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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타는지성인 Sep 02. 2023

해영의 소설

혼자 지 낼 공간이 필요해라는 말을 나는 해영이 불만이 있어서 그런 말을 하는 거겠거니 했는데 정말 혼자 지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막상 해영이 떠나고 나니 좁은 집이 일순간은 넓어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사람의 부재란, 생각보다 커서 나는 결혼 후에 생각지도 못한 외로움을 느꼈다. 

우선 밥을 할 때 2인분을 하는 것을 1인분으로 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음식물쓰레기는 더 나왔다. 혼자 자취할 때보다 더 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이상함을 느꼈는데, 생각해 보면 1인분을 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2인분을 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한 번은 밥을 먹다가 도저히 먹고 싶지 않아서 해둔 밥을 모두 음식물쓰레기봉투에 넣었다. 이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해영아 1주에 1번은 와야 하지 않아?


그 말을 들은 해영은 연천이 인천인 줄 아느냐고 되려 큰소리를 쳤다. 네이버지도로 100km가 넘는 거리는 자동차로 1시간 30분 정도를 알려주고 있었다. 대중교통은 3배나 더 걸렸다. 나는 그럼 1달에 1번이라는 조건으로 뒷걸음쳤고 더 이상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해영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짐을 쌌다. 나는 그 말을 뒤로하는 수 없이 짐을 함께 싸 주었다.


해영이 연천으로 갈 수 있었던 건 로또 당첨이었다. 어느 날과 다름없는 퇴근길이었다. 해영은 그날 소고기를 사주겠다고 말하며 카톡으로 지도를 보내주었다. 검색을 해보니 아주 비싼 한우 오마카세였는데, 수입이 일정치 않은 해영이 무슨 돈으로 여기서 먹자고 한 건지 궁금했다. 나는 해영에게 로또 당첨 된 거야?라고 농담을 했는데 어떻게 알았냐고 말하면서 정말 2등이 된 번호를 보내주었다. 

난생처음 먹는 한우를 먹으면서 나는 해영이 사주는 한우보다는 해영의 표정을 더 기억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한우를 먹는 해영은 다른 때보다 할 말을 참고 있어 보이는 표정이었다. 해영은 약간의 술로 취하기 전에 말을 꺼냈다. 


로또 2등은 내 거야, 그러니 이 돈은 혼자 쓰게 해 줘. 2년 정도만 혼자 지낼게. 살 집은 알아봤어. 연천이고 생활비나 이런 부분들은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너무나 명료한 해답이었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으니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해영이 그곳에서 2년 동안 뭘 할지도 궁금했고, 연천에 가 있는 동안 우리의 삶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해영은 그게 나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좋은 일이 될 것이라는 믿어 의심치 않은 듯해 보였다.


로또 당첨된 돈은 네 거야 해영아. 당연히 네 마음대로 해도 좋아. 그런데 연천까지 갈 필요가 있어? 그 돈으로 여기서 지낼 수도 있잖아.


한우는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양이 남았음에도 그랬다. 해영과 떨어진다는 생각은 생각조차 머릿속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혼자 지낼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조금은 불안해했어야 했나라는 후회가 뒤를 따르기도 했다.


보내줘. 혼자 있어야 해. 혼자 있어야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 예전부터야 아주 더럽고, 추악하고, 퇴폐적인 것들을 쓰고 싶어. 이해 못 하겠지만, 언제까지 의뢰를 받는 동화만 쓸 수 없어.


나는 그 뒤로 아무 말 없이 술만 먹고 해영과의 결혼을 후회했던 것 같다. 해영이 떠난 후에 1달에 1번은 올 줄 알았지만 그 뒤로 연락도 잘 되지 않았다. 주소는 나중에 알려주겠다면서 계속해서 피했다. 나는 그때서야 다른 남자가 생긴 걸까라는 의심까지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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