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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유미 Nov 24. 2018

'나' 달래는 법

혼자 살기, 혼자 밥 먹기, 혼자 영화보기, 혼자 여행 가기…… 그렇게 ‘혼자 OO 하기’를 미션처럼 하나씩 해치우더니 이제 회사를 제 발로 걸어 나와 ‘혼자 일하기’까지 시작해버리고 말았다! 혼밥은 기본이고, 혼영은 취미, 직업은 ‘혼잡(job)러’라니. 여태껏 많은 것들을 혼자 해봤지만 혼자 일하는 건 처음이라 아직은 낯설긴 하다. 뭐든 익숙해지면 개구리 올챙이 적은 생각도 나지 않는 법이니 이 낯선 불안함이 사라지기 전에 오롯이 기록해보려 한다.



질문 하나, 외롭지 않아?


      “회사 안 다니니까 외롭지는 않아?”

      “혼자 일하니까 외롭지 않아?”


      최근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채 혼자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많이 들었을 법한 질문이기도 하다. 질문을 했던 친구들 앞에서 나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개운하지는 못한 대답을 내뱉었던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아무리 곱씹고 곱씹어도 대답은 하나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외롭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니 이 무슨 철 지난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라는 가사가 생각나는 애매한 대답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혼자 글 쓰고 책 만드는 일을 하면서 외로웠던 건 사실이지만, 외로움의 원인이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소속 없음’에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일을 해도 업무를 하며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고립감을 느끼거나, 정서적인 외로움을 느끼는 건 너무나 흔한 일이다. 물론 ‘나는 내 옆에 사람이 있기만 해도 외로움 따위는 느끼지 않아. 사람의 온기 하나면 다 해결된다고!’라는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연애를 한다고 해서 ‘오늘부터 외로움은 끝!’이 아니듯 소속된 조직이 없다고 ‘오늘부터 외로움 시작!’은 아니다. 다만 조직에 있을 때보다 상대적으로 나의 외로움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바로 공감해주는 주변인(동료)의 숫자가 적어지기 때문에, 외로움과 고립감이 들 때 이를 다루는 방식에는 분명 변화가 필요한 것 같다. 나만의 방식을 소개하기에는 아직은 매일 밤 문득 불안해져 채용공고를 뒤지기도하는 아마추어 혼잡러이기 때문에, 이 시기를 먼저 지나간 선배들의 이야기에서 도움을 받고자 한다. 첫 번째로 힌트를 얻은 책은 프리랜서이자 콘텐츠 플랫폼 '헤이메이트'의 공동대표이기도 한 윤이나, 황효진 님이 함께 쓴 <둘이 같이 프리랜서>이다. 



기술 하나, 충분히 어르고 달래기


원고를 마감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달래는 일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아이도 아니고, 어른인 데다 수백 번 해왔던 일인데도 언제나 처음 맞닥뜨리는 것처럼 자신을 충분히 어르고 달래야 한다. 나는 나를 다루는 몇 가지 방법을 이미 알고 있다. 욕조에 바스밤을 풀고 몇 분 동안 누워있게 해준다. 아주 아주 진한 커피를 마시게 해준다. 

- 윤이나 & 황효진, <둘이 같이 프리랜서> 


     이제 낯빛만 어두워져도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봐주는 동료 혹은 선배도 없고, 일을 다 그만두고 싶을 때 ‘조금만 더 참아보자’라고 사탕발린 회유라도 해줄 리더도 없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월급’이라는 강력한 마취제가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도 혼자 내가 선택한 일을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스스로 마감일을 설정하고 지키기 위해 나 자신을 다루는 힘을 길러야 한다. 무엇보다 스스로 ‘잘하고 있다’며 긍정적인 에너지로 꾸준히 동기부여를 해주는 건 정말 중요하다. 


     개인작업을 할 때는 물론, 돈을 받고 업무를 하는 외주 일의 경우에도 ‘돈을 받으니까!’라는 이유만으로 나 자신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 것이라 방심하지 말자. 나를 감시하는 직장상사가 없다는 해방감에 일을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니까. ‘일하기 싫다’는 말을 마음속으로 N번쯤 외쳐대는 건 회사를 다닐 때에나 회사를 나와 혼자 일을 할 때나 마찬가지다. 차이점이 있다면 회사에서는 보는 눈도 많고 감시체계가 있으니 일하기 싫어하며 발버둥 치는 나를 조직이 멱살 잡고 끌고 가지만-혹은 내가 멱살이 잡혔다는 착각을 하고 울면서 억지로라도 일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내 멱살을 잡고 끌고 갈 사람도 없다. 그러니까 하던 걸 손에 놓고 도피해버리기 시작하면 언제까지나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제 멱살 잡힐 곳도 없으니 내가 잡고 하드 캐리 해야지 뭐,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심지어 내가 쓴 글을 다시 읽는 것도 좋아하는 나르시시즘(?)까지 있지만 그래도 글 쓰는 건 정말이지 매번 어렵다. 특히 돈도 안 주는데 엉덩이 붙이고 노동을 하고 있으려니 더 어렵다. 그럴 때마다 내 안의 탕아를 달래기 위해 조용히 말을 건다. "이 글 누가 시작했어? 내가! 이 글 누가 끝내야 해? 내가! 이렇게 살겠다고 누가 결정했지? 내가! 내가! 알았다고 안다고!ㅠㅠ"


     그러하다. 내가 시작해서 내가 끝내야만 하는,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에서는 더 이상 원망의 화살을 돌릴 외부인도 없다. 나와의 대화를 통해 이 사실을 돌다리 두드리듯 계속 확인하며 시작한 글을 마무리하기 위해 매일 너그러운 나와 엄격한 나로 자아를 분리한 후 고군분투하고 있다.*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하여 조련하듯 다그칠 때는 냉정하게, 때로는 충분히 너그럽게 어르고 달랜다. 방 안에 불을 끄고 은은한 조명만 키는 것,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고 듣고 싶은 음악을 실컷 듣는 것, 졸릴 때는 잠을 자게 내버려 두는 것, 맛있는 빵을 먹는 것. 라테를 마시는 것. 이 정도가 현재까지 내가 발견한 나를 다루는 방법이다. 이 글 역시 아보카도가 들어간 따뜻한 샌드위치를 먹고, 광화문에 나가 전시회를 보고, 잠을 한 숨 자고 일어난 뒤에나 쓸 수 있었다. 월급뽕이 없어진 자리에 이토록 섬세한 어르고 달래기의 기술이 들어가야만 움직이게 된다. 어쩌겠어 뭐, 이제 멱살 잡힐 곳도 없으니 내가 잡고 하드 캐리 해야지. 다행히 글을 한 편 썼으니 오늘은 기술 쓴 보람이 있다. 




*<둘이 같이 프리랜서>의 공동저자 황효진 작가는 책 본문에서 "마감때마다 나를 통제하고 관리하겠다는 엄격한 나와 나에게 무엇이든 맞춰주겠다는 너그러운 나 사이에 소리 없는 싸움이 벌어진다"고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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