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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is best―사랑 때문에 죽던 근대의 연애

바이엔 사건, 강명화․장병천 정사 사건, 윤심덕․김우진 정사 사건

근대 한국, 이광수, 김동인과 같은 일본 유학생들의 체험이 전해지면서 한국의 연애와 결혼의 지형에는 큰 변화가 일었다.

이들이 영향을 받은 근대 일본의 연애는 서구에서 수입된 것이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Love is best’라는 말이 유행어였다.
그리고 ‘자살자의 8할이 정사(情死)’라고 할 만큼 연애 때문에 자살하는 정사 붐이 이어졌다.


1908년에는 모리타 소헤이와 히라쓰카 라이초의 정사 미수 사건인 ‘바이엔 사건(煤煙, ばいえん)’이 일본 열도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고위 간부의 딸이자 당시 보기 드문 일본여대 졸업생인 히라쓰카 라이초가 자취를 감추어 언론의 주목을 받았는데, 언론은 라이초가 문학사 모리타 소헤이와 정사할 장소를 물색하러 다녔다고 열띤 보도를 하였다.


'바이엔 사건'의 주인공인 히라쓰카 라이초(1886~1971, 上)와   모리타 소헤이(1881~1949, 下)와 모리타 소헤이가 쓴 고백 소설 『바이엔』.


신문은 이 둘의 화제로 연일 떠들썩했다.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 연인이 되었는지 라이초의 아버지 인터뷰를 싣고 서로에게 보낸 편지가 공개되는 등 보도 열기는 뜨거웠다.

처음부터 자살할 생각이 없었던 소헤이에 의해 정사는 실패했고, 이후 소헤이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고백 소설 『바이엔』을 연재하여 소설가로 성공했다.

‘바이엔 사건’은 근대 초 일본의 연애가 얼마나 센세이셔널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정사 붐은 조선 땅으로 이어졌다.

1920년대 한국에서는 ‘강명화·장병천 정사 사건’이 화제였다.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한 『강명화전』이 네 개의 딱지본 소설로 출간되어 불티나게 팔렸을 만큼 대중의 호응이 열렬했다. 

평양 출신 기생 강명화는 얼굴이 귀엽고 가무를 잘하던 경성 최고의 기생이었는데, 영남 갑부의 외아들 장병천과 사랑에 빠진다. 

한강변에서 우연히 강명화를 보고 마음에 두게 된 장병천이 강명화를 집요하게 따라다닌 끝에 강명화가 받아들임으로써 두 사람은 백년해로를 맹세하게 된다. 

그러나 장병천의 부모가 끝내 이들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아 강명화가 자살하고 장병천도 1년 후 자살했다는 이야기이다.


강명화와 장병천의 정사 사건을 소재로 한 딱지본 소설 『절세미인 강명화전』(1935)의 표지


1923년에 발생한 이 사건은 열띤 기사 경쟁으로 대중의 이목을 끌어, 소설뿐 아니라 「강명화가」와 같은 노래로 불리기도 하였고, 이듬해에는 「비련의 곡」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질 만큼 1920년대 사랑의 아이콘이 되었다.


온천에 이른 강명화는 늘 자살할 기회만 타다가 마침내 10일 하오 11시경 몰래 사두었던 ‘쥐 잡는 약’을 마시었다. 약을 마시고 난 강명화는 즉시 장병천의 품에 안기어 “나는 벌써 독약을 마신 사람이니 마지막으로 안아나 주시오” 하였었다. 놀라운 소리를 들은 장병천과 마침 함께 있는 모씨는 일변 의사를 불러 약을 토하게 하며 일변 경성으로 전보를 놓아 그 모친을 데려 내려갔으나 그는 드디어 11일 하오 여섯 시 반에 애인의 무릎을 베이고 이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 장병천이가 “내가 누구인지 알겠나……”물으며 그는 눈물에 젖은 야윈 낯에 웃음을 싣고 “세상 사람 중에 가장 사랑하는 ‘파건’……”이라고 일렀다. ‘파건’은 곧 장병천의 별호이니 그의 마지막 일념은 오직 ‘파’·‘건’ 두 자에 맺히었던 것이다.


〈동아일보〉에 실린 이 기사에는 주관적 감정이 많이 개입되었을 뿐 아니라, 기자의 시선으로 쓰여진 사건일지라기보다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한 신파조 묘사에 가깝다.

이는 근대적 연애와 사랑이 어떻게 기호화되는지 알 수 있다.


신문에서는 ‘애화(哀話)’라는 표제를 내걸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사연을 극적으로 포장하였으며, 강명화는 대중들의 입맛에 맞게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와 섹슈얼리티를 내장하면서 순수한 사랑, 변치 않는 사랑, 희생적 사랑, 죽음을 통해 완성한 사랑이라는 기호로 유통되었다.

강명화가 결혼을 한 적이 있으며 기생이라는 신분으로 살았고, 장병천 역시 자살을 택하기 전까지 문란한 생활을 했다고 알려졌음에도 대중은 이들의 죽음을 순결한 사랑으로 받아들였다.

이들의 사랑은 ‘정사’라는 이미지에 의해 아름다운 사랑의 결정체로 코드화된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근대적 주체인 자유로운 개인들 간의 사랑은 ‘단둘이, 영원히’라는 서구의 낭만적 사랑을 먹고 자랐다.

기생과 대부호라는 신분적 위계가 결혼을 방해하지만,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오히려 사랑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게 하였다. 

근대 이후 서구에서 만들어진 낭만적 사랑의 이념들이 자유사상과 결합하여 근대적 사랑의 표본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거기에 대중적 통속성이 스며들어감으로써 강명화·장병천의 정사 사건은 1920년대 ‘연애’의 대중적 기호가 되었다.


죽음으로 이루어진 강명화와 장병천의 사랑 이야기는
1970년대까지 한국의 대중문화에서 변용되었을 만큼 위력적이었다.

신성일, 엄앵란 부부의 영화로 유명한 「맨발의 청춘」(1964).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서두수(신성일 분)와 요안나(엄앵란)가 결국 동반 자살을 하고 마는 청춘 영화다.


3년 후인 1926년 8월에는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로 유명했던 윤심덕과 전라도 부잣집 아들로 신극(新劇)운동에 참여했던 극작가 김우진이 동반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 자살 사건은 사랑을 통해 자유로운 근대적 개인이 어떻게 탄생하는가를 보여주는 실례다. 

조혼 풍습 때문에 일찍 결혼한 부잣집 도련님 희곡작가 김우진과, 활달한 성격에 서구형 미인이었던 소프라노 가수 윤심덕은 일본 유학을 하면서 서로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이들은 ‘내 배우자는 내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관철되지 않자,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출발하는 관부연락선을 타고 부산에 오다가 검은 파도가 일렁이는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번안곡 「사의 찬미」는 윤심덕이 직접 노랫말을 붙이고 일본에서 녹음하고 돌아오는 길에 자살함으로써 화제가 되어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1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서구에서 수입된 낭만적 사랑의 영원성이라는 관념에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근대 의식이 결합된 이 사건은 죽음을 통해 자신들의 사랑을 보존한 경우였다.

이처럼 불과 90여 년 전 한국에서의 사랑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연애와 사랑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책에서 배우고 현실에서 실천해야 할 숭고한 사상이나 매력적인 대중적 기호로 형성된 것이었다. 


강명화·장병천과 같이 사랑을 위해 가족을 버릴 수 있어야 하고, 사회적 시선은 아랑곳하지 말아야 하며, 죽음을 통해서라도 백년해로 약속은 지켜져야 했다.

또한 윤심덕과 김우진처럼 바다에 몸을 던져 결혼제도에 항거하면서 사랑을 완성해야 했다. 

사랑은 당대 구습인 조혼을 거부하고 투쟁하면서 획득해야 할 중요한 가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포스트는 마이크로 인문학 시리즈 9권 『사랑, 삶의 재발명』(임지연 著)에 수록될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마이크로 인문학 Micro Humanities

일상에서 마주치는 질문들
은행나무 마이크로 인문학



01 생각, 의식의 소음 ─ 김종갑 
02 죽음, 지속의 사라짐 ─ 최은주
03 선택, 선택의 재발견 ─ 김운하
04 효율성, 문명의 편견 ─ 이근세
05 질병, 영원한 추상성 ─ 최은주
06 혐오, 감정의 정치학 ─ 김종갑
07 자아, 친숙한 이방인 ─ 김석
08 기억, 기억과 망각의 이중주 ─ 서길완
09 사랑, 삶의 재발명 ─ 임지연

─ 이 시리즈는 몸문화연구소와 은행나무출판사가 공동으로 기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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