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오늘 꼭 처리해야 하는 일을 떠올리며 잠에서 깬다. 일터 내 자리에 앉자마자 그걸 시작한다. 새로운 일이 발생한다. 점심을 먹으며 그 일을 생각한다. 그 두 가지를 얼추 마무리하면 잊고 있던 무언가의 마감이 다가온다. 좀 더 어릴 때처럼 무작정 야근하긴 어렵다. 퇴근은 해야 한다. 아이 볼 손이 부족해서 아내는 늘 불망이니까. 엉덩이부터 떼고, 어지러운 창들을 닫고, 제일 큰 창을 종료하고, 급한 인사를 나누고 집에 와서 아이와 늘 해야 하는 것들을 즐겁게 하고 나면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쯤이다. 잠에 빠지거나, 잠깐 공상에 빠지거나, 핸드폰에 빠지거나
하다가 보면 절대 멍 때릴 시간은 없겠다는 생각에 일들은 뒤로 미루고 충동적으로 떠난 조금 긴 점심 산책이었다.
천변길은 고가도로 덕에 쭉 그늘이었지만, 날씨가 날씨인지라 땀은 비오듯 흘렀다. 40분 정도 시간이 있어 20분째 딛는 발을 반환점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땀이 흐를수록 머리 속은 시원해진다. 허나 초행길이라 쉬이 멍해지긴 어려웠다. 게다가 어리석게 목표도 잡아뒀던 것이다. 생각보다 멀어서 거기까지 닿진 못했다. 쓸데없는 목표 때문에 머리가 쉬질 못했다.
돌아오는 길엔 화학형제들의 노래를 틀었다. 명성은 익히 알았지만 일부러 찾아듣는 것은 처음이다. 시간 내에 돌아가려면 박자가 빠르고 정확한 노래가 제격이다. 박자에 맞춰 걸음을 딱 딱 옮긴다.
그러다 익숙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첫 사진을 찍은 곳 즈음에서였다.
스타 기타 ㅡ 20대 초반에 음악 좀 듣던 친구가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디제잉해서 다 연결해놓은 씨디를 선물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당시 내게 가장 인상깊었던 곡과 곡의 연결부분에 흐르던 비트다. 멍 때리고 싶을 때 리핑해둔 그 곡들을 그냥 쭉 틀어놓곤 했었다.
삼 분 남짓 그 비트를 발로 걸으며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눈 앞에 보이는 소실점이 끝나지 않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