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할 때 상대방의 눈을 보는 것은 중요하다. 눈을 보고 말하는 것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한마디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의미다. 다시 말해 상대와 교감하는 통로요, 서로를 연결해 주는 다리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지 않는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눈 맞춤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눈 맞춤은 아이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언어 발달을 자극한다. 그뿐만 아니라 상대의 감정을 공감할 수 있다. 공감 능력은 훌륭한 팀워크와 높은 성과를 만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눈 맞춤하는 아이로 키워야 자신을 타인과 연결하고 사회에 고립되지 않는다. 내 것 챙기기에 급급하고, 배려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아이보다 타인과 더불어 사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메라비언의 법칙에 따르면 의사소통의 90% 이상이 비언어적인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눈 맞춤은 시각적 요소 중 하나다. 눈 맞춤을 해야 상대방과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상대방에 대한 좋은 인상과 호감을 준다. 또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빅토리아 레옹 교수는 부모와 아이가 눈 맞춤을 할 때 교감이 형성되면서 서로의 뇌파가 일치한다고 밝혔다. 이때 학습능력, 소통, 정서 등 성장 초기 뇌 발달과 건강한 자아상 형성에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훈육할 때만 아이와 눈 맞춤을 했다. 아이에게 울컥 화난 감정과 짜증 섞인 부정적인 감정을 들키고 말았다. 종종 상황을 빨리 끝내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아이를 노려보는 나를 마주한다. 가르치고 훈육할 때 눈 맞춤을 시도했으니 아이가 눈을 피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아이 입장에서 보면 아빠와의 눈 맞춤은 무섭고 피하고 싶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어른들 눈치를 살살 살피는 아이로 키우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을 바꾸었다.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에 “아빠는 널 사랑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가르치고 훈육할 때만 눈 맞춤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일상에서 아이와의 눈 맞춤을 시도했다. 아이를 키워보니 눈 맞춤 역시 놀이였다.
[시크릿 가든] 드라마의 한 장면을 따라 했다. 어느 날 아들과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아들에게 다리를 붙잡게 했다. 아들과 함께 숫자를 세면서 “하나, 둘, 셋”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셋” 구호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
“유호야 아빠 눈동자에 유호가 있어, 한번 볼래?”
아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 눈을 바라봤다. 아들은 눈동자에 비친 자기 얼굴을 찾으려고 유심히 들여다봤다. 아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에 내 얼굴이 보였다. 우주로 빨려 들어가듯 서로를 넋 놓고 바라봤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감격스러움이 마음을 채웠다.
곰살맞지만 아들과의 눈 맞춤은 뭔지 모르게 나를 위로했다. 설명하지 못하는 깊은 무의식에 눌려 있는 분노, 억울함, 외로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눈 녹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와의 눈 맞춤으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동안 아들에게 어떤 아빠로 비쳤을까? 혹시라도 아이가 상처받지 않았을까 걱정되었다. 다그치고 화를 냈던 행동을 돌아보게 되었다. 어쩌면 아들이 생각하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는 다를지 모르겠다. 아이와의 눈 맞춤은 나를 객관화시키는 도구이자 위로였다. 자주 아이들의 눈을 바라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