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을 기록하는 이유
일을 하면서 얻게 된 만성적인 통증도 있었지만, 평상시에 자세가 좋지 않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된 필라테스였다.
어떤 운동이든 재미를 붙이지 못해서 자잘 자잘하다가 말 정도로 어떤 시즌들을 지나면 점점 멀리하고는 했는데, 시작한 지 2년을 훌쩍 넘겼을 만큼 필라테스는 하면 할수록 재밌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때마다 몸의 한계를 느낀달까..
하지만, 매번 한계를 느끼더라도 꾸준하게 하게 되는 운동이라 가능하다면 오래 가져가고 싶을 만큼 좋아하게 됐는데 이 운동이 재밌는 이유 중 하나는 엄마와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엄마도 잦은 수술 탓에 어깨, 팔, 무릎, 발, 특정 부위가 아닌 전체적으로 관리가 필요했는데 내가 먼저 시작을 하고 필라테스도 샘도 괜찮아서 추천했는데 그러면서 같은 샘한테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후 늘 필라테스를 하는 시간에는 샘에게 엄마는 내 얘기를, 나는 엄마 얘기를 술술 풀어놓고는 했다. 나는 엄마가 한 내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어쨌든 같은 운동을, 같은 샘으로 진행하게 된 만큼 엄마와 더 가까워지는 시간이 된 것도 있어서 좋았는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샘한테 어떤 말들을 듣게 됐다.
"어머니 닮아서 운동신경이 좋으신 거 같아요."
"어머니가 지구력이 정말 좋으세요."
"어머니는 운동을 정말 확실하게 하시는 걸 좋아하시더라고요."
지금 얘기하는 거 저희 엄마 맞죠..?
다른 분이랑 헷갈려하시는 거 아니죠..?
내 말에 필라샘은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웃고는 했지만, 나는 정말 진심을 가득 담아 얘기했던 거였다. 내 기억에는 엄마의 지구력과 엄마의 운동신경을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 정말 희박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주에 2번을 라인댄스를 다니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엄마가 추는 것을 보고 그곳은 괜찮은지(?) 종종 질문했기 때문이다.
..
어느 날, 가족여행을 안면도로 가게 되면서 필라샘이 이야기했던 그 운동신경을 알게 된 날이 생겼다.
비가 왔던지라 물 웅덩이가 몇 군데 남아있지만, 테라스에서 음료를 마시기에는 좋았던 날씨라 동생과 아빠가 주문을 하는 사이에 엄마와 내가 자리를 잡기로 했다.
그리고 마음에 든다며 나무 밑 테이블에 가까이 간 엄마가 테이블에 핸드폰을 내려놓으려고 하는 것과 동시에 나무 위에서 무언가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적나라하게 꿈틀거리는 그 무언가를 발견한 순간,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내가 그 무언가가 송충이인 것을 확인하고 나보다 조금 더 앞에 있는 엄마를 보는데, 엄마는 벌써 사라지고 난 뒤였다.
그것도 떨어진 핸드폰까지 주워서 저 멀리....
이게 바로 필라샘이 이야기한 운동신경이었구나..
근데 엄마.. 나도 송충이 싫어해..
어떤 순간들이 있다. 어쩌면 아주 사소해서 잊어버렸을 순간들. 그 당시에는 웃고 울고 한껏 감정을 표현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잊혔을 순간들.
이 순간도 그랬을 것이다.
그 당시에 이때다 싶어서 엄마를 놀리고 웃고 넘어갔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흐릿해지면서 잊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을 아주 짧은 몇 줄이라도 기록해 놓은 다이어리를 보는 순간, 그때의 장면이 영화를 보는 것처럼 촤르르 펼쳐졌다.
그때의 분위기, 그때의 감정, 그리고 사람.
그렇기에 더더욱 이런 순간들을 글이든 그림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서 다시 촤르르 펼칠 수 있는 추억이 될 테니까.
평범하지만 특별한 순간들을 틈틈이 스케치하듯 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