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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인경 Apr 03. 2024

채식주의자로 선택한 자기파괴

책 이야기

ᆢ꿈을 꿨어


                            - [채식주의자] 소설 속 영혜의 말


    그녀를 괴롭히던 꿈을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그 꿈의 이유를 그녀는 육식이라 확신하던 그 순간부터 자신은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판단을 했던 것 같다. 육식을 당연하다 받아들이고 있는 남편과 가족들의 견디기 힘든 강요 앞에서 칼로 자신의 손목을 그어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어쩌면 이 때부터도 자신은 육식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흡사 식물과도 같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뭇가지의 하나를 쳐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단순히 채식주의자가 아니라 식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이어지는 이야기인 <몽고반점>에서 여실히 보여준다. 자신의 형부로부터 예술작품을 이유로 벌거벗은 몸에 꽃을 그리고는 마찬가지로 몸에 꽃을 그린 작업파트너 J에게서 남편에게서도 느끼지 못했던 성욕을 느끼게 된다. 이에 자신의 형부가 참지 못하고 안으려 하자 거부했다가 J에게 그려진 '꽃'이 이유라는 말을 듣고 그가 몸에 꽃을 그린 후 두 사람은 몸을 섞게 된다. 형부는 그가 가진 인간적 예술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그녀는 자신이 채식주의자임을 넘어서 식물이라는 인식에 대한 증명으로서 이러한 행위를 하고 만다.

    세번째 이야기 <나무불꽃>을 통해 그녀가 갇혀 있던 정신병동에서 물구나무를 서며 창밖의 나무들도 사실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것이라며 동질화하면서 일체의 음식을 거부하고 물만으로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는 야위어가고 있었고,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는 것이 자신이 나무이고 물과 햇빛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아닌 사실을 알지 못한다. 사실은 자기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야위어가는 육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은 정신병동에서 강제로 음식을 먹이는 모습을 보며 피를 토하면서까지 거부하는, 삶을 강요 당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낀 그녀의 언니의 결심으로 큰 병원으로 옮기겠다며 정신병원을 나오게 된다.

    세상에서도 격리되어 또다른 세상에서도 이해받지 못한 그녀는, 그리고 그녀의 언니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영혜는 어떤 관습의 그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한 것일까? 새의 목을 물어뜯으며, 자신의 살을 안으로부터 갉아먹으며 사실상 육식을 하면서도 왜 육식에의 삶으로부터 죽음에 이르려고 한 것일까?

    나는 다양한 타인에 대한 이해와 인정을 다시한번 고민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타인들은 나와 같은 생각일지 아니면 다른 느낌을 받았을지 궁금하게 하는 책이다. 읽은 후 오랜 시간 생각하게 했던 이야기지만 1시간 만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속도감이 있는 이야기이므로 버스나 기차로 여행하는 이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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