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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양선 Nov 03. 2023

아이의 품

품 안이라고 말하기엔 고작 내 머리와 목만 겨우 가려지는데도.. 포근했다

   조카가 세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는 언니네 집 거실에서 조카와 장난감을 가지고 둘이 놀고 있었다. 갑자기 형부가 나타나더니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두 팔을 벌려 식인 상어가 사람을 집어삼킬 때의 입 모양을 연상시키는 제스처를 하며, 우리 둘에게 다가왔다. 


   "아빠 상어! 아빠 상어!"


   나는 형부를 어리둥절해하며 쳐다봤다. 형부는 나에게 눈을 찡긋하며,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였다. '양선 씨, 무서워하는 척 해' (참고로, 언니랑 형부는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케이스인데 친구인 기간인 9년 동안 나와 교류했을 때 형부가 나에게 존댓말과 '~씨'라는 호칭을 썼는데 그 호칭을 형부가 결혼 후에도 지속하고 있다)


   나는 재빠르게 눈치를 채고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조카에게 SOS를 보내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이고 무서워~! 으흐흑."


   조카는 형부를 향해 재빨리 호통을 쳤다. 그리고 무서워하는 이모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안아줬다. 사실 '이모'를 안아줬다기보단 그냥 '이모의 머리와 목'을 안아준 셈이었다. 아이에 비해 나는 거대하니까. 


   "어허! 아기 상어! 아기 상어!"

   "아빠 상어!"

   "아기 상어! 아기 상어! 아기 상어!"


   몇 번의 접전 끝에 형부가 물러났다. 나는 중간중간 무섭다며 앓는 소리를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무섭다고 추임새를 넣는 연극에 대한 몰입도가 확 낮아졌다. 왜냐하면 내가 조카의 품이 포근해서 아늑함에 빠져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멍 때리다 조카의 품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이게 뭐지' 싶은 표정을 짓는 나를 보더니 언니가 빨래를 개다 말고 씩 웃으며 말했다.


   "제법 포근하지?"


   언니의 표정을 보아하니 언니는 이미 이 포근함의 '유 경험자'처럼 보였다. 우씨. 부럽다.라는 생각이 순간 스쳤던 것 같다. 이 좋은 걸 먼저 경험하다니. 그리고 나보다 훨씬 더 자주 경험할 수 있다니. 내가 넋을 놓은 목소리로 말했다.


   "와, 언니 이게 뭐야? 왜 이렇게 포근해?"


   대체 뭘까. 늠름하게 지켜주려고 하는 아이의 용기 때문일까. 아니면 애들을 재우다 보면 아이들에게서 나는 특유의 아이 냄새에 같이 잠이 든다고 얼핏 들었던 것 같은데, 그런 비슷한 이유에서 오는 포근한 냄새 때문일까. 내가 정말 어렸을 때 느꼈던 엄마의 품이라던가, 아니면 나는 포옹쟁이여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포옹을 자주 하는 편인데, 친구들과 나누던 포옹과는 확실히 다른 품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조카에게 건네받은 첫 번째 온기였다. 그 온기는 분명하고 선명했다. 그리고 기분이 묘했다. 내가 27살이나 어린 존재로부터 보호받다니. 그런데 그게 참으로 안전지대처럼 아늑하고 포근하다니. 역시 우리는 기존의 사고의 틀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늘 인지해야 하는구나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내 조카는 내가 지켜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 또한 조카로부터 지킴을 받을 수 있구나'를 내 마음속 변화된 사고를 담당하는 페이지들 위에 적어두었다.


*Note: 2023년 10월 19일에 올렸던 글을 삭제하고, '연재 브런치'에 기고하기 위해 재 발행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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