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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희 Oct 10. 2022

정지와 운동

세상 통합

 오늘날 지중해와 맞닿아 있는 소아시아 땅 대부분은 터키에 속하지만, 고대에는 그리스의 식민지였다. 이곳의 밀레투스라는 항구 도시에서 기원전 6세기에 인간 사유에 커다란 획을 긋는 사건들이 일어났다. 신화에서 인간 이성으로, 마법에서 탈 마법으로, 신의 세계에서 자연 세계로의 탈바꿈이 일어났다. 그들의 관심 대상은 만물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느냐였는데 신의 요소를 배제하고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누가 보아도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변화무쌍하다. 하지만 변화가 일어날지라도 이들 물질을 이루는 근본 요소는 있을 것이었다. 물질을 이루는 근본 요소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물은 상황에 따라 기체, 액체 및 고체로 변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물질의 근본 요소로 생각할 수 있다. 물은 물질의 상을 설명할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생물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요소라는 것도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므로 세상 만물이 물로 되어있다는 탈레스의 주장은 세상을 신이 만들었다는 주장보다 과학적이며, 세상을 그저 온갖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경험적 결론보다 훨씬 더 단순하며 명쾌하다. 만물의 구성에 관한 과학적인 일반성을 가지고 있다. 아낙시메네스가 세상은 공기로 되어있다는 주장 또한 근본적으로 탈레스와 사유의 방향은 같다. 


이처럼 지구상 만물에 통일적인 질서를 부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연의 변화무쌍함을 알고 있었으나 변화를 철학적으로 접근하기에 앞서 자연이 무엇으로 되어있냐는 질문을 통해 우선적으로 자연을 이해하려고 했다. 정적 규명은 현상의 동적 상태를 이해하는 데 디딤돌의 역할을 할 것이다. 동적 상태 또한 여러 단순한 가정을 통해 문제를 쉽게 구성하여 이해하려고 한다. 그러한 이해는 실제 자연현상에서 일어나는 좀 더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기초가 될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의 정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변화에 대한 사유로 확장되고 자연에 대한 지식은 넓혀져 갔다. 


BC 6세기 그리스 철학자들의 자연에 대한 정적인 사유는 BC 5세기의 철학자들에게 동적인 사유를 하도록 영향을 끼친다. 기원전 6세기 말, 에페소스의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의 근원적 요소를 불이라고 하였다. 통일성의 관점에서 불은 근본 요소로서 물이나 공기와 같은 선상에 있으나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더 확장적이다. 불은 타오르고 깜박거리므로 끊임없는 운동을 상징한다. 계속 변화하는 세상, 생성과 소멸이 일어나는 세계를 설명하려 한 시도였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세상의 변화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그의 운동에 관한 사유는 밀레투스의 두 번째 사상가였던 아낙시만드로스가 이미 운을 뗀 것이다. 그는 어떤 상태의 변화는 시간의 문제로서 시간의 질서는 대립적인 요소로 구성된다고 하였다. 대립은 우리에게 생소하지 않다. 우리가 변화를 얘기할 때 반드시 대립적 요소가 서로 맞물린다. 생성이 있으면 소멸이 있고 낮과 밤, 사랑과 미움 등 이러한 대립적 요소는 변화의 핵심이다. 이러한 대립쌍들이 헤라클레이토스 사유의 주제였고 세계의 변화가 화두의 중심이었다. 그의 만물 유전설은 이를 잘 대변해주며 만물이 불이라는 주장은 자연이 변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명제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에 관한 사유 또한 변화를 화두의 중심에 두었던 깊은 생각이었다. 그가 사유한 존재와 비존재, 감각과 이성 등에 관한 것들은 플라톤 등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친다. 


철학에서 정적 또는 동적 관점을 근대철학에서 예를 들어보자. 중세의 스콜라 철학을 넘어서 근대철학은 신앙보다는 이성이 논의의 중심 대상이었다. 데카르트의 합리주의는 신에의 의존을 벗어나 인간 이성으로 사유하고 결정하는 인간 존재 중심의 사고이다. 이에 대항하는 경험주의 또한 인식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얻으려 하였다.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의 주장을 다 고려한 칸트의 비판철학은 근대철학의 본격적 시작을 알린 쾌거였다. 그런데 이러한 계몽시대의 철학은 시간과 공간에 균질한 정적 철학이다. 인간이 인식하는 방법을 얘기하고는 있어도 인간 개체가 성장하면서 인식의 범위가 달라진다는 것 등에 대한 언급은 없다. 더 나아가 인간 인식이 고대와 현대가 같을 리도 없다. 또한 사회도 변하므로 역사 속에서 인식이 어떻게 변천되는지도 중요할 수 있다. 칸트의 정적 철학은 근대철학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이정표였으므로 근대철학은 전적 철학을 바탕으로 동적 관점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헤겔의 철학이 바로 인간, 사회와 역사를 다 포함하여 사유한 동적 철학이다. 정지를 넘어 운동학적 관점에서의 사유가 헤겔 철학이다. 이처럼 정지는 운동에 선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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