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처음으로 쓰는 편지
1년이 조금 넘게 걸린 것 같다. 작년 이맘때, 네가 태어나자마자 네 목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통보받은 이후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드디어 내일 아침 첫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아빠는 그동안 정말 많은 병원을 오갔단다. 그동안 몇 개의 진료카드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는 와중에 아빠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단다. 누구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을 하고, 누구는 심각하단 듯이 말을 하니, 아빠는 어떤 장단에 맞춰야 할지 정말 몰랐거든. 말로는 네 호흡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면서 심각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런 너를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는 않더라. 그들이 안내한 길을 따라가 보면 늘 좌절과 허무함, 그리고 아빠의 분노만 기다리고 있었어. 심지어 네가 걸음마를 하다 넘어져 눈 위가 찢어져도 그들은 그 흔한 소독조차 해주지 않았어. 어떻게 응급실이 그럴 수가 있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단다. 정말 수많은 이유로 아프고 여린 너를 헛걸음시킨, 그리고 그걸 당연시 한, 그 사람들이 아직도 너무너무 밉지만... 그래도 지금은 믿고 따를 수 의료인을 만난 것 같아 다행이야. 진심으로 참 다행이야.
솔직히 아빠는 거의 포기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네 엄마의 나라에서 치료받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아직 '실버라이닝'은 남아있었나 보다. 마지막 선택지에서 이렇게 갑작스럽게 너의 첫 치료일이 잡힐 줄은 몰랐었기에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믿고 맡겨보기로 했단다. 이곳은 우리의 사정을 이해해주려고 하는 것이 눈에 보이고 피부로 느껴졌으니까 말이다. 이것마저 의심한다면 우린 이 나라를 떠나야 하겠지.
어제저녁, 새로운 병원으로부터 앞으로의 네 치료과정과 사전준비에 대한 설명을 상세하고 친절하게 브리핑받고 아빠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이전 병원에서는 그 어떤 설명도 없이 차가운 카카오톡 메시지만 왔으니까. 그래서 무척 싫었어. 그곳이 널 공장의 생산품처럼 취급하는 것 같았어. 그래서 모든 예약을 취소했어. 아빠가 까다로운 사람이라 그런 것일까? 아니야, 아빠가 보기엔 실수를 밥먹듯이 하는 곳의 책임 없는 말을 기계처럼 따르는 것이 더 이상해. 질문을 불편해하는 곳을 어떻게 병원이라고 부르겠니? 아빠는 그런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았어.
지난 1년 동안 아빠와 엄마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기분이었다는 것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두 달 전, 네 혹이 하루아침에 다시 커졌을 땐 정말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어. 몇 번이나 울고 화를 냈을까? 엄마는 아직도 자기가 잘못해서 네가 그렇게 태어난 줄 안단다. 아빠가 보았을 땐 그 이상 잘할 수는 없는데 말이야. 네가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 엄마는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았어. 하루하루 달력에 체크를 하며 절대 잊지 않고 영양제를 챙겨 먹는 엄마, 네 엄마는 그런 사람이야. 실수는 아빠가 했지. 미안해, 아빠의 화난 목소리 참 듣기 싫었지?
얼마 전 너의 첫 번째 생일을 맞이했을 때, 그래도 좋다고 웃는 너를 보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네 엄마가 널 처음 마주한 순간이 생각난단다. 아직도 신기해. 넌 내가 아빠인 걸 알았고 네 엄마가 엄마인 것을 알고 있었어. 설령 그것이 아빠의 착각이라 하더라도, 그때 찍은 비디오는 아직도 아빠의 최고 소장품이야.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 두 모녀가 정말 너무 아름다웠거든. 그리고 그 이상으로 넌 아름답게 자라주었어. 고맙다 우리 딸, 네가 존재하기에 아빠는 이제야 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단다. 내일 아침 조금 괴로운 시간이 있겠지만 이해해 주렴. 앞으로의 행복한 시간을 위해서 조금만 참고 견뎌주길 바랄게. 아빠도 견딜 테니 엄마아빠의 불안을 꼭 지워주렴. 그리고 늘 강해지길... 엄마아빠도 늘 강해질게. 늘 사랑해. 우리 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