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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Mar 03. 2021

내 아이가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를 함부로 칭찬하지 말 것 #자존감 높은 아이 키우기

첫째 딸아이는 워낙 올차고 순해서 크게 야단칠 일 없이 키우고 있다. 더불어 또 첫 아이다 보니 아이의 조그만 성취에도 우리는 크게 놀라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키웠다. 처음 통잠을 자 주었을 때도, 일 년의 완모 끝에 너무 쉽게 단유를 했을 때에도, 처음 말을 시작했을 때, 처음 기저귀를 떼었을 때, 처음 노래를 불렀을 때, 처음 어린이집에 등원을 했을 때, 처음 동생에게 자기 간식을 양보했을 때, 처음 자전거를 스스로 탔을 때, 처음 기도를 스스로 했을 때에도 모든 순간이 너무 신기하고 기특하고 고맙기만 했다. 작은 성취에도 우리는 "예쁘다, 잘한다, 착하다." 칭찬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아이는 덕분에 매사에 자신감이 있었고, 밝게 자라고 있다고 믿었다.


육아와는 별개로 최근의 시댁과의 문제로 자존감이 많이 낮아진 나를 보며, 이 관계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 '좋은 며느리'로서 시댁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솔직한 내 본모습을 고이 접어 넣어두고 시댁의 기대에 부응해야 마음이 편한 '며느라기'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시댁 식구들이 참 불편하다. 시어머니께서 육아나 살림에 대해 무언가 심하게 꾸중을 하시면 가정에서의 내 역할을 다 해내지 못한 것처럼 쉽게 좌절스러워지고 말았다. 내가 잘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도 "너는 왜 이렇게 밖에 대처를 못하냐. 애들을 그렇게 키우면 어떡하냐. 정말 철이 없다. 그럴 거면 그냥 나가라. 어쩜 이렇게 예의가 없느냐. 그래 네 맘대로 다 해라."라는 식의 극단적인 평가 앞에서는 자꾸 주눅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 모든 방식을 어머님의 기준에 맞추어 재정비하곤 했다. 어머님이 잘못된 생각을 갖고 계시든 아니든 그것은 상관없었다. 그냥 어머님이 옳다고 생각하시는 기준에 맞추어야 했다. 그래서 꾸중을 듣지 않을 수 있으면 그게 더 마음이 편했다.


신랑은 교포이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의 고유한 '고부 갈등' 문화를 떠나서라도 왜 본인의 부모님이나 가족들의 평가가 그렇게 나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상대가 아무리 폭언을 해도, 그게 옳은 이야기나 제대로 된 방식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했다. 어차피 타인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으니, 내 마음을 컨트롤하면 된다고 말이다. 다른 의견을 아무리 강하게 제안하셔도, 앞에서 "네~ 생각해보겠습니다."하고 원래 우리가 옳다고 믿었던 것이 있었다면 그 방식 그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의견을 제시하실 수 있는 것이고, 그 의견을 따르지 않는다고 화를 내시는 것은 어머니 자체의 문제이지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이다. 말은 참 맞는 말인데 나는 그게 잘 안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스스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사실 우리가 우리 자체로 문제가 없다면 시댁에서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뭐라고 말하든 사실 별로 상관이 없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괜찮은 엄마로서, 신랑에게 좋은 아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스스로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신랑도 충분히 그렇게 느끼며 고마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나는 시댁의 비판적인 평가에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을까. 살면서 이전까지 이렇게 어려운 인간관계가 없었기에 더 의문스러웠다.


신랑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가 자라 온 가정환경과 신랑이 자라 온 가정환경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양가 부모님들의 양육 방식이 많이 달랐다. 나는 사소한 성취에도 늘 칭찬을 듬뿍 받으며 자라왔다. 내가 잘하는 것에 대해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새로운 일을 도전하는 것에 있어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기 효능감이 높은 사람으로 자라나게 되었다. 잘하지 못해도 늘 최선을 다했다. 어린 시절 울거나 화를 내는 등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낼 때면 예민하신 부모님은 내가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원인을 함께 찾아 마음을 잘 읽어주셨다. 그렇게 공감과 응원으로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건강한 방식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풀어내는 법을 배웠다. 부모님이 내게 하셨듯이 타인의 감정을 예민하게 읽어내고 대처하는 것이 쉬웠다. 특히 타인의 장점을 찾아내어 구체적으로 칭찬하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에 신랑의 부모님은 칭찬이나 인정을 말로 잘 표현하시지 않는다. 밖에서 자식들을 무척 자랑스러워하시고, 사랑도 많으셔서 보이지 않게 서포트는 해주시되, 늘 자식들 앞에서는 엄하셨다. 귀한 자식일수록 떡 하나 더 주는 것이 아니라 매 한 대 더 때리는 부모님이셨다. 밖에서 혼나지 않도록 집에서는 작은 실수도 호되게 혼을 내셨다. 자녀들의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시하셨다.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예의 바른 형태가 아니라면 떼를 쓰거나, 투정을 부리는 것은 결코 용납을 하지 않으셨다. 덕분에 신랑은 예의 바르고, 현실 감각이 뛰어나며 안정 추구적인 성향의 단단한 사람으로 자라났다. 어떤 선택을 해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었고, 자기 의사를 타인 앞에 표현하는 것에 별로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비교하자면 내가 신랑에 비해 취약한 부분이 그것이었다. 점점 자라면서 나를 칭찬해주던 대상은 엄마 아빠에서, 선생님으로, 교수님으로, 직장 상사로 전이되었다. 칭찬은 나를 늘 고무시켰고 더 나은 성취를 위한 동기를 제공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시부모님이 되었을 때 결국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시부모님은 우리 가족을 몹시 아끼고 귀하게 여기신다. 사랑도 정도 많은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그 관계를 견디기가 어려웠다. 왜냐하면 어떠한 칭찬도 보상도 없이 더 사랑할수록 떡 대신 매를 주시는 새로운 방식의 애정 앞에 나는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고 싶었고 그러자 나는 자꾸 눈치를 보며 솔직한 나를 숨길 수밖에 없었다. 그럴수록 이 관계는 더 어려워졌고, 오히려 꾸중과 비판은 강도가 심해졌다.


사실 신랑 말대로 "그러시든지 말든지, 우리 가족의 일은 우리가 선택하면 될 일"이었다. 시부모님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시부모님의 화나 폭언은 시부모님의 문제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꿋꿋이 삶을 선택해 나가는 단단함을 가져야 했다. 내 안에 숨은 '칭찬받고 춤추는 즐거운 아이'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했다. 타인의 칭찬이나 인정이 내 삶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내가 나를 바라보던 기준을 다시 세워야 했다. 칭찬받지 못하는 삶, 인정받지 못하는 삶이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실망시킬 용기가 필요했다. 좀 관계가 좋지 못해도 그것은 결코 내 탓이 아니라는 배짱이 필요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우리의 칭찬에 춤추고 있는 귀여운 첫째를 바라본다. 타인의 칭찬이 이 아이의 삶의 보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타인이 설사 애정을 듬뿍 가진 부모일지라도 그건 어쩌면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이제 우리의 칭찬이 이 아이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 아이가 스스로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끝까지 그 선택을 책임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세상이 비판하고 미워하고 설사 누군가 욕을 하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기꺼이 지켜낼 단단함이 있어야 했다. 칭찬에 춤추고, 꾸지람에 주눅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가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처럼 누군가의 폭언에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가 함부로 뭐라고 해도 그게 이 아이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신대로 살 수 있는 강한 아이면 좋겠다.


이제 칭찬을 하기 전에 다시 한번 돌아본다. 아이를 함부로 칭찬하지 않는다. "예쁘다. 잘한다. 착하다." 대신에 "네가 기쁘니 엄마도 기쁘네. 여기 좀 더 어려운 문제도 한 번 해볼래? 오늘 혼자서도 방 정리를 다 했구나."와 같이 가능하면 스스로의 감정에 충실하도록, 또 사실 그대로를 인식하도록 말해준다. 칭찬이 줄자 뭔가 허전해진 첫째가 묻는다. "엄마 나 예뻐요?" 나는 빙긋 웃으며 아이를 꼭 안아주았다. "스스로 생각해봐. 예쁜 것 같아?" 아이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가 좀 예쁘죠!" 한다.ㅋㅋ


"그래, 네가 예쁘다고 생각하면 예쁜 거지."






이전 12화 아기의 발을 힘껏 물었다. 그리고 숨죽여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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