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요가를 일종의 종교로 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운동 중의 한 분야로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요가를 최고의 철학이나 심리학으로 일컫기도 한다. 그러나 종교라 함은 믿음(Faith)과 믿음 안에서의 사고 (Faithful Thinking)를 강조하는데 비해 요가는 실천적 가르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요가에도 수트라(Sutra)라는 경전도 있고 챈트(Chant)도 하지만 요가는 믿음(Faith)을 강조하는 측면이 없다는 면에서 종교는 아니고, 그렇다고 단순히 몸만을 스트레치하고 근육을 강하게 만드는 건강을 위한 운동도 아닌, 철학이 있는 운동, 내면에 숨겨진 끝없는 축복과 평화를 찾아가는 수련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아사나(Asana)를 통해 움직임 속의 명상( Meditation in Motion)을 경험하고, 호흡을 통해 현재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을 배운다. 궁극적으로는 명상을 통한 요가 팔 단계의 마지막 단계인 사마디(Samadhi)에서 나 자신 깊숙이 감춰져 있던 끝없는 기쁨과 평화, 사랑, 축복을 끄집어내고, 감정에 끄달림이 없는 평정한 상태(Equanimity)를 유지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인생을 잘 살았다 하는 결과는 기쁘게, 즐겁게(Joyfully) 살았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까? 주는 것도, 받는 것도, 하는 것도, 그리고 인간관계도 즐거웠다면 인생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말은 어떤 것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다가 쉽게 사라지는 경험들이 아니라 어쩌면 내 깊은 곳에서 거품처럼 송골송골 계속 일어나는 그런 기쁨 속에서 살았다는 것일 것이다. 내 인생의 어떤 굴곡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흔들림이 없는 깊은 내면의 기쁨 같은 거 말이다. 그러므로 요가는 우리에게 가르친다. 앞날은 아직 안 왔고,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므로 현재 이 순간에 집중해서 기쁘고 즐겁게 잘 살아가라고...
며칠 전 다른 선생의 요가 수업도 궁금하고 내 개인 수련도 할 겸해서 드롭인(drop in)을 사서 수업에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에 금색의 반짝거리는 곱슬 수염이 있고 머리는 약간 벗겨지고 팔뚝에 문신이 가득한 남자 요가선생과 얘기를 잠시 나누었다. 요가원 안을 들여다보며 내가 말했다. "수업을 하러 왔을 때 학생들이 미리 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매트에 앉아 있는 것을 보면 기분이 어떠냐?" 고 물으니 "기쁘기도 하고 약간 긴장도 된다." 고 했다. 요가 선생은 다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구나 생각하며 다시 물었다. "그럼, 개인 수련을 어디에서 하니? 다른 선생 수업에 가끔 들어가서 하니, 아님 집에서 하니?"하고 물으니 자신은 요가를 가르치는 시간외에는 다른 일을 하기 때문에 혼자 하는 홈 프랙티스(Home practice)는 하지 않는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답을 했다. 그 순간 나는 이 수업을 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갑자기 망설임이 왔고, 다시는 이 수업을 듣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혹자는 내가 너무 심하게 판단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에 그 선생은 마치 연극에서 훌륭한 의사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폭넓은 지식과 경험에서 나오는 전문성 없이 그저 주어진 연극 대본을 달달 외우면서 나에게 약을 처방해주는 가짜 의사와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측한 대로 그 선생은 녹음기에서 테이프가 돌아가듯 달달 외운 포즈 설명을 해가며 앞자리에서 계속 자신이 포즈를 보여주는 것으로 수업을 진행하였다. 선생이 자기수련을 하고 있는 것인지 가르치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요가 티쳐스 트레이닝(Teacher's training)을 받을 때 나의 스승 트레이시(Tracy)는 항상 강조하였다.
"네가 가르칠 때는 가르치기만 하고, 수련할 때는 수련만 해라".
(When you are teaching, Teach!! When you are practicing, Practice!!)
물론 나도 매일 집에서 프랙티스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홈 프랙티스를 게을리했을 때는 마음과 몸이 무겁고 둔하며 어쩐지 몸과 단절된(Disconnected) 느낌이 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수업 가기 전 아침 수련을 한 후에 잠시 갖는 명상시간을 통해 하루의 시작을 위한 이 순간에 머무르며 많은 생각 뒤에 숨겨진 감정과 에너지의 흐름을 자각하면, 내 마음은 좀 더 고요해지고 의식은 좀 더 뚜렷해지며 내 몸, 마음과 드디어 연결됨을 느낀다. 지난 몇 년 동안의 이 경험을 통해 가끔 요가매트에서 느꼈던 잠재적인 불편함 이를테면, 둔한 에너지 감각, 감정적 막힘, 근육의 당김으로부터 자유로와졌다. 또한 아침에 단 15분간의 개인 수련일지라도 내 수업의 퀄리티(Quality)가 달라질 수 있음에 스스로 놀랐다. 이런 자기수련은 개인으로서, 요가 선생으로서의 나의 역할과 나의 존재감을 찾게 해 주는 좋은 시간이다. 요가 선생으로서 이런 자기수련이 없다면 포즈 안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예민한 감각과 의미를 결코 알 수 없으며, 결국은 축복받은 나 자신에 대한 기쁨도 모른 채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시계추와 같은 요가 선생이 되고 말것이다. 만약 내가 포즈에서 오는 예민한 몸의 감각도 못 느끼고 본연의 나도 모른다면 어떻게 각 학생들에게 맞는 포즈를 제시할 수 있으며, 각자 조금씩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는 학생들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자기수련이라 함은 '완벽한 포즈'(Perfect pose)를 취하기 위함이 아니라 결국은 나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단단하게 쳐 놓은 방어의 바운더리(Boundary)를 넘어서 좀 더 유연하고 부드럽고 사랑이 담긴 내 안의 중심(Center)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내 몸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감각을 알아차리고, 내가 피하고, 숨고 싶은 것은 무엇이며, 무엇이 나를 고요하게 하는지를 탐구하는 시간인 것이다. 내 몸에 대한 폭넓은 경험은 각자의 유니크한 몸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 다른 사람들 즉, 내 학생들과 마침내 소통할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