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니슨 Feb 05. 2024

부자(父子)가 친 텐트

아이의 자부심 레벨 업

우리 가족은 겨울 캠핑 장박 중이다. 집에서 멀지 않은 캠핑장에 텐트를 쳐놓고 매주 차곡차곡 우리만의 추억을 쌓고 있다.




내 기억에 텐트 캠핑은 7년 만이다. 좀 더 편의성이 높은 캠핑을 위해 카라반에 이어 캠핑카로 캠핑을 다니고 있는데 남편은 늘 '그래도 캠핑 감성은 텐트지~!'라며 다시 텐트를 선호하는 눈치다. 캠핑카로 캠핑을 가도 개인만의 텐트를 치고 생활하는데 아마도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장박은 텐트로 하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두 아이가 아직 한참 어리던 7년 전 텐트 캠핑에 대한 기억이 썩 좋지는 않았다. 어린 아이들을 먼저 챙겨야 하는 나와 자신이 텐트를 치면 짐은 내가 빨리 펼치길 바라는 남편과의 갈등이 반복됐던 까닭이다. 텐트의 연결선이나 튀어나온 팩, 난로, 테이블의 모서리 등 아이들에게 위험한 것들이 많아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었기에 정신적으로 피로하기도 했다.


때문에 텐트로 장박을 하는 데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웠지만 남편의 설득에 그러기로 한 것이다. 그때보다 애들은 컸고, 나는 캠핑 세팅에 조금 더 익숙해졌으니 괜찮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다. 사실 캠핑카로 장박을 하는 것도 무리고.


'장박 돈 내놓고 안 가는 거 아니야?', '다시 트 생활하려면 불편하지 않을까' 부담이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이상하게 설렜다.




"겨울 장박은 바닥 세팅이 중요하니까 첫날엔 내가 먼저 가서 치고 있을게. 나중에 애들 데리고 와~."


남편은 바닥 공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겨울캠핑은 바닥의 냉기를 잡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전기장판과 난로가 있다지만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스티로폼을 깔고 또 무엇을 깔고 깔고 깔고. 남편의 설명을 다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대단한 바닥 공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쯤 되니 선뜻 혼자 수고하겠다는 게 몹시도 고마웠다.


"아빠! 나도 갈래. 같이 해요~."


햇수로 캠핑 10년 차인 큰 아이가 나섰다. 아빠와 함께 텐트 세팅을 한다는 것이었는데 '짐만 되지 않을까', '괜히 가서 혼나는 거 아니야' 우려돼 말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10년차고 13살이라지만 텐트 치는 것을 제대로 도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만의 기우였다. 아이는 아빠의 훌륭한 오른팔이 되어 멋지게 우리의 장박지를 완성해 냈다.


텐트 설치가 완료되고 짐 정리가 이뤄질 즈음에 나와 둘째 아이가 캠핑장에 도착했다. 큰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다다다다 자신의 활약상세세히  늘어놨다.


"엄마 엄마. 아까 아빠랑 바닥에 스티로폼을 까는데 잘못 깔아서 다시 다 걷어내고 다시 깔아가지고 어쩌고 저쩌고~. 그러다가 너무 힘들어서 같이 게토레이를 사 먹었거든~. 어쩌고 저쩌고"


따발총같이 쏟아지는 아이의 말에는 굉장한 성취감과 자부심 같은 것이 가득했다. 평소 본인의 캠핑 경력을 자랑하곤 했지만 경험치를 입증한 적은 없었는데 '10년 경력의 캠퍼'라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 낸 것이다. 나도 이렇게 대견한데 본인은 오죽할까.


아이에게 캠핑 경력 24년의 아빠는 자랑이자 닮고 싶은 모습이었다. 그런 아빠와 바닥 공사를 하고 텐트를 치는 전 과정을 함께 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웅장했을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아빠랑 이걸 다 하다니... 진짜 대단한데~!!"


마치 영웅이라도 된 듯 어깨를 들썩이는 아이를 향해 엄지를 들어 올렸다. 



이제 장박지의 우리 텐트는 아이의 새로운 자랑이자 자부심이 됐다. 덕분에 금요일부터 캠핑장에 가자고 성화다. 키즈 캠핑장도 아니고 특별한 놀거리도 없는데 아이는 캠핑장에 가는 것만으로도 신이 나는 모양이다


"근데, 캠핑장에 가면 뭐가 좋아? 우리 집보다 좁고 놀거리도 없는데?"


"내가 쳤으니까! 가서 책도 보고 숙제도 하고 게임도 하고 넷플릭스도 보고 그럼 되지~"


그런 아이를 보니 정말 많이 컸구나, 싶었다. 마음이 살랑거렸다. 오랜만의 텐트 캠핑이 걱정되면서도 설렜던 이유, 이것 때문이었나 보다. 7년 전 텐트 캠핑의 힘들었던 기억과 달리 편안하고 포근했다. '이 정도면 겨울마다 장박 해도 되겠는데~?' 싶을 정도로 대만족이다.



남편과 큰 아이 덕분에 우리는 매주 장박지에 간다. 놀거리도, 특별한 것도 없는 캠핑장이지만 아이의 자부심으로 반짝이는 그곳에서 책도 보고 숙제도 하고 게임도 하고 넷플릭스도 본다. 때로는 거세고 때로는 따뜻한 겨울바람을 맞고, 눈이 오는 날에는 강아지처럼 신이 나 뛰놀기도 한다. 또 고기도 굽고 고구마도 굽고 밤도 굽는다. 밤에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서울을 조금만 벗어나도 별이 한가득이구나' 감탄한다. 우리 가족만의 특별한 주말을 보낸다.



익숙하지만 먼 캠핑장 vs 낯설지만 가까운 캠핑장


친절하고 시설이 좋아서 우리가 자주 가던 먼 거리의 캠핑장과 가본 적 없는 단거리의 캠핑장. 어디를 가야 할까 꽤 많은 시간 고민했는데 단거리의 캠핑장을 선택한 건 신의 한 수였다. 아무리 시설이 좋고 친절해도 멀었다면 이렇게 자주 가지는 못했을 터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