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당번 : 저거, 그거, 이거
우리 집에서 가장 시끄러워지는 시간을 골라보라고 하면 바로 저녁 먹기 전, 메뉴를 고르는 시간이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무난한 아빠와 다르게, 각자의 선호도가 다른 편이라 메뉴를 고를 때 늘 소란스러워지기 때문이다.
향신료를 좋아하지 않고 먹으면 부담스럽고 느끼한 중식을 선호하지 않는 나와,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면 잘 먹지 않으려고 하는 엄마.
그리고 우리 집 대표 미식가(?)인 타칭 성슐랭이라 불리는 동생까지..
그런 소란스러움 속에서도 아빠를 제외하고 통일하는 음식이 있는데, 바로 월남쌈이다.
고기를 좋아하지만 야채는 별로인 동생과, 느끼하지 않고 깔끔하면서 부담스럽지 않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아하는 엄마와 나. 다만 아빠는, 라이스페이퍼에 야채 조절을 못하다 보니 가리지 않는 음식의 순위에서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하나로 맞추기 쉽지 않아서, 어느 정도의 귀찮음과 익숙하지 않은 포인트들을 내려놓고는 했다.
그리고 그날 역시 아빠를 제외하고 다수결의 원칙으로 저녁은 월남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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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뜨거운 물에 라이스페이퍼를 적신 후, 엄마가 준비한 다양한 색색깔의 야채를 넣고, 아빠가 구워준 고기를 한 점, 마지막으로 엄마표 소스까지 넣어서 돌돌 말면 나만의 쌈이 완성됐다.
가볍지만 든든하게 배를 채웠을까, 뒷정리는 귀찮다며 엄마가 식기세척기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은 다른 손을 쓸 거라고.
동생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의 몫을 입안에 털어놓기 바빴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월남쌈을 먹었지만, 옆집 아줌마가 구워준 고구마로 입가심을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동생이 엄마 뒤를 쓱 보다가 입을 열었다.
오늘의 저거가 저거냐고.
의아함에 엄마의 뒤로 시선을 돌리자, 식기세척기 대신 손을 바쁘게 움직이는 아빠가 보였다.
못 들었다는 아빠와 그 상황이 제법 웃겼던 나와 동생은 엄마의 저거(아빠) 외에도, 저거(나)와 이거(동생)가 돼버리면서 입을 꾹 다물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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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장면들은 너무 사소해서, 그 시간이 지나가면 잊혀버리고는 한다. 그래서 더더욱 지나가면 기억이 나지 않을 평범하지만 우리에게만은 특별한 그 순간들을, 장면과 장면들로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하지만 특별한 순간들을 틈틈이 스케치하듯 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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