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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Feb 19. 2024

사용자 과실 VS 관리자 실책

내가 머문 자리는 최대한 아름답길

저녁 설거지를 하러 갔는데 한 개수대에 굳은 기름 덩이와 음식물 찌꺼기가 잔뜩 남겨져 있었다. 무슨 기름진 음식을 먹었는지 개수대 안도 기름 범벅이었다. 그 옆 개수대에는 잘린 상추 끄트머리가 흩뿌려져 있었다. 밥 알이 펼쳐져 있는 개수대도 있고. '왜 안 치우고 갔지?' 눈살이 찌푸려졌다.


겨우 설거지의 잔해가 없는 곳에 잘 자리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선택한 곳에는 거름망에 그것들이 가득했다. 불어 터진 면발과 김치 조각, 그리고 여러 가지. 아휴. 한숨이 터졌다. 그것들은 결국 내 설거지 종료와 함께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안착했다.


다음 날 아침을 먹은 후 설거지를 하러 갔을 때도 기름 덩이는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긴 관리를 안 하는 건가! 그래도 아침엔 좀 들여다봐야 하는 거 아니야!' 또 한숨이 났다. 바로 전 화장실에 갔다가 바닥에 휴지들이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직후라 한숨은 전날보다 깊었다.


투덜이 스머프에 빙의해 투덜대다가 궁금해졌다. 이건 머문 자리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사용자의 과실일까 빠르게 치우지 않은 관리자의 실책일까. 나는 전자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싶다.


Image by Kanenori from Pixabay


캠핑장은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곳이다. 때문에 공용 공간을 이용했다면 다음 사람을 위해 잘 정돈하는 것이 사용자의 중요한 책임이다. 내 집처럼은 아니더라도 펜션이나 리조트 체크아웃 할 때 치우는 것과 같은 정성은 필요하다.


공용 공간이 많은 캠핑장에서는 공동의 편의가 개인의 그것이나 자유보다 앞서야 하지 않을까. 아주 기본적인 것만 지켜도 더 많은 사용자들이 즐거울 수 있다.


그렇다고 관리자에게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혹은 수시로 들여다보며 캠핑장을 찾은 사용자들이 불편하지 않게 하는 것이 그들의 책임 아니던가. 전날의 좋지 않은 환경이 다음 날까지 그대로라는 것은 분명 관리소홀이다.


우리는 모두 좀 더 깨끗한 환경에서 캠핑하길 원한다. 음식찌꺼기가 가득한 개수대, 휴지가 바닥에 버려져있는 화장실은 모두가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귀찮고 번거롭더라도 사용자가 먼저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마음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Image by pekoesi from Pixabay


개수대 속 기름덩이를 마주한 날 이후로 '혹시 거름망 비우는 것을 잊지는 않았는지', '개수대 안에 어떤 흔적이 남아있지는 않은지', '내가 쓴 휴지가 바닥에 떨어지지는 않았는지' 사용한 자리를 한 번 더 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 문에 써져 있는 문구처럼, 내가 머문 자리는 완벽하진 않더라도 최대한 아름답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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