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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운 May 08. 2024

잠이 오지 않아서

잠이 오지 않아서


어제와 오늘이 다른 건 9시에 일어나도 된다는 것이다. 이런 백수 생활도 당분간은 계속될 거라 생각하니 잠은 더 잘 수 있겠다 싶었다. 생각해 보면 평소에도 불면증 때문에 새벽 4시는 지나서야 잠이 들었다. 그리고 출근하려면 아침 7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했다. 3시간 정도를 자면 대개 오전은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지만 점심을 먹은 후엔 졸리기 시작해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무슨 일 있어?라는 말을 최근에 많이 들었다. 나는 이게 다 불면증 때문이다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주변사람들에게는 새벽마다 불면증 때문이다라고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평소보다 2시간 정도를 더 자서 그런가 개운하다. 새벽 4시쯤이 아니라 2시에도 자려고 노력하고 12시에도 자려고 했다. 하지만 12시에 잠을 자려고 해도, 2시에 자려고 해도 결과는 새벽 4시쯤에 자게 되었다. 저녁이 되면 또 긴 새벽의 잠이 오지 않는 고통을 온전히 느껴야 한다는 부담감이 사로잡고 있었다. 나는 오전에 있을 에세이 수업을 가기 위해 밖을 나선다.


 회사에서는 ai사용을 위해 테스트차원에서 담당자를 지정한다고 했다. 나를 비롯한 직원들은 모두 자신의 일에 혹을 붙이기 싫다는 반응이었다. 나 역시 그랬다. 사용시간, 테스트내용, 결과들, 새로운 보고서의 추가는 그만큼 업무시간을 늘린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인사평가에 결정적인 포인트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언제나처럼 3시간 정도를 자고 출근한 월요일이었다. 팀장은 민 대리 나 좀 봐라고 말했다. 대개 월요일은 모든 사람이 예민했다. 이제 좀 쉬었다 싶으면 출근날이 다가온다. 월요병이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팀장의 목소리에서 예민함이 느껴졌다.

부장의 지시사항은 내가 ai시스템을 활용해서 업무를 하고 그에 대한 결과를 보고서로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업무를 말하는 중간 중간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내가 해야겠네 같은 말로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네 알겠습니다 라는 카톡에 보낼만한 말과 함께 미팅은 끝이 났다. 뭔가 맡아선 안될 것을 맡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분은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내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어떤 알고리즘 때문에 에세이수업광고가 뜨는진 몰랐다. 새벽이 되면 나는 잠이 오지 않아서, 평소엔 흥미 없는 것들이 관심이 갔다. 전혀 필요 없을 것 같은 주방도구, 미니청소기 이런 것들을 결제했다. 며칠 후 택배가 와 있으면 언제 시켰지 하면서 뜯을 때면 모두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서 일어난 결과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 악순환이 유튜브 때문인가 싶어서 잠이 들기 전 휴대폰을 멀리 놔두곤 했다. 그러다 한 번씩 휴대폰 알람소리를 듣지 못해 지각을 했다. 알람시계도 소용이 없었다. 내 귀는 휴대폰 알람소리에 최적화되었던 것이다. 나는 에세이수업 광고가 뜰 때마다, 상품 판매 광고가 뜰 때마다 x를 눌렀다.

하지만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계속해서 에세이수업광고는 상품판매와는 달리 계속 노출되었다. 나는 여태껏 글쓰기를 한 적이 없었다. 글쓰기는 자기소개서밖에 쓰지 않았다. 사실 그것도 친구가 대신 써준 대필이었으니, 나는 글쓰기를 한 적이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렇게 글쓰기 광고수업이 뜨는 것은 꽤 의아한 일이었다. 잘못된 알고리즘이라면 많이 잘못된 것이었다.

ai시범테스트는 민대리가 하게 되었다고 말한 부장의 표정은 홀가분해 보였다. 내게 커피를 사주기도 하고, 보고서 쓰는 것도 이런 식으로 썼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해주었다. 어쩌면 나는 이 ai를 활용함으로써 더 많은 광고에 노출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에세이 수업은 내가 사는 곳과 지하철로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대학교 인근에 있는 건물이다. 나는 5분 정도를 지각했는데, 강사는 내가 제일 마지막에 도착했다는 말을 한다. 첫 수업은 각자가 생각하는 에세이에 대해서 말한다.

-자유로움이요.

60대로 할머니로 보이는 수강생이 말한다. 아니 60대를 할머니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어떤 면에서 그렇게 생각하실까요?

-제가 작년에 은퇴를 했어요. 은퇴를 하고 나서 아침부터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딸애가 글쓰기라도 해봐라고 해서 하게 됐는데, 이 전까지는 못 느낀 자유가 떠올랐어요. 얼마나 좋던지.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간다.

-그렇게 쓰다가 올 해는 좀 배워보자 해서 오게 되었어요. 내가 쓰는 게 에세이가 맞나 싶어서요. 다른 사람들 글도 볼 수 있다고 해서요.

-따님 분이랑 친하신가 봐요. 잘 오셨어요. 네 자유로움도 맞죠. 자유롭게 떠 오르는 생각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쓰는 형식. 에세이를 짧게라도 좋으니 다음 주에는 수업에 올 때 몇 줄정도라도 써보세요. 지나치는 모든 것, 길을 가다 생각이 난 것, 억울한 것, 좋았던 것, 행복하다고 느낀 일, 또는 불행했던 일 모든 것이요. 쓸 수 있을 만큼만, 밝히고 싶은 부분만 써도 돼요.

강사는 첫 과제를 간단한 에세이 쓰기를 주고 수업을 마친다. 여기선 모두가 글에 진심으로 보인다. 나는 밖을 나서며 강사가 말한 지나치는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한다.


회사를 관둔 건 ai사용효과를 누락한 보고서 때문이었다. 내가 하는 일과 겹쳤기 때문에 나는 더 효과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점차 나보다 나은 결과를 도출하는 것에 대해서 나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나날이 지속되면서 새벽 4시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보고서에 내용을 채워갈수록 ai도입의 효과를 덜 돋보이게 하기 위해 누락을 해가기 시작했다. 결국 그 보고서는 몇 개월 후 부장에 의해서 밝혀졌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일부를 누락했습니다 라는 말로 나는 회사를 관두었다.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이번 기회에 그동안 스트레스였던 불면증을 고쳐보고 싶었다. 그리고 계속 내게 맴돌았던 에세이 수업도 신청을 했다.


나는 집으로 가며 첫 과제인 간단한 에세이를 무엇으로 써야 할지 고민을 한다. 에세이 수업 때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60대인 그녀는 은퇴와 딸과의 이야기를, 20대 남자로 보이는 그는 아마 학교생활, 또는 연애와 우정, 아니 연애를 쓰기엔 좀 그런가 한다. 30대로 보이는 여자는 결혼이나 여행이야기를 쓰려나 한다. 나는 무엇을 쓸까.


휴대폰을 꺼내 제목을 적어본다.


잠이 오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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