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도전
저자는 최근에 SNS X에 물리와 수학사를 다루는 트위터에서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과학자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대부분 사람이 아인슈타인과 뉴턴을 꼽았지만 나는 주저 없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선택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이 없었다면 뉴턴도 아인슈타인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기원전 4세기에 구축된 그의 과학은 2천여 년을 지배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근대 과학이후에서 오늘날까지 그의 영향은 곳곳에 널려있다.
고대 그리스 사상가들은 인간이 안다는 것을 무지와 독사(doxa), 에피스테메를 구별하여 사용하였다. 무지는 글자 그대로 뭔가 모르는 것을 의미하고, 독사란 사람의 대화 또는 의견을 의미하여 그 범위는 매우 넓다. 아주 간단하게는 먹는 얘기 등과 같은 단순한 것들에서 정치나 사회 또는 과학에 관한 논리적 의견처럼 상대적으로 어려운 것들도 있어 광범위하다. 정치 행위를 예를 들어 보자. 정치꾼들이 하는 궤변 같은 것들은 모두 다 매우 수준 낮은 독사에 속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정치가가 정책을 논하는 의견은 수준이 높을 것이다. 이 또한 독사에 속하여 범위가 넓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에피스테메는 무엇일까? 플라톤은 국가에서 에피스테메를 진리로 규정하여 독사와 구별하고 있다. 진리 추구는 독사와 같지 않다. 그리스 사상가들이 추구했던 것은 에피스테메였지 독사가 아니다. 철학과 과학이 진리를 추구하는 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으므로 이들은 에피스테메의 전형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모든 사람은 본성적으로 알고 싶어 한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앎의 근원으로 감각, 경험이 있고 이들 외에 실용적일 필요가 없는 기초적인 앎이 있다고 일갈한다. 이 중에 기초적인 앎이 가장 상위에 속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피력하는데 이런 것들이 에피스테메에 속한다.
에피스테메는 크게 자연과 인간에 관한 연구로 나눌 수 있다. 자연과학, 공학 및 의학이 자연 연구라면 사회과학, 인문학, 예술 분야는 인간 연구에 속한다. 오늘날 학문 분야를 최초로 구축한 장본인이 아리스토텔레스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모든 학문을 통일적 관점에서 구축하려 했다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과 인간 모두를 어떤 통일 법칙 하에 학문을 구축한 유일한 대학자이다. 후대에 그의 영향은 모든 분야에서 지대했으며 특히 과학 융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의 도전은 학문을 처음으로 제창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학문 모두를 통일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통일 이론을 구축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이 있었기에 뉴턴의 과학혁명은 창출되었다. 근대 과학 이후로 자연과학과 인간과학이 뚜렷이 구분되어야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방법론에서 완전히 분리가 이루어졌다. 통일이론은 더이상 모든 학문에서 가능하게 되지 않은 반면에, 자연과학은 뉴턴물리학으로 말미암아 통일이론의 구축 가능성을 더욱더 믿게 되었다. 근대과학 이후 과학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물리학의 통일(장)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과학을 통일적 관점에서 바라본 지 2천3백 년여 만에 구축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물리학에서의 우주 모두를 통합적으로 해석하는 통일장 이론의 구축을 구태여 언제 본격적인 실마리가 되었느냐 묻는다면 뉴턴의 물리학이 맞다. 하지만 인류로서는 격세지감은 있지만 우주를 이해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고 만약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에 대한 체계적 정리 없이는 뉴턴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언급하였다시피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모두를 통일적 관점에서 바라본 위대한 학자였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에 관한 통일이론의 도전이 있었기에 오늘날 물리학에서의 통일장 이론 구축의 도전이 가능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24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도전은 살아 숨을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