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모자를 쓴 쟌느 에뷔테른의 초상화
중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멀리 적선동 까지 통학을 했고
콩나물 시루같은 버스를 타고 다녀야 했던
난 그 학교가 좋았다.
어느 날인가 학교에서 전교생 그림 백일장이 있었는데
난 미술 책속의 모딜리아니의 그림 하나를 골라
종이로 색을 내어 모자이크를 만들었고..
그 그림은 유명한 '큰 모자를 쓴 쟌 에뷔테른의 초상화' 였다.
난 나도 모르게 그 그림에 이끌려
도화지에 연필로 비슷하게 그리고
잡지책을 찢어 색종이로 사용했다.
스케치한 도화지 위를 풀칠로 범벅하며
잡지책에서 찢어 낸 종이들을 5미리정도로 작게 오려서
몇 날동안, 오랜 시간 앉아서
얼굴을 표현하고 눈을 표현하고 입술과 모자와 머리와 옷을 붙여나갔다.
당시에 사진을 찍어둘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
백일장에서 큰 상은 아니지만 난생처음으로
가작이란 상을 받았다.
14살의 나는
가작이라는 것은 앞으로 더 잘할 가능성이 있어서
주는 상이라고 이해했었다.
기뻤다.
처음으로 나 자신에 대해
나도 뭔가를 잘 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했었고..
어린 나의 눈에 비추인 모딜리아니..
어둡고 절망적인 삶을 살다가
자신의 사랑하는 잔 에뷔테른의 초상화에
눈동자도 그려넣지 못하셨던 분..
모딜리아니는 대부분의 작품에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 눈동자가 없는 특이한 그림에 이끌려
어린 내가 종이를 오려서
그 그림을 모자이크로 만든 것이
아직까지도 강력한 기억으로 남아있는걸 보면
나도 조금 특이하긴 했다..
마음이 텅 빈 것 같았던 내가
그림속의 여인을 나와 동일시 한것 은 아닐까..
몇 안되는 어린 나의 빛났던 기억의 한 줄기에서
나의 슬픔을 표현한 그 모자이크 작품이 그립다..
(그림출처 : 구글이미지- 모딜리아니 '큰 모자를 쓴 쟌 에뷔테른의 초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