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다 하지 않아도 괜찮은

밤 / 1-5

by 지안

방 안은 조용했다.

창문을 반쯤 열어둔 채 불을 끄니,

밖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와 풀벌레 소리,

그리고 멀리 강아지가 짖는 소리까지 또렷하게 들렸다.

도시에서는 백색소음처럼 묻혀 사라졌던 소리들이었다.


나는 전등도 스탠드도 켜지 않은 채,

어둠 속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오늘 하루의 장면들이 머릿속을 천천히 떠다녔다.

돌담길, 유채봉오리, 노을빛, 손바닥에 닿던 햇살.

그리고 선생님의 말,

그 말이 유체 물감이 굳듯,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뭘 더 해야 할 것만 같았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이 하루에 뚜렷한 성취는 없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특별한 일도 없었다.

그런데도 지금 나는

어딘가 채워진 느낌이었다.


‘이렇게 하루를 잘 보냈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스스로에게 그렇게 묻고,

또 스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이 시간을 돌아봤을 때,

지금의 이 느슨하고 불확실했던 날들이

꼭 지나가야 했던 계절이었음을 알게 되겠지.

마음이 어지러웠던 만큼,

나는 더 단단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직은 다 몰라도 괜찮다.

모르면서 겪는 시간도,

분명 어딘가로 나를 데려갈 테니까.



밖은 어느새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았다.

하늘엔 별 몇 개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풀잎 끝에는 미세한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조용히 내쉬었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무 말 않고, 가만히 마음을 다독였다.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괜찮고,

대단한 걸 깨닫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

그 하루를 무사히 지나온 것만으로도,


오늘은, 나에게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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