이 어떤 것인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스스로가 원하는 그 상대와 분명히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서서히 가슴속 밑바닥에 깔리고 있었다.
이제 지안은 왕복 티켓이 아닌 편도로 티켓을 결제했고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탄다. 처음 대만에 왔을 때 타이베이에 101 빌딩이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어두웠다면 떠나는 날에는 날씨가 좋아 101 빌딩의 옥색이 반짝이고 있었다.
"台灣 再見 (대만 안녕)"
지안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시즌 1_대만 졸업 (完)
이진다의 첫 소설 대만 졸업을 읽어주셔서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주 금요일에 후기로 찾아뵙겠습니다.
✍️ 글로 다 담지 못한 감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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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색이 궁금하다면, 가끔 들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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