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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유미 Dec 04. 2018

혼자 일하지만 동료는 중요하니까

질문 둘, 글을 어떻게 쓰는 거야?



     외롭지 않냐는 질문에 이어 ‘글을 어떻게 쓰냐’라는 질문 또한 많이 듣는다. 이 질문에도 늘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감히 글쓰기 방법론을 얘기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아니고, 글을 완성하기 위한 체계적인 방법이나 그럴듯한 요령 역시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글을 완성하기까지 항상 공통적으로 무엇이 필요했던가 돌이켜보자면 결국 ‘동료’였다. 혼자 일하는 혼잡(job)러라면서 동료라고? 어리둥절할 수 있겠지만 무소속으로 일을 하면 할수록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의 교류, 비슷한 가치관과 목표를 공유하고 있는 동료를 옆에 두는 것의 중요성을 더 절감하게 된다.


     주류보다는 비주류, 오버그라운드보다 언더그라운드, 인싸보다는 아싸. 기억도 나지 않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취향은 소나무 같이 한결같았다. 언제나 꿋꿋하게 몰려든 사람이 더 적은 쪽에만 마음의 둥지를 틀었던 취향 때문에 한때는 사람을 싫어하는 게 아닐까 오해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회사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언제나 비슷한 취향과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모임을 하나 이상은 꾸준히 유지해왔고, 이를 통해 사람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단지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누고 교감할 수 있는 소수정예의 집단에 들어갔을 때 마음이 더 편해지는 성향일 뿐임을 깨닫게 되었다. 퇴사를 하고 혼자 글 쓰고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한 이후에도 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소수정예의 사람을 찾아다녔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서 금방 동료들을 찾을 수 있었고, 이렇게 만난 동료들은 모두 직, 간접적으로 내 소설에 영향을 미쳤다. 


기술 둘, 동족을 만날 수 있는 곳에 내 몸을 던지기



     글은 결국 혼자 완성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동료가 필요한 이유는 제 풀에 지쳐 그만 나가떨어지고 싶을 때마다 ‘아니다, 그래도 끝까지 해보자’라고 마음을 고쳐먹고 계속해나갈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재밌게 살기 위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편하게 살겠다는 뜻이 아니다. 거기에도 하기 싫은 노동이, 애씀이, 고통이, 갈등이, 낙담이 따라온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이루기 위한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중략) 결국 ‘함께’사는 것에서 실마리를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이내,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 중에서


     좋아하는 일을 재미있게 하려는 사람에게 으레 따라붙는 말이 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구나, 철이 없구나, 혹은 집이 부자인가 봐. 그러나 지금까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재미있게 하고 싶어서 글 쓰고 책 만들고,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분들을 지켜본 바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야 말로 매 순간마다 세상과 싸워야 하는 그야말로 ‘뼈 때리는 세상 물정’을 온몸으로 겪는 일에 가깝다. 출근만 해도 약속된 급여가 나오는 삶과 반대되는, 매 순간 일을 스스로 벌려야만 수입이 생기는 삶.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도 일을 만들지 않으면 아예 수입이 발생하지 않고, 나를 어르고 달래서 일을 만들더라도 수입이 어느 정도 발생할지 가늠조차 하기 힘든 생활. 심지어 매번 적자가 나서 어디에다 불평을 하고 싶어도 ‘그래도 너는 좋아하는 일을 하잖아’라는 소리 앞에서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는 그런 생활. 이런 생활이야말로 매일매일 세상 물정이 녹록지 않음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방전이 되기도 쉬운 것 같다. 


     방전이 되려 할 때마다 에너지를 얻기 위해 반사적으로 동족들을 찾는다. 자주 찾는 동족들의 서식지는 광흥창역과 홍대 사이에 있는 동네책방 ‘이후북스’다. 시간도 돈으로 환산되는 효율의 시대*에 시간만 잡아먹고 딱히 큰돈이 되지도 않는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작은 책을 즐겁게 판매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이곳에서는 ‘왜 쓰는가’를 설명할 필요도 없이 모두 쓰는 삶을 선택했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하고 서로 글을 나눌 수 있는 글쓰기 수업과 모임이 꾸준히 열리고 있다. 매주 금요일 저녁, 퇴근을 한 후 허겁지겁 이후북스로 건너가 소설을 썼고 이후 독립출판 글쓰기 수업과 불확실한 글쓰기 수업까지 연달아 들으며 내 글을 완전한 타인 앞에 꺼내 보이는 쑥스러운 경험도 조금씩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후북스의 두 사장님은 타고난 낚시꾼이다. 언더그라운드에서 반짝이는 작가를 발굴해서 더 넓은 세상 밖으로 나가도록 낚아 올리는 데에 선수들이기도 하고, 계속 쓸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독립출판 작가들을 위한 잡지를 만들자는 작당모의를 제안해 기어코 쓰게 만드는 독립 출판계의 낚시꾼(!)이다. 사실 잡지는 언젠가 한 번은 만들어보고 싶었던 콘텐츠였다. 하지만 잘하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시작도 안 하려는 내 성향상, ‘이게 진짜로 될까?’ 싶은 것들도 진짜가 되도록 해버리는 사장님들의 추진력이 없었다면 영영 시작도 못했을 게 분명하다. 독립 출판계의 낚시꾼들 곁에는 재능 있는 창작자들도 있다. 능력 있는 낚시꾼에게 기꺼이 낚인 월척들! 좋은 창작물로 자극을 주는 그런 월척과 같은 작가들-강민선, 이내, 은미향, 서귤, 지현서 님 등등등... 다 열거하기엔 참 많다-을 이 공간에서 만날 수 있었고, 때문에 이곳은 나 같은 작은 물고기도 월척들이랑 같이 잠시 잠깐이라도 작당모의를 하면서 방전된 창작욕도 충전하고 자신감도 얻을 수 있었던 서식지였다.


     두 번째 동족은 동족의 서식지와는 백만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생활의 터전 회사에서 인연을 맺은 (구) 입사동기이자 (현) 동료 작가이자 친구인 오마진이다. 퇴사를 한 직후부터 매주 목요일 오후 세 시에 각자 쓴 글을 보여주고 감상을 공유하는 글 모임을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고맙게도 매주 내 글을 읽어주는 한 명의 고정 독자가 생겼다. 매주 내 글을 읽어주는 단 한 명의 독자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라도 무엇이라도 쓰게 되었고, 나의 고정 독자는 글의 핵심을 꿰뚫는 날카로운 눈과 톡톡 튀는 창의력으로 매번 양질의 감상을 공유해주곤 했다. 회사에서 인연을 맺는 경우 보통 대화의 주제 자체가 개인보다는 회사나 일로 국한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 대해 강한 인상을 받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회사에서 동기로 알고 지내던 예전부터 ‘자기 콘텐츠가 있다’는 강한 인상을 준 친구였다. 


     자기 색이 뚜렷한 사람의 글을 읽는 건 즐거운 일이었고, 그런 사람이 내 글을 읽고 긍정적으로 말해주는 건 더욱 고맙고 즐거운 일이었다. 단 한 명이라도 내 글을 읽고 좋다고 얘기해준 사람이 있다면 그걸로 계속 쓸 이유는 충분했다. 게다가 남들과 다른 이상한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에, 그 생각을 시각화까지 할 수 있는 동료의 작업물이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것을 같이 지켜보면서 퇴사 후 무료하고 불안정한 시간을 나름대로 안정적이고 건강하게 버틸 수 있었다. 아직 회사원 티를 벗지 못하고 기획병(?)에 걸려 다음 책은 어떤 꼴로 제작할 것인가 이런저런 기획을 공유하는 시간은 ‘아 맞다, 내가 사실 무언가 기획하는 걸 좋아했었지?’라는 잊었던 사실을 깨닫게 했다. -하지만 우리가 오래오래 이 일을 하려면 번 아웃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뭘 하면 PPT부터 열고 보는 기획병은 이제 내려두기로......-


     언제까지 혼자 글 쓰는 일을 할 수 있을까? 답은 전혀 알 수 없다. 정말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서, 혹은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고정수입이 필요해서라도 무소속으로 글을 쓰는 혼잡(job)은 언제든 중단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혼잡이 아니라 '투잡'이 되더라도 결국 쓰는 일을 포기하지는 못할 게 분명하다. 무언가를 꾸준히 쓰고, 만들고, 이렇게 만들어진 창작물들을 진심 어린 애정을 가지고 어떻게든 팔아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이런 이상한 사람들, 이상함으로 하나 된 동족들이 곁에 있는 한 나는 또 금세 물이 들어 손가락이 근질거려 노트북을 열고 흰 화면을 띄운 후 뭐라도 타이핑해야 할 테니까. 






*이내 작가는 저서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에서 '청년공동체 도꼬마리'에서 공동체 식구들이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설명하며 "둘러 돌아가고, 틈을 비집어 들어가는 삶의 태도는 비효율적이다. 시간이 돈으로 환원된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시간을 돈으로만 돌려받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라고 서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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