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대만졸업 08화

8. 대학 생활

by 이진다

이진다의 첫 소설『대만졸업』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창작 소설입니다.

현실의 인물, 사건과 유사하더라도 이는 우연의 일치입니다.

일부 인물 및 장소는 서사의 흐름상 가명 또는 허구적 설정을 사용하였습니다.




대만에서 일문학과를 전공하는 한국인 유학생 지안의 대학생활이 시작되었다.


대학생활은 어학당에서 생활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너무나도 어려웠고, 힘들었다. 정말 원어민들 사이에서 수업 진도를 따라가느라 지안은 정신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외국인 학생들을 배려해 보다 쉬운 교과목을 개설해 주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전공이 일문학과였기 때문에 그녀는 현지 학생들과 함께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부터 차근차근 배우며 조금 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중국어로 일본어를 배워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괜찮았다. 그녀는 중국어를 배우러 왔지만 덤으로 일본어도 함께 습득하고 있었다. 언어교환이나 친한 한국인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면 그녀의 유학 생활은 오로지 중국어와 일본어뿐이었다.


하지만 외국어를 배울수록 그녀는 분명 일반 외국인들보다는 평균 이상의 실력은 가지고 있었지만

항상 본인도 모르게 원어민과 비교를 하는 강박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긴장이 되었고, 자신감이 없었다.


유일하게 언어 교환이나 친한 한국인들을 만나 한국어로 말할 때 목소리에 그녀의 유쾌한 성격이 묻어 나오고, 주눅 들지 않고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수업시간에 몇 교수님들이나 학생들이 혐한 감정을 가지고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건도 있었지만 그래도 문화차이라 생각하며 참을 수 있었다.


그것은 대만인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 대만과 한국은 형제 관계인데 그래도 대만이 형이잖아요. 그래도 우리가 일본한테 오래 통치를 받았으니까"


아마 이런 말을 한국에서 했다면 분명히 큰일 날 법한 일들이 내 주변에서는 매일같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일본과 대만이 워낙에 친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때로는 그것이 대만의 일방적인 짝사랑처럼 느껴질 정도로 지안은 기분이 묘했다.


실제로도 일본과 대만의 문화 교류도 많이 있었고, 친목회도 빈번하게 있었으며, 한국에서는 이미 철거한 일본 신사도 있어 대만 사람들은 자유롭게 유카타나 일본 기모노 옷을 입고 그곳에서 사진을 찍거나 코스프레를 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문학과에서 수업을 받는 한국인 입장에서는 그녀는 정말 이방인이었다.


그들만의 잔치 잘 못 초대받읃.. 눈치없이 끼어든 사람 같았다. 그나마 그녀가 중국어와 일본어를 기본 이상은 하기 때문에 조용히 묻어갈 수 있었지만 대만사람이 일본을 사랑하는 만큼 그녀는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스스로가 반일감정에 깊게 빠져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나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일깨우는 사건을 겪을 때마다 그녀는 입장이 난처했다.


이러한 애매모호한 위치에서 그녀는 점점 외로웠고, 고립감이 점점 드리웠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어학당 시절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 온 일본인 연인이 있었다. 그 연인만이 나의 이 어지러운 마음을 이해해 준다면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 도대체 그런 말을 왜 일일이 신경 쓰는 거야? "


이제 그녀는 일본인 남자친구와 중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가며 말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이제 그 옛날 전자사전을 들고 다니는 햇병아리가 아니었다.


전자사전을 안 보고도 충분히 자신의 의사표현을 전달할 수 있었다. 특히나 속상한 부분에 대해서 말이다.


그녀는 수업시간에 대놓고 유일한 한국인 유학생인 자신을 가리키며 진위 파악도 안 된 혐한 뉴스에 대해 나에게 묻는 것이 정당하냐고 했다. 그것은 대만인 교수님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자세한 설명에도 그는 심드렁할 뿐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태도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의 두 손을 잡으며 두 눈을 애원하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 너는 그래도 내 편을 들어줘야 하는 거잖아.. "


" 그런 문제가 아니라.. 쓸데없는 것에 신경 쓰지 말라는 거야"


그의 말에 눈물을 글썽거리는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예민 했고, 발끈했으며, 쓸데없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모양새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그녀의 볼을 가볍게 꼬집었다.


그냥 헛소리 하나 보네 하고 넘기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그도 그녀가 대만에 대해 비난이나 비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애당초 그는 이런 주제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한국인 여자친구가 대만에서 일문학을 전공하고 있으면 공개적으로 저격이 될 수 있음에도 그것은 그가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는 영역이었다.




대학을 입학하고 점점 둘 사이도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먼저 야마모토 히로아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일본을 혐오하고, 일본어조차 혀 끝에서 멈추는 남자였다. 대만에서 사귄 한국인 연인과는 오로지 중국어로만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아무리 일본어로 말을 걸어도 중국어로만 대답할 뿐이었다. 그녀에게도 누누이 이미 자신은 일본을 떠날 때부터 대만에 살기 위해서 왔으며, 아버지의 가업도 관심 없으며 이곳에서 사업을 하여 정착을 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서 막상 대만인들과의 교류는 소극적이었고, 그의 최대 관심사는 한국인 여자친구뿐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그녀는 그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바로 졸업 후에 같이 일본으로 가는 것에 말이다.


왜냐하면 이지안 그녀는 대만에서 살아갈수록 외로웠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도피처로 대만을 선택한 것이 맞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국 가족들로부터 도망치고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서 온 임시 거처였을 뿐 영원히 정착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나마 그녀를 처음부터 옆에서 보살펴주는 이 일본인 연인이 없었다면 그녀 역시 이 유학을 감히 완주할 생각을 못 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다시 새로운 꿈을 갖게 되었다.


이 연인과 함께 졸업 후 같이 일본에 간다. 그리고 일본에는 그녀가 그렇게 좋아하는 그의 가족들도 있었다. 그가 가업을 이어받고, 지안은 지안대로 어학을 살려 일본에서 일을 하고 서로 자리를 잡는다.


가장 현실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어쩌면 대만의 친일색에 무의식적으로 점점 물들여져 갔는지도 모른다. 대만인들이 선망하는 일본에 가서 산다면 그것 또한 하나의 성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이 연인은 같이 일본에 갈 생각조차 없었다. 그녀와 그는 만날 때마다 이 문제로 대립했고 힘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관이 서로 점차 대립되던 어느 날 그가 운을 떼었다.


" 네가 대만에서 살지 않겠다면 우리는 여기까지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절대로 듣고 싶지 않았던 그의 말 한마디에 지안은 심장이 무너지는 듯 한 충격을 먹었다. 그녀는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야 싶은 표정으로 다시 한번 말해보라는 식으로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도 이제는 피하지 않고 그녀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너와는 일본으로 갈 일은 없을 거라고, 자신은 처음부터 이 대만에서 정착하려고 온 거고, 이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사업을 할 테니 너도 그런 자신을 지지하며 같이 있어 달라고 말이다.


졸업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고, 애초에 지안 너는 애국심도 없으면서 귀국할 생각은 하지 말라고 했다.

네가 한국에 가서 뭘 할 수 있겠으며, 자신을 놓치면 대단히 후회할 것이며 자신만큼 널 사랑할 남자가 또 나타날 것 같냐고 했다.


자신을 선택하면 일을 하든 안 하든 너의 자유이며, 난 꽤나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그러니 넌 날 놓치면 후회할 거라 했다.


그리고 지안 너는 또다시 도망치는 거라고, 네가 일본에 대해 뭘 그리 안다며 다시 일본에 대해 헛된 기대와 꿈을 품는 거냐며.


그녀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고개를 떨구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수치심과 비참함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 글로 다 담지 못한 감정은

아래 인스타그램 카드 (@jindawriter.ai)에 남겨 두었어요.

감정의 색이 궁금하다면, 가끔 들러 주세요.


© 2025 이진다. All rights reserved.

이 저작물의 무단 사용 및 복제는 작성자의 명시적 서면 동의 없이 엄격히 금지됩니다.

keyword
이전 07화7. 일본 가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