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추억은 차창 밖 풍경처럼 스치게 두자.
꿈에 나는 낯선 버스 안에 앉아 있었다.
파란색 버스다. 창밖풍경은 청계천과 고궁을 지나는 것으로 보아 을지로 어디쯤인 것 같다.
버스 안 손님은 나와 어떤 아저씨 두 명이 전부이다.
나는 운전석 반대편의 뒤쪽 2인석 창가자리에 앉아있다.
창밖 기다랗게 뻗은 돌담은 내가 아는 고궁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꿈속풍경이라 그러한 것이겠지만, 나는 이게 꿈이란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계속 창밖만 응시한다.
버스는 잔잔히 흐르는 긴 물줄기의 청계천을 질러간다. 그 풍경만은 현실 속 그곳과 정확히 같다.
시간대는 낮이다.
청계천 계단아래 나란히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햇살이 은은하게 비추어 평화로운 분위기이다.
고궁입구를 지나는 버스는 수많은 인파에 잠시 정차한다. 운전석 뒤쪽 1인석에 앉은 아저씨는 아까부터 계속 혼잣말을 하시는데 뭐라고 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는다.
-그렇지, 이거지, 얼마나 좋아-
뭐 이런 감탄사들인 것 같다.
자세히 보니 그 아저씨도 버스기사님과 같은 점퍼를 입고 계시다. 그 아저씨는 혼잣말을 한 게 아니라 기사아저씨와 소소한 대화를 주고받으셨던 것이었다.
운전대를 잠시 놓고 승객의 입장에서 즐기고 계신 모양이다.
버스 타는 게 뭐라고 저렇게 만족해하신다니.
누구든 자기 일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더 넓게 바라보면 한숨대신 감탄사가 나올 수 있는 것이겠지.
고궁에 들어가려는 인파가 너무 많아 정체가 길어진다. 나도 그냥 내릴까 잠시 고민한다. 그러나 자신이 없다. 저 청계천 물줄기를 다시 마주할 자신이 없다.
저 위에서 시작되었던 인연 때문이다.
그리고 저 청계천에서 끝맺었던 기억, 그 정확히 10년 후 매일 회사 점심시간 저 청계천 물가에 앉아 햇빛에 빛나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그 아이를 떠올렸던 그 추억들. 그 기억들을 마주할 자신은 없다.
나도 한 발자국 물러나 이렇게 차창밖으로만 스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저 길 위에서 기뻐하고 슬퍼하고 행복해했던 과거의 나를 버스 창가 프레임 너머 멀리서 바라보며, - 그랬지. 그랬었지. 참 좋았지 - 이렇게 그저 아련한 감탄사만 내뱉어본다.
가끔은 과거 그날로 돌아가 저 청계천 아래를 다시 걸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미래에 기술이 발전해 과거의 한 시점에 다녀올 수 있게 된다면, 나는 무조건 그날 그 아이와 함께 걸었던 이 청계천 위에서의 시간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미래가 온다 하여도, 과거로 돌아가 그 순간을 다시 재현해 내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지나간 추억을 다시 곱씹어 세세하게 되짚어내지는 못한다 하여도, 차창밖 스쳐 지나가는 풍경처럼 그 자체로 충분히 지금 아름다운 풍경임은 틀림없기에.
결국 이 모든 것이 지나갔다는 사실이 참 좋다.
변하지 않을 과거는 내 안에 영원하기에,
이렇게 한걸음 물러나 바라보는 그 기억은 아련하게 떠올라 현재의 나에게 와 머문다.
그렇게 꿈속 버스는 탁 트인 창밖 풍경만 감상하는 두 사람의 조용한 감탄소리만 태운 채 서서히 다시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